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의 승패를 좌우했던 몇 가지 사건들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과 이를 둘러싼 경찰과 정부여당, 당시 박근혜 후보의 절묘한 콤비플레이가 손꼽힌다.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과 그 일당들은 조직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에 깊숙히 개입해 왔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이들은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어 버렸다. 마치 하와가 사악한 뱀의 유혹에 이끌려 먹어서는 안되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좌익효수'라는 섬뜩한 닉네임을 가진 국정원 직원 김하영이 이 사건의 얼굴마담이었다면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대상을 제압해야 할 '적'으로 규정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 희대의 선거부정사건을 주도한 행동대장이었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국정원의 범죄를 비호해주는 조력자였고, 정부여당은 외부로 노출된 아군을 위해 경찰에 외압을 행사하는 돌격대였다. 그리고 제갈량이 빙의한 듯 박근혜 후보는 신통하게도 경찰의 중간수사결과발표의 내용을 꽤뚫고 있었고,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도 전에 '댓글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며 문재인 후보를 무섭게 몰아부쳤다. 


어느 것 하나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절묘하게 맞아 돌아갔다. 국정원, 정부여당, 경찰, 그리고 박근혜 후보까지 이 각본있는 막장드라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주·조연 배우들이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지난 2012년 10월 8일 제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NL 포기 발언' 역시 지난 대선의 승패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 장면 중의 하나다. 당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정치쟁점화 시켰다.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적 현실과 전직 대통령, 그것도 수구보수세력과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토포기라는 선정적 이슈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는 꽃놀이 패에 다름 없었다. 그러나 'NLL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토를 포기하는 발언을 과연 했는가(그는 물론 하지 않았다)에 있지 않았다. 실체적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의혹 그 자체이고 이 의혹을 선거일까지 활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대로 이 꽃놀이 패의 승자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현 박근혜 대통령이다. 


지난 대선의 승패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 사건이었던 이 두가지는 국정원이 직접적으로 관여되어있다는 것과 이 사안들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실체를 밝히려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좌천과 진급누락 등의 벌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해할 수 없는 상벌의 기준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그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의 운명이 뒤바뀐 셈이다. 통상 인간의 도덕률이나 보편적 상식에서라면 권선징악의 구도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명징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같이 명료한 권선징악의 상벌이 구현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리고 이같은 난망한 현실을 재차 확인사살시키는 일이 또 일어났다. 


검찰은 어제(9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을 누설하거나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정문헌 의원에 대해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고 나머지 9명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약식기소'란 검찰이 피의자에 대해 징역형이나 금고형보다 벌금형이 적당하다고 생각될 때 선택하는 기소방법이다. 쉽게 말해 검찰에게 피의자에 대한 처벌 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검찰이 정문헌 의원을 약식기소한 이유가 그의 의원직을 유지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검찰의 '약식기소'의 변으로 내세운 '어쩌구 저쩌구'는 정말이지 구질하기 이를 데 없다. 김무성 의원과 나머지 여덟명의 무명씨에 대한 '무혐의' 처분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의 변을 듣고 있자면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 따위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실소만 터져 나온다. 


불의를 행사하는 사람에게 복종하고 충성하는 자들의 신념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가치의 크기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이보다는 차라리 파트라슈의 그것이 훨씬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계량화하기 쉬워 보인다. 안타깝게도 견공의 행실을 사람의 그것과 비교해야만 하는 현실이 마침내 도래했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또 없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본 글에 거론된 파트랴슈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지난 2013년 2월 20일 한 사람의 정치인이 현실정치를 은퇴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여기서 지칭하는 '우리'라 함은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거침없는 언변, 비논리적 객기로 무장한 여타 저질 정치인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철학과 혜안을 가진 그를 그리워 하는 일단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물론 이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가 머물렀던 정당마다 분란과 분열이 일어난 것을 비꼬며 '정당 스포일러'라는 별칭을 부여하는가 하면, 달변가인 그의 거침없는 언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촉새'라는 조롱섞인 닉네임을 달아주기도 했다. 그는 이처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정치인이었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치인 유시민을 성원해주셨던 시민여러분 고맙습니다. 열에 하나도 보답해 드리지 못한 채 떠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2013. 2. 20 유시민' 


