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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제주 예멘 난민 논란..정우성의 소신이 빛나는 이유

정우성은 악플 없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방송과 SNS 등에서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펼치는 모습에 사람들은 공감했다. 세월호 참사, 소방관 처우 문제 등 각종 사회 현안에 그는 침묵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냈다. 작년 12월 정우성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난민 문제를 언급하며 다시 한 번 큰 화제가 됐다. 미얀마 로힝야족의 사연을 소개하며 사회의 관심을 당부하는 그에게 대중들은 뜨겁게 호응했고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만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그가 최근 극심한 악플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제주 예멘 난민 문제와 관련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난 이후다. 해당 게시물에는 그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개념 배우'라 불리며 대중의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는 그조차 예멘 난민을 향한 한국 사회의 차별과 혐오정서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제주에는 현재 예멘인 500여 명이 머물고 있다. 지난 4월 말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입국한 난민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내전을 피해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가 체류 연장이 어려워지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이름도 생소한 낯선 나라 사람 수백 명이, 그것도 대다수가 남자인 이슬람 문화권의 난민들이 갑작스럽게 한국 땅으로 몰려들자 사회는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한 비방과 억측이 난무하는가 하면, 가짜 뉴스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면서 사회적 불안과 공포가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무슬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한국 사회 특유의 배타적 정서가 결합되면서 제주 예멘 난민 문제는 첨예한 사회적 논쟁으로 치닫고 있는 상태다. 예멘 난민 문제를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간 치도곤이라도 당할 만큼 과격하고 험악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예멘 난민에 대한 대중의 혐오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제주도 불법 난민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증, 무사증 입국, 난민 신청 허가 폐지 개정' 청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참여한 사람이 무려 60만 명이 넘는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 소통을 위해 게시판을 만든 이후 가장 뜨겁고 열띤 반응이다. 청원에 달린 댓글들에서도 격앙된 사람들의 감정이 여과없이 표출된다. 댓글들을 보고 있자면 예멘 난민들은 당장이라도 '격리'시켜야 할 흉악범죄자들에 다름 아니다. 


ⓒ 연합뉴스


정우성을 향한 대중의 호감도 이같은 혐오정서 앞에서는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난민의 비참한 실상을 세상에 알려온 그였다. 그의 활동은 사회에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런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이번에는 비난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미얀마 로힝야족의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하던 사람들이 제주 예멘 난민에게는 무자비한 인식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양측 모두 고통 속에 신음하는 난민이지만 그들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완전히 다르다. 이 극명한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주 예멘 난민들과 관련해 유령처럼 떠도는 가령 '그들 중에 이슬람 테러분자가 있다', '한국을 이슬람화 하려 한다', '성범죄가 증가할 것이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다' 등의 풍문들은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근거가 없거나 왜곡·과장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전세계적으로 난민이 급증하고 있지만 세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경우는 거의 없다. 범죄율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디에서도 난민 때문에 범죄율이 증가했다는 보고나 통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2015년 이후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한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은 오히려 범죄율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 허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예로 드는 것이 2015년 독일에서 발생한 '퀼른 사건'이다. 그들은 이 사건을 난민 허용을 반대해야 하는 주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퀼른 지역 축제에서 발생한 성추행 및 절도 사건에 무슬림 난민 수백 명이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자 곳곳의 무슬림 난민들에게 집중적인 비난이 쏟아됐다. 특히 난민 가운데 남성 무슬림은 도매급으로 엮여 공공연히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화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무슬림 난민이었을 뿐이지 무슬림 난민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이는 마치 강남역 사건의 범인이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는 모두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슬림 난민에 대한 이와 같은 집단적이고 맹목적인 증오와 혐오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제주 예멘 난민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안에 막연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낯선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처음 보는 것, 해보지 않은 것,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력한 방어기제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과 SNS를 타고 퍼지는 온갖 루머와 근거없는 주장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상대에 대한 극단적인 적개심과 공격으로 변모시킨다. 

서로 다른 사회·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도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호주 못지 않은 '순혈주의'가 무의식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다. '배달의 민족', '단일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배타성과 우월성이 알게 모르게 우리 내면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무지와 편견, 그리고 피해의식도 있을 것이다. 살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할 수밖에 없었던 예멘 난민들이 이 땅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처럼 많은 이유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뒤엉켜 있다. 


ⓒ 제주의소리



"우리는 우리 각자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본다. 예멘 출신 난민들을 향한 혐오감정은 그들에게 투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홍세화가 쓴 칼럼 "이 혐오감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에 나오는 내용이다. 글을 읽어내려가던 중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판단한다. 예멘 난민 문제 역시 마찬가지일 터다. 누군가에겐 인도주의적인 일이 어떤이에겐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난민은 난민 문제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늘 불평등했어요. 불합리했고요. 그리고 상처가 치유 받지 못했던 사회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갑자기 난민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문제가 커진 것 같은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런 갈등, 이런 것들도 잘 해결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좀 만들면 좀더 성숙한 대한민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난민을 보살필 수 있는 국가도 될 수 있을 거고. 그리고 사회 안에서 이렇게 소외된 계층에 대한 돌볼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 갈 수 있는 분위기로 이번 기회로 인해서 만들어나가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정우성은 난민 문제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와 연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에 오랫동안 노출돼온 탓에 약자와 소수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예멘 난민 문제가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예멘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존재한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 시비를 가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홍세화의 지적처럼 이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우리 사회에 '정우성'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점점 더 따뜻하고 살만해지는 세상, 나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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