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이란 표현 다들 들어 보셨을 겁니다.  한자의 뜻 그대로 직역해 보면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란 뜻이 됩니다. 사전적으로는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 강도떼', '파렴치하게 남의 재물을 강탈하며 행패를 부리는 무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에 맞게 사전적 의미로 치환해 보면 '조폭', '깡패'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겁니다. 그런데 이 '불한당'이란 단어는 직역이나 사전적 의미를 넘어 조금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땀한방울 나지 않을 정도로 뻔뻔하고 몰염치한 사람을 일컬어 '불한당 같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원래의 의미가 확대되어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 주위에는 '불한당' 같은 짓을 거리낌없이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가진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온갖 부정과 불법을 자행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 누가 봐도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특권을 이용해 교묘하게 법의 심판을 피해가는 사람들, 비열하고 비겁한 권모술수로 진실을 은폐하고 정의를 짓밟는 사람들, 개인의 양심을 뒤로 하고 권력에 굴종하며 사회 공동체의 보편적 상식을 깨뜨리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해서 수도 없이 들어 왔고 배워 왔습니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과 기준 등에 대해서 학습해 온 것이죠. '거짓말 하지 마라', '남의 물건 훔치지 마라', '다른 사람과 싸우지 마라', '나보다 약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마라' 등등은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 왔던 사회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률입니다. 이와 같은 도덕률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마 저를 비롯하여 여러분들 모두가 부모님으로부터 볼기짝에 불이 나도록 맞은 기억들이 있을 겁니다. 부모님이 어린 자식들을 이토록 엄격하게 훈육시키는 것은 성인군자가 되기를 바래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을 익히게 하기 위함입니다. 


학교에서는 이같은 도덕률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사회적 정의, 개인적 양심, 보편적 상식 등이 우리 역사와 사회를 통해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져 왔는지를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일선 교과과정을 통해 배우게 되는 도덕률 안에 서두에서 언급했던 '불한당'이나 할 반사회적 행동들은 당연히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런 반사회적 행동들은 언제나 교과서 밖에서 인간의 탐욕을 먹고 자라 납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치지도자들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미래세대에게 전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지금 국민들에게 깊은 좌절과 상처,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불한당'이나 할만한 부끄러운 짓을 서스럼없이 하고 있으니 말그대로 '불한당'이라 불리워도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실종자들의 무사 생환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내 일이 아닌데도 안타까움에 연일 눈물을 훔치기를 반복합니다. 기적에 기적에 기적이 제발 이루어지기를 하루에도 몇번씩 기도합니다. 아마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같은 심정일 겁니다. 슬플 때 함께 눈물을 흘리고 기쁠 때 함께 웃어주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는 절대로 변하지 않기때문입니다. 백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조문행렬에 참가하고 있고, 보이는 곳에서 때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배워왔던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도덕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과 인간 본연의 정서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만 다른 것입니까. 왜 이 사람들만 국민정서와는 다른 언행으로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시민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는 것입니까.


'세월호' 참사는 '인재'에서 이제는 '관재'의 정황들이 이곳저곳에서 속속 들어나고 있습니다. 살릴 수 있었던 귀중한 목숨들을 살리지 못한 책임을 국가지도자들은 통감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향한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희생자를 조문하는 자리에서조차 '조문 연출'로 국민을 기만하더니 청와대로 돌아가서 국무회의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를 했습니다. 사과의 시기와 방식 모두 몰지각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유가족들을 두 번 울리는 이런 무미건조한 사과를 유가족들이 받아들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박 대통령에게 국정 최고통수권자로서의 일말의 책임감이 있었다면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긴 말 할 것 없이 대통령으로서 정말 무책임한 행동을 한 겁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이번 사과에서 그 어떠한 진정성도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가족들이 박 대통령의 본심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유가족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사과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제(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도종환 의원의 "대통령의 사과가 충분했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대통령으로서 국민여러분께 진심어린 사과를 하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서남수 장관다운 발언입니다. 아마 박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 공직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라도 대부분은 똑같이 대답했을 겁니다. 혹 다른 마음을 품고 있더라도 대답은 저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요'라고 양심과 원칙에 따라 소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정부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라면 비극입니다. 글의 흐름에서 조금 벗어나겠지만 권은희 과장이 문득 생각납니다. 양심과 원칙에 따라 진실을 소신있게 말했던 사람은 이 정부에서 그녀가 유일합니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사회의 투명성과 건강성은 자연스레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반대라면 당연히 최악이겠지요. 


서남수 장관의 발언은 새삼스러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언급한대로 그는 박근혜 정부의 장관다운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이 박 대통령의 '조문 연출'과 형식적 '사과'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남수 장관의 발언에서도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의 발언이 우리가 옳다고 배워 왔고, 믿어 왔던 가치들을 조롱하는 반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백명의 승객들이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속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중의 삼분의 이가 어린 학생들이었습니다. 사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지금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설사 대통령이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고 해서 이미 벌어진 참극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이 정부에게는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위로하고 사고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박 대통령과 정부가 방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사고수습에도 무능했을 뿐만 아니라 위로는 고사하고 오히려 깊은 상심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불한당'이나 할 짓을 이 정부가 하고 있는 셈이니 국민들의 원성과 분노가 가라 앉질 않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합니다.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이 정권이 '침몰'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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