그의 정계 은퇴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모으며 한때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까지 여겨졌던 정치인의 퇴장치고는 매우 조용하고 소박했다. 파격적이고 화려했던 그의 등장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의 이 소박한 퇴장은 유시민이기에 전혀 이상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그는 형식과 절차, 격식 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명한 학자이자 칼럼리스트에서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이후 보건복지부장관과 야당의 대표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의 애증의 정치인생을 마감하며 그는 원래 있었던 시민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정계를 은퇴한 후 책 집필에 전념하던 그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NLL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애초 이 논란에 불을 지폈던 새누리당의 정문헌 의원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정문헌 의원의 착각 또는 거짓말'이라는 연재 형식의 칼럼으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개재했다. 이 칼럼의 말미에 그는 의미심장한 표현을 남겼다. 그는 "정치참여는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권리이며 정치현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시민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정치 참여 방법이다.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두었을 뿐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시민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다짐대로 그는 어제(21일)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추모하는 산문집 '그가 그립다' 북콘서트에 참석해서 박근혜 정권을 향해, 시민들을 향해 묵직한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집권 7년동안 대놓고 부패를 저질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와 함께 세월호 사건 역시 부정부패가 그 원인으로 "돈이 오고갔든 안 갔든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반칙과 편법•불법을 저지른 부패"라고 단언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고위공직자들의 면면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손쉽게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편법증여 및 상속', '군 면제', '논문 표절' 등의 편법과 불법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사사로이 사익을 주도하는 자들이 판을 치는 사회가 정의 및 공정과 멀어지는 것은 필연이다. 대형 국책사업에는 언제나 특혜와 담합비리가 속출했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를 엄격하게 지휘•감독해야 하는 공직자들부터가 반칙과 편법•불법에 이미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참사 역시 이같은 부정•부패가 부른 인재이며 관재였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척결하겠다는 '관피아'를 조장하고 활개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정부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마치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이 이를 구습, 관행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최고통수권자로서 대단히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유시민이 분노하는 대상은 따로 있다. 그의 날카로운 돌직구가 향하는 곳은 박근혜 정권이 아니라 시민들이다. 그는 "제가 지금도 화가 나는 건 왜 우리 국민들은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내버려 두고 저렇게 물질에 대한 욕망을 대놓고 자극하고,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좋아할까 하는 것"이라며 "예전에 정치할 때는 국민에게 화가 난다고 하면 조•중•동에서 '유아무개, 드디어 국민 탓'이라고 하겠지만 이젠 말할 수 있다. 국민들한테도 저는 화가 난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유시민다운, 유시민만이 할 수 있는 화법이자 상황인식이다. 사실 문재인에게 없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유시민의 투사적 기질과 화법의 기교다. 문재인에게 조금 더 투사의 기질이 있었더라면, 이성의 힘을 조금 덜어낼 수 있는 화법의 기교가 있었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본 글의 주제와는 조금 어긋나겠지만) 문재인은,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치를 계속 할 생각이라면 조금 더 전투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한 법이다. 확실히 그는 지금과 같은 난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유시민이 분노하는 까닭은 명징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분노가 온전히 그만의 것이 아님을 또한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거론하면서 빠지지 않는 지역•이념•세대•계층 갈등과 함께 유시민이 거론한 나쁜 정치인을 걸러내지 못하는 저급한 유권자 의식이야말로 우리사회의 성장과 도약을 가로막는 병폐 중 으뜸이기 때문이다. 정몽준 막내 아들의 일침을 그저 미성숙하고 철없는 아이의 실언으로 흘려 듣는다면 고도의 정치적 기만과 위선이 판치는 세상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며칠 전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만평은 우리사회의 기득권과 피기득권 사이의 질곡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충격을 주었다. 유시민의 분노 역시 도무지 바뀌지 않는 무분별한 유권자 의식으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어쩌면 유시민의 이 이유있는 도발(?)은 또 다른 논란을 유발할 지도 모르겠다. 그는 관성을 거스르는 타입의 인간이다. 옳지 않다고 믿는 현상들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절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그는 혼란과 갈등, 분열을 야기시키는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들어 왔다. 언론이든, 정당이든, 정치인이든,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오래된 관성에 저항해 온 인물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칙하게도 시민들의 낡은 정치 의식을 겨냥하고 있다. 


유시민의 문제제기가 옳은 것인가, 아닌가는 이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그의 지적처럼 현재 우리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원칙을 무시한 불법과 부정의 광란의 질주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깨어있는 유권자의 올바른 정치행위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가 유권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지 않는다면 이 질곡의 시간은 꽤 오래 지속될 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아주 꽤 오래도록.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1. 나그네 2014.05.25 00:21

    유시민의 일침,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 같네요.
    정말 부끄러운 우리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시민들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그 어느때보다 더.

  2. 뜨네기 2014.10.16 14:01

    유시민이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했군요.
    그러는 유시민 자신은 얼마나 국민들과 소통했는지 정말 되묻고 싶습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분란사태때 유시민이 보여준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이고 분열주의적인 모습, 자신의 죄를 남에게 뒤집어 씌우고 당을 깨고 나가버리던 그 사악한 얼굴, 참 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정권에서 무슨 장관인가 하던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장서서 밀어붙이던 분들이 누구이셨던지 유시민과 문재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런 분이 이제사 '타인의 마음과 공감'어쩌고 저쩌고 떠벌이다니 가증스럽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통합진보당 분란사태는 재판결과 유시민 일당과 조준호 일파가 저지른 부정선거였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다가 잘 안되자 같이 책임지자며 억지를 부렸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동지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 마녀사냥하는데 앞장서는 더러운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는 당을 깨고 나갔죠. 그과정에서 유시민이란 분은 자신이 만든 '참여당'이 지고 있던 빛 8억원까지 통진당에 떠넘기고 나왔다죠. 참으로 이분이 하는 짓이 MB나 미스 박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분이 국민들에게 분노를 하다니, 도둑이 매를 들어도 유분수군요.
    이런 분의 분노에 공감 할 수 밖에 없으시다니 좀 의아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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