본문 바로가기

정치

국민은 해명하라는데, 호통만 치는 대통령

ⓒ 오마이뉴스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와 민간재단 미르·K스포츠를 둘러싼 의혹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이에 야당은 오는 26일부터 시작하는 국정감사에서 관련 의혹을 집중 추궁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기금 모금 과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재단 설립의 핵심 서류인 가짜 회의록부터 시작해서 신청 하루 만에 설립허가가 난 점, 기업들이 8일 만에 900억 원에 달하는 기금을 각출한 점, 운영 실적이 거의 없는 두 재단이 대통령 순방 행사에 참가한 점 등 석연찮은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급기야 청와대가 이석수 특별검찰관을 감찰 누설로 검찰에 수사 의뢰한 것도 결국 이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 감찰관이 두 재단의 강제모금 의혹과 관련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기금 모금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 기업들에 대한 내사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가 이를 사전에 차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별감찰관실에서는 재단설립 기금을 각출한 기업들에 대한 경위를 조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수석이 기업들에게 재단설립 기금을 내도록 모종의 압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내사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감찰관이 검찰의 수사를 받게되면서 미르·K스포츠재단, 안 수석과 전경련에 이르는 기금 모음 과정 내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관련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이 이 감찰관을 내친 이유가 우병우 민정수석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목적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모금 의혹을 덮기 위해서란 뜻이 된다.

이처럼 의혹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자 청와대와 여당은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관련 의혹에 대해 무시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국정감사에 최 씨와 안 수석, 전경련 관계자를 증인으로 세우겠다는 야당의 요구에 결사반대만을 외치고 있다.

이는 의혹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비상시기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는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들을 '비방', '확인 안 된 폭로'라고 싸집아 정리했다.

의혹은 일단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대통령'다운 인식이다. 국정원 사건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비선실세 논란 때도, 성완종 게이트 때도, 우병우 논란 때도 대통령은 그랬다. 그는 국민들의 의혹 어린 시선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절대 존엄에 대한 모독이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유언비어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그 의혹들은 애초 국민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것처럼 그것들은 권력의 독선과 남용,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부정·비리에 대한 비호와 왜곡, 사실의 축소와 은폐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결과였다.

의혹이란 본디 부정하면 할수록 더욱 커지고 퍼지는 법이다. 대통령이, 청와대가, 정부·여당이 확고한 원칙과 기준으로 단호하게 대처했더라면 의혹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이유가 하등 없었을 터다. 그러나 그들은 숨기고 감추고 조작하고 왜곡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의혹이 해소되기는 커녕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 오마이뉴스


세월호 참사야말로 그 비근한 예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세월호가 침몰한 것 자체가 대통령 탓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고 이후의 대통령의 행태가 아주 괴상했다. 대통령이 정부와 관계기관을 독려해서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사고의 원인과 구조 실패에 따른 책임자 처벌을 명확히 하고, 절망에 빠진 유족들과 국민들을 진심으로 껴안았다면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비난받을 일 따위는 애시당초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반대로 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미스터리한 그날의 행적을 국가기밀로 철통보안에 부쳤다. 초동 대응과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할 해경은 해체시켜 버렸고, 사건의 진상 규명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통령에게 의혹의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필경 대통령이 저리 나올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란 의문이 증폭됐던 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정원이라는 풍문이 도는가 하면, 세월호 침몰이 훈련 중이던 미군 잠수함과의 충돌 때문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베일에 싸인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서도 별의별 루머가 양산됐다. 이 모두는 대통령과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에 전력을 기울였더라면 나올 수 없는 의혹들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불거진 의혹들의 대부분이 이같은 정형화된 패턴으로 흘러갔다.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종합해 봐도 이번 의혹은 대단히 비상식적인 것들의 연속이다. 재단의 설립과 운영에서부터 기금 모금의 과정, 이 감찰관의 사퇴에 이르기까지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들 일색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대통령은 '역시나'. 그는 언제나 '무오류'이고 '무결점'이며 '청정'하다. 다수 국민이 의혹 어린 눈길로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자기방어기제만 펼치고 있다. 의혹을 해명하라는 요구에도 국민들을 계몽하기에 여념이 없다.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해명할 생각은 않고 외려 국민을 향해 호통만 치는 대통령. 이 모습은 극강의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1970~80년 대를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묘한 일이다. 시간은 2016년을 지나 2017년을 향해 가는데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는 영 그게 아니다. 우리는 과거에 산다. 대통령과 그 주변을 보면 아주, 확실히, 그렇다.




  바람 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