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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 원내 '넘버2' 김재원, 그의 과거 발언을 모아보니

ⓒ 한겨레

 

정기국회 마지막날이었던 10일 정치권은 아침부터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여야가 예산안을 비롯해 민식이법 등 비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숨가쁘게 움직이던 그 시각, 국회 앞에서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칭)으로 구성된 '4+1'협의체가 내년도 어린이집 0~2살 아이 1인당 하루 급식·간식비를 기존의 1745원에서 1900원으로 소폭 인상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단체는 "1900원은 어디 가서 커피 반 잔, 라면 반 그릇도 못 사 먹는 돈"이라며 "최소 2600원은 돼야 하는 데도 정부와 국회는 아이들이 결국 '현대판 보릿고개'를 넘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또 "서울시청직장어린이집은 급식·간식비가 하루에 6391원, 국회·청와대 어린이집은 3800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공무원 자녀가 아닌 아이들은 급식 차별을 겪어도 괜찮다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엄마들의 외침에 눈길은 자연스레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으로 모아집니다. 특히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가 주목받습니다.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예결특위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지하는 것처럼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국회 논의 과정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여야는 첨예한 기싸움을 펼쳤고, 그 결과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넘겨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는 상황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예산안은 10일 저녁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의 합의로 통과됐습니다).

예산안을 심사하는 예결특위는 소위 운영 방식을 두고 파행을 겪는 등 삐걱거렸습니다. 이후에도 여야 공방으로 심사가 지연돼 정상적인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0~2살 아이 급식·간식비 예산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대로 심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 와중에 최근 한국당 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된 김재원 의원은 급식·간식비 인상을 호소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엄마들을 향해 "스팸 넣지 마라. 계속하면 더 삭감하겠다"고 답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남다릅니다. 어린이집 급식·간식비는 22년 째 그대로입니다. 이를 인상해달라는 엄마들의 읍소에 예결특위 위원장이 저리 야박(?)하게 대응했다면 결과는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급식·간식비 인상 여부가 예산안을 심사하는 예결특위에 달려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엄마들의 간절함을 '스팸'으로 치부했던 김 의원이 같은 당 소속의 동료 의원들은 참 알뜰히 챙겼던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9일 당 소속 의원들에게 "관심을 가진 핵심 사업(1건)을 취합해 내년도 예산안에 최대한 반영하고자 하니 12일까지 회신해달라"는 공문을 내려보낸 것이죠.

김 의원의 공문은 정치권의 해묵은 관행인 '쪽지예산'과 연계돼 있습니다. 예산안과 관련해 늘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지역구 민원 챙기기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예산 심사를 해야 할 예결특위 위원장이 소속 의원들에게 '쪽지 예산'을 넣으라 독려를 한 셈입니다.

그 즈음 김 의원은 추경안 심사 도중 음주를 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추경 심사가 한창이던 지난 8월 1일 밤 김 의원이 술에 취한 채 회의를 진행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죠. 김 의원이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는 도중 횡설수설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대내외 경제 상황의 악화와 아베 내각의 경제보복 조치로 재정지출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추경안은 한국당의 장외투쟁과 국회 보이콧으로 세 달 가까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김 의원의 '쪽지 예산'과 '음주 추경'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이 솟구치게 된 것이죠.

사실 김 의원이 구설에 오른 적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2012년 9월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 대변인으로 내정됐던 김 의원은 기자들과의 저녁 회동 자리에서 막말과 폭언을 퍼부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발언 내용을 일부 기자들이 회사에 보고한 것과 관련해, "병X 같은 새X들아, 너희가 기자가 맞냐, 너희가 보고하는 것 우리에게 다 들어온다"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은 것입니다.

2015년 1월에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이 조직을 만들려고 구상하는 분이 아마 공직자가 아니라 세금도둑이라고 확신한다"며 "이런 형식의 세금도둑적 작태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 해 3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김 의원은 특위를 "불행한 사건에 개입해 나라 예산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 아닌가"라며 "호위호식하려고 모인 탐욕의 결정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한 특조위를 '세금도둑'이자 '탐욕의 결정체'라 규정한 것입니다.

지난 4월 말 패스트트랙 국회 충돌 당시에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도중 기표소를 점거해 회의를 방해한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선거법 개편 등 패스트트랙 안건 처리를 위한 무기명 투표 과정에 기표소에 들어간 김 의원은 10여 분 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위원들의 투표를 막기 위해 기표소를 점거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죠.

지난달 9일에는 대구 엑스포에서 열린 '좌파독재 공수처법 저지 및 국회의원 정수 축소 결의대회'에 참석해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향해 섬뜩한 막말을 쏟아내며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정권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한 이 대표의 작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발언과 관련, "그럼 2년 안에 죽겠네"라는 취지로 말해 논란에 휩싸인 것입니다. 파문이 거세지자 김 의원은 택시 기사의 발언을 옮긴 것에 불과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9일 있었던 한국당 신임 정책위의장 정견 발표 자리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 했던 사실을 털어놓은 것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입니다. 그는 2년 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던 당시를 회상하며 "노끈을 욕실에 놓아두고 망설이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동료 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공인으로서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김 의원은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심재철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나서 정책위의장에 선출됐습니다. '원내 2인자'로서 그는 앞으로 당의 정책을 기획·심의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게 됩니다. 전략·기획 능력과 경제통으로서의 자질을 동료들로부터 확실히 인정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김 의원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살펴본 것처럼 잇따른 막말과 폭언, '쪽지 예산', '음주 추경' 등 김 의원이 그간 보여온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이겠죠.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통과되자, 김 의원은 "4+1 협의체는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정당성도 전혀 없는 그야말로 예산 도둑질의 무리들"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김 의원을 향한 당내의 기대와 세간의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한국당 원내 '넘버 2'가 된 김 의원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