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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고리 원전 건설, 과연 누구를 위함인가

지난 2011 3 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억되는 이 사고로 무려 18520(경찰 통계)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경제적 피해도 어마어마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약 169천억엔( 175조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애초 이 사고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불가항력의 재해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자연재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건의 경위를 면밀히 조사한 끝에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안일한 대응과 노후한 설비, 원전의 안전에 대한 자만과 오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1차적 원인이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라면 그 피해를 더욱 키운 것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세계 각국에 원전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원전의 존폐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고 이후 각국에서는 원전을 둘러싸고 원전 옹호론자와 원전 폐기론자 사이의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대재앙을 겪은 이후 원전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각국 정부는 노후한 원전의 가동을 중단시키고 점진적으로 원전을 폐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독일, 미국, 캐나다, 스위스,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등의 국가들은 노후한 원전을 폐쇄하고 감축하는 정책을 잇따라 발표했고
, 원전 건설을 폐기하거나 잠정적으로 중단시킨 나라들도 있다.


물론 모든 국가가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을 필두로 베트남, 중동, 아프리카 등 신흥 공업국과 제3세계 국가에서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여전히 원전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의 기류가 대세를 이룬 가운데 한 쪽에서는 이처럼 경제성과 효율성을 앞세운 원전 신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우리나라 역시 원전 신축에 적극적인 국가 중의 하나다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자력위원회)는 신고리 원전 5·6기에 대한 건설허가 안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정부와 원자력위원회는 오는 2022 3월까지 신고리 원전 5·6기를 완공한다는 복안이다. 정부와 원자력위원회는 신고리 원전 5·6기가 진도 7.0의 지진에도 끄떡없는 내진성능을 갖추고 있어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원전 건설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 그리고 지역주민들은 정부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신고리 원전 5·6기의 신축에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신고리가 부산, 울산 등의 광역도시와 인접해 있어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씻을 수 없는 참극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춘 더민주당 의원,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 노회찬 정의당 의원 등 22명의 의원들로 구성된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탈핵 국회의원 모임)은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km 내에는 약 16만명이 거주했는데 반해, 고리-신고리 원전 반경 30km 내에는 무려 38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단 한번의 사고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대재앙에 휩싸이게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또 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기가 진도 7.0의 강진에도 문제없는 내진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환태평양 지진대를 끼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요동치는 지각 변동을 민감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일본 후쿠시마를 강타한 진도 9.0의 강진이 언제 우리나라를 덮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신고리 원전 5·6기에 인접해 있는 낡고 노후한 원전들이다. 탈핵 국회의원 모임은 "고리 1~4호기와 신고리 1~4호기가 존재하는 지역의 최대 거리가 고작 3.5km 정도로, (이곳에) 원전 10개를 밀집시킨 것은 지구상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여기에 고리 1호기는 원전 수명 30년을 넘겨 38년째 가동 중이며, 고리 2~4호기 역시 완공된 지 30년을 넘긴 노후한 원전들이다. 설계 수명을 넘겼거나 그에 근접한 원전 가까이 원전을 건설하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인 것이다.


ⓒ 오마이뉴스


지난해 2 27일 원자력위원회는 월성원전 1호기에 대한 수명 연장을 가결했다. 수명 연장에 반대해온 야당과 시민단체, 지역주민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위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 측 인사가 강행한 사실상의 날치기 통과였다. 이처럼 설계 수명을 넘긴 원전이 멈추지 않고 가동되고, 원전 옹호론자들이 계속해서 원전 증축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해 훗날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원전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그동안 수수방관해 왔던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각계각층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원전의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고집해 왔었다. 

당시 일본 정부가 원전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수수방관했던 이면에는 원전마피아가 존재하고 있었다. 정계와 재계는 물론이고 학계와 언론계까지 손을 뻗히고 있던 원전마피아들이 거대한 카르텔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야당과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힘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원전마피아들은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불량부품을 납품하고, 이를 위해 로비와 뇌물을 공여하는가 하면 원전 관련 각종 데이터와 문서를 조작하거나 허위 보고를 하는 등 갖은 편법과 불법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막대한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원전부품 비리 논란이 사회 문제로 공론화되었고, 그 과정에 한국수력원자력을 둘러싼 학계와 산업계 사이의 '공생관계'가 여러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거대한 세력을 구축한 원전마피아들이 원전 정책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며, 여기에 원전 산업과 맞물린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전 산업과 관련한 거대한 자본을 둘러싸고 학계와 산업계, 재계와 정치권이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한 채 원전 산업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심심하면 터져나오는 원전부품 비리, 비상식적인 원전의 수명 연장, 탈원전의 흐름을 역행하는 원전 증축 등은 모두 그와 깊은 연관이 있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고리원전이 후쿠시마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세계의 원전 전문가들 역시 낡은 원전의 수명연장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원전 안전성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원자력위원회,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있는 원전미피아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에서 확연히 드러났듯이 안전과는 담을 쌓고 있는 나라에서 이보다 더 위험천만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지 의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끔찍함을 보고도 그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원전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경제성과 효율성의 이면에 자본과 기득권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막아야 한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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