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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누가 이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그리고 손 때 묻은 작업 공구들과 장갑. 지난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중 숨진 19살 청년 김모씨의 가방 속에는 고된 업무에 시달리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지품들이 담겨 있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살인적인 격무를 묵묵히 감내하던 이 청년은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불과 몇개월만에 허무하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꽃이 피기도 전에 사그라든 어린 노동자의 죽음 앞에 가족들은 물론이고 시민사회가 오열하고 있다.

특히 사고 다음날이 청년의 생일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슬픔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온라인과 SNS에는 그를 추모하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고, 사고 현장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을 마련해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과연 누가 이 꽃다운 청년의 삶을 멈추게 만들었을까한 어린 노동자의 죽음 앞에 사회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그의 죽음 속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모순이 적나라하게 녹아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자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오마이뉴스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의 사망사고는 지난 2013년 성수역 사고 이후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2014년 독산역, 2015년 강남역, 그리고 이번 구의역 사고까지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마다 안전관리 규정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하철 1~4호선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서울메트로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현실과는 괴리된 탁상 메뉴얼을 만들기에 급급했고,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21' 작업 원칙이다. 작년 8월 강남역 사고 이후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시 반드시 '21'로 해야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애초부터 지키기 힘든 원칙이었다. 49개 지하철 역사 스크린도어를 외주업체 직원 6명이 담당하는 현 시스템에서 관련 규정을 지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와 외주업체 사이의 계약 조건 역시 '21' 규정을 지키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계약서 상에는 '장애 발생 1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지시사항이 있다. 이를 위반할 시 재계약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용역직원들은 다른 직원을 기다릴 사이가 없이 부득불 혼자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 출동 시 작업 사실을 역무실과 전자운영실에 통보하고 작업표지판을 부착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도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관리 메뉴얼 중 지켜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번 사고는 관리 감독과 안전 책임을 용역회사에 떠맡긴 채 나몰라라 했던 서울메트로, 저비용 경영을 앞세워 인력충원과 전문교육 실시에 소홀했던 외주업체의 과실 등이 한데 맞물려 발생한 인재였던 셈이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을 놓고 서울메트로 측은 '개인과실'로 몰아가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서울메트로는 숨진 김 씨가 '21조'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혼자 무리하게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메트로의 주장은 지난해 발생했던 강남역 사건, 지난 2013년의 성수역 사건 당시와 대동소이하다. 노동자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한겨울 얼음장보다 차갑다.

지난해 싸늘히 식은 몸으로 파도에 떠밀려온 세살배기 아이의 사진 한장이 전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적이 있었다. 아일란 셰누(Aylan Shenu)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는 시리아 난민으로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 민병대간의 치열한 교전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을 가려다 배가 뒤집혀 목숨을 잃게 되었다. 아이의 죽음에는 전쟁과 분쟁에 신음하고 있는 중동지역의 현실과 그로부터 탈출하려는 난민들의 처절한 삶이 복잡하게 연계되어 있다.

서울메트로의 시각대로라면 그들은 셰누의 죽음 역시 개인과실에 불과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환경과 시스템의 모순, 뒤틀린 현실에 대한 성찰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셰누의 비참한 죽음이 중동지역의 끔찍한 내전과 유럽의 경색된 이민정책 탓이지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노컷뉴스



이번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의 책임은 계속되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관리 감독 없이 용역업체에 안전 책임까지 떠넘긴 서울메트로와 인력충원은 고사하고 입사한 지 7개월 밖에 안된 신입직원을 험지에 내보내는 외주업체에 있지 안타깝게 희생된 어린 노동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서울메트로의 주장은 사건의 본질과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몰인정하고 비인도적인 책임전가에 불과하다. 

2013년 성수역을 시작으로 벌써 네번째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끔찍하게도 우리 사회는 숱한 사건과 사고를 겪어도 전혀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이번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의 비정규직 어린 노동자가 목숨을 잃어야 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애잔하고 처연하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그의 죽음 속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와 치부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애통하다.  

 

셰누의 죽음은 중동지역의 분쟁 해결과 평화 정착, 그리고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 많은 서방국가들의 이민정책을 되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문제를 유발시킨 요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다각도로 이루어진 탓이다. 우리의 현실은 과연 어떨까나는 이 질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지 않으려면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하니까 말이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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