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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명숙 무너뜨린 대법원의 부러진 화살

원래 불법정치자금이라는 것은 준 사람은 있어도 받은 사람은 없게 마련이다. 통상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든 아니든 일단 받은 쪽에서는 부인하고 본다. 이럴 경우 검찰은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사람의 진술에 맞춰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법부 역시 이 부분에 촛점을 맞춰 법리판단을 내린다.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날짜와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적혀있는 장부가 존재하고, 돈을 직접 전달한 사람이 혐의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경우와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경우에 어느 쪽이 범죄 사실을 입증하고 법리판단을 내리기 쉬운지는 초등학생 정도의 학습능력만 있어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돈을 건넨 사실을 자백한 경우엔 무혐의 처리를 내리고 돈을 건넨 사람조차 불법정치자금을 준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경우는 혐의를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걸까?





대법원이 어제 한명숙 전 총리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 8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한명숙 전 총리는 국회의원 직을 상실하게 됐고, 법정구속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한번 표적을 정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제거하기로 악명높은 검찰이 결국 한명숙이라는 정치거물을 쓰러뜨리고야 말았다. 성완종 사건에서 보듯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선 무디다 못해 녹이 슬대로 슨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검찰이 야당에 대해서만큼은 독기 서린 검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훗날 표적 수사의 대명사로 기록될 이번 사건은 검찰이 지난 2009 12월 당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한명숙 전 총리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검찰은 소환에 불응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와 총리 공관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하는 등 고강도 수사를 진행하며 비난을 자초했다.

야당과 시민단체 그리고 여론이 검찰을 비난했던 이유는 당시 한명숙 전 총리가 6개월 뒤에 있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당의 유력한 시장후보로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서울시장 선거를 코 앞에 두고 표적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를 흠집내기 위한 검찰의 수사는 잔인할만큼 집요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검찰의 기소 이후 서울시장 선거 직전까지 무려 13차례에 걸쳐 공판을 받아야 했고, 그때마다 검찰은 관련 내용을 언론에 흘리며 그녀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 결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전 총리는 0.7%의 차이로 아깝게 낙선하고 만다. 초박빙의 선거 결과는 검찰의 표적수사가 선거의 당락을 결정짓는 엄청난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을 가늠하게 한다. 당시 검찰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리하게 한명숙 전 총리를 기소했는가는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판결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재판부는 1~3심 모두 검찰이 제시한 공소장이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지 않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고 적시했다. 재판부의 판결문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검찰의 공소장이 말도 안될만큼 부실하고 억지스럽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검찰이 피고인 곽영욱의 허위자백을 이끌어 내기 위해 강압수사를 벌였을 가능성마저 제기하며 검찰을 굴욕적인 상황으로 몰고갔다.

그러나 검찰은 오히려 절치부심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곽영욱 전 사장이 안 통하자 이번에는 한신건영을 타겟으로 삼으며 국면을 전환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곽영욱 전 사장과 마찬가지로 한만호 전 대표 역시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가 있었음을 토로하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으나 이번에는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한번 정한 표적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검찰의 집요함이, 아니 더 정확히는 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한명숙이라는 정치인을 흠집내기 위해 시작된 검찰의 기획수사가 대법원의 도움으로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번 판결을 두고 말들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무려 6년을 지리하게 끌어 온 검찰의 한명숙 수사가 온당했다고 믿는 바보는 없다. 검찰은 정치권력의 하수인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고보수우경화된 대법원은 그에 걸맞는 정치적 판결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검찰이 기획한 정치적 표적 수사에 사법부의 정치적 판결이 더해지면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비합리적인 일들은 이와 같이 어느덧 일상이 된다.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을 제외하면 권위주의 정부의 검찰과 사법부는 한결같이 정치권력에 굴종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특히 군사독재시절이었던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에서는 이들의 전횡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권위주의 정부에서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파들을 몰아내며 시민의 기본권을 억압할 때마다 그 곁에는 언제나 검찰과 사법부가 있었다는 것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고, 검찰의 정치공작과 사법부의 정치적 판결이 남발되고 있는 것은 이 정부가 얼마나 권위주의적인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신호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가 유신철권통치로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말살한 독재자의 딸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과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 사건,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표현의 자유 억압과 침해, 검찰의 표적수사와 사법부의 정치적 판결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 이유다

한명숙 전 총리는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박정희 시절 두 번의 옥고를 치루어야 했다. 그런 그녀가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한번 수감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 기막힌 아이러니 앞에선 그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나 역사는 반드시 진실만을 기억한다는 것을 상기하자. 정의와 양심이 사라진 불의의 시대, 믿을 것은 오로지 그것 뿐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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