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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혁의 아이콘 '안철수'는 어디로 사라졌나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을 언급해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최근 김 후보가 안 후보에게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단일화 이슈를 부각시켜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단일화 없이는 지지율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 맞서기 어렵다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김 후보는 17일 국회에서 공약발표 기자회견을 연 직후 기자들에게 "(안 후보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정치적 신념과 소신이 확실하다면 동지로 생각하고 같이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단일화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강하게 부인해왔던 것과는 사뭇 뉘앙스가 달라진 것이다. 

지난달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당시만 해도 "단일화는 안 후보와 박 시장이 해야지. 안 후보가 민주당 쪽 대표도 하고 원래 그쪽인데. 만일 유승민 대표가 후보로 나왔다면 우리랑 단일화 얘기가 자연스러웠을 텐데 안 후보는 우리랑 상관없는 인물이다. 아무 상관없는 우리 둘을 왜 계속 묶는지 모르겠다"며 강하게 손사래를 치던 김 후보였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지방선거가 가까워 오자 기류가 바뀌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김 후보가 심경의 변화(?)를 나타낸 시점이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이데일리의 의뢰로 지난 13~14일 이틀 간 여론조사(서울시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844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4% 포인트)한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16%의 지지율로 13.3%에 그친 안 후보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안 후보는 20% 초중반대의 지지율을 나타내며 줄곧 2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는 3위로 밀려났다. 반면 김 후보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미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 후보가 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될 당시만 해도 일각에서는 "노느니 나오는  것"(정두언 전 한나라당 의원), "김문수는 단일화 카드"(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의 비관적인 평가가 주류였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김 후보가 예상밖으로 선전하면서 '박원순-안철수'의 2파전 양상이 될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 후보가 단일화 가능성을 얼핏 내비친 것도 이같은 정치지형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지율 상승세가 뚜렷한 만큼 단일화 문제를 선점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후보가 단일화 문제를 거론하자 관심은 안 후보에게 쏠리고 있다. 그동안 안 후보는 자신이 박 시장의 유일한 대항마라고 목소리를 높여온 터였다. 단일화 문제에 대해서도 안 후보는 "야권연대는 거듭 말하지만 없다. 왜냐하면 우리 바른미래당은 기득권 양당과 싸워서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 정당이다. 기득권 양당은 우리가 경쟁하고 싸우고 이겨야 할 대상이다"라고 강하게 부정해왔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안 후보는 김 후보의 발언에 강한 부정도 긍정도 아닌 아리송한 태도를 내비쳤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후보가 오늘 어떤 얘기를 했는지 살펴보고 있는데 일단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달리 김 후보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다시 당선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면서 "박 시장만큼은 안 된다는 취지로 단일화 발언을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발언의 진위를 좀 더 파악한 후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단일화를 부정하던 기존의 입장과는 상당한 온도차이가 느껴진다. 

안 후보의 유보적 입장은 그의 달라진 위상을 절감케 한다. 안 후보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새 정치를 앞세워 정치판을 태풍처럼 휘몰아치던 과거의 그가 아니라는 얘기다. 극우적 인식을  내비치며 표의 확장성 면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김 후보와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이를 여실히 방증한다. 지난 대선만 해도 안 후보는 홍준표 한국당 후보에게도 뒤진 3위를 기록하며 체면을 구겨야 했다.


ⓒ 오마이뉴스


이번 서울시장 선거 역시 마찬가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박 시장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야권 후보임을 강조해온 것과는 달리 안 후보의 입장은 곤궁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존재감이 지난 대선 당시보다 확연히 떨어진 데다가 이슈 선점에 있어서도 별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있다. 박 시장과의 격차를 줄여도 모자랄 시점에 김 후보와의 2등 싸움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김 후보의 단일화 언급은 이와 같은 지형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보수진영에게 단일화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면서 동시에 포기할 수 없는 '상수'다. 여당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진 선거역학 구도를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보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얄궃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 내부에서 단일화 요구가 멈추지 않고 있는 이유일 터다. 

관건은 단일화의 주체가 누가 되느냐다. 지금껏 두 후보는 '단일화는 없다'는 명제 아래 독자적 행보를 이어왔다. 서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표시하며 단일화에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박 시장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 것이라 공언하던 안 후보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는 사이 김 후보가 약진하면서 국면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당초 버리는 카드 정도로 여겨졌던 김 후보의 입지는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반면 안 후보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졌다.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선거 구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김 후보의 도약은 야권의 대표 후보로서 박 시장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려던 안 후보의 선거전략이 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 후보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난 대선의 악몽을 떠올릴 법한 기분 나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단일화는 조금 더 멀어진 모양새다. '반문정서'에 입각한 보수진영의 단일화 요구는 선거 막판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김 후보의 완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단일화 확률은 그만큼 더 줄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단일화는 어디까지나 김 후보의 중도사퇴를 가정한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려던 안 후보의 전략수정은 이제 불가피해진 느낌이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정치개혁의 아이콘이자 희망으로, 정국을 주름잡던 과거를 떠올리면 상상하기 힘든 기막힌 반전이다. 뭇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요동치게 만들었던 '안철수'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그의 정치적 미래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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