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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민들이 여당보다 야당을 더 비난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지금 야당은 (정확히 말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어디 있는 걸까? 과반 의석을 훌쩍 넘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금은 야당이 부재한 시절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처럼 무기력한 야당의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방법이 없다. 실종된 야당, 그들은 지금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 25일 여야 3당은 추경안 처리에 합의했다. 여야는 그동안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청문회(서별관회의 청문회) 증인 채택 문제로 진통을 겪어 온 터였다. 여야는 한치의 양보없이 치열하게 대치했다. 그러나 최후에 웃는 자는, 언제나 그랬듯이, 여당이었다. 야당이 추경안 처리에 합의하면서 서별관회의 청문회의 핵심 증인들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증인 채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 해양 부실지원 문제를 규명하려면 최 의원과 안 수석, 그리고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등 '3인방'을 반드시 청문회의 증인으로 세워야 했다. 그러나 여야의 합의로 서별관회의 청문회는 핵심 실세들이 빠진 채 열리게 됐다. 애초 추경안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으로 야기된 대책마련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보면, 추경안을 처리시켜야 할 책임은 온전히 여당에게 있었다. 그럼에도 야당이 여당에게 무기력하게 굴복해 버리고 만다. 

물론 야당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추경안 처리를 계속 반대할 경우 발목잡기라는 역풍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 야당이 언제까지고 추경안 처리를 미룰 수는 없었을 터다. 그러나 추경안 처리 합의에 따른 소득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추경안 합의는 야당의 완벽한 패배다


야당은 서별관회의 청문회의 핵심 증인 채택을 관철시키지도 못했고, 또 다른 핵심 사안이었던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간 연장 문제도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추경안 처리 합의를 통해 야당이 얻어낸 소득은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에 빠진 백남기 농민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한 것이 전부다.

야당의 굴욕은 이뿐만이 아니다. 야당은 당초 야3당이 합의한 사드특별위원회 설치, 누리과정 예산 문제, 검찰개혁 특별위원회 등 8대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전혀 실효성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결사항전의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야당의 모습을 떠올리면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 오마이뉴스


돌이켜보면 야당은 늘 이런 식이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언제나 흐지부지였다. 그 사이 국정원 사건, 세월호 참사,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성완종 게이트, 사자방 비리 의혹, 국정교과서, 테러방지법, 어버이연합 게이트 등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을 뒤흔든 정부 여당의 비리 의혹과 실정들은 먼지처럼 사라져 갔다.

올해 초, 필리버스터가 큰 화제였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필리버스터를 통해 야당은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여 올 테러방지법을 철회시키려면 야당이 다수당이 되어야 한다고 울부 짖었다. 자신들에게 힘을 달라고, 그래야 정부 여당의 전횡과 폭주를 막아낼 수 있고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들의 간절한 절규는 통했다. 고목나무에 꽃이 피듯 기적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국민들은 4월 총선에서 야당의 바람대로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 주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숙원이던 원내 1(여당의 무소속 복당쇼가 펼쳐지기 전까지)이 되었고, 존립을 걱정해야 했던 국민의당은 당당히 원내 3당에 등극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야당이 테러방지법의 철회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다수당만 되면 달라질 것이라 장담했던 세월호와 국정교과서 문제도, 단단히 벼르던 어버이연합 게이트 등도 감감 무소식이다. 까맣게 잊은 건가? 아니면 다른 중요한 의제 때문에 잠시 유보하고 있는 것인가? 의회 권력만 쥐어 쥔다면 당장이라도 세상의 부조리를 뜯어 고칠 것 같던 저들의 탄식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갸우뚱 거린다.

야당은 힘만 있으면 정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웬걸, 대통령과 여당의 일방통행은 점점 더 대범해지고 있다. 최근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은 갖은 의혹에 휩싸여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여전히 중용하고 있고, 음주운전 전력을 숨겨 온 이철성 후보자를 보란듯이 경찰청장에 임명해 버린다. 여당은 자신들의 책임인 추경안 처리가 마치 야당의 탓인양 어깃장을 놓는다.

대통령과 여당이 대놓고 야당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당은 대통령과 여당에게 매번 힘없이 굴복하고 만다. 전략은 고사하고 패기도, 대의에 대한 확신도 찾아볼 수 없는 야당. 국민들은 무기력증이 재발한 야당을 향해 '새누리 2중대'라는 조롱을 다시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여대야소' 시절이나 '여소야대' 시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국민들이 여당보다 야당을 더 성토하고 있는 이유다. 

야당은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권력의 부정과 비리를 감시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야당에게는 도무지 그 책임과 역할을 찾아볼 수 없다.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망각한 정당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할 터. 무기력한 야당의 미래가 지극히 암울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의회권력을 달라고 그렇게나 읍소하던 야당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이러고도 대권을 달라고 다시 울부짖을텐가? 야당은 국민들이 여당보다 야당을 더 비난하고 있는 이유를 직시해야만 한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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