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3년 9월 10일 작성된 글입니다)


1980년 대와 1990년 대 초반 무렵 대학을 다니던 학생들에게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필독서와도 같았다. 지금은 인문학 경시풍조와 급변하는 세계 정세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그 시절 대학가에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 곳은 비단 운동권 학생들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세상에 의문을 품고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청춘들을 위한 불온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이 곳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와 TV를 통해 주입되었던 지식들이, 사실은 모순으로 가득찬 비현실적인 세뇌교육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했다. 


그 무렵 운동권 학생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사상적·이론적 지식과 배경을 무장하기 위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그 곳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설정해 놓은 반쪽짜리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열린 공간이었으며 이와 동시에 불온성을 상징하는 폐쇄된 공간이기도 했다. 이 곳은 탈피를 통해 나비가 되기를 갈망했던 젊은 지성들이 꼭 가야만 하는 장소였고, 반드시 머물러야만 했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필자도 이 곳에서 헤겔을 만나고, 마르크스와 조우했으며, 체 게바라의 투쟁과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함께 공유했다. 




<수많은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은 인간의 사유와 철학을 돕는 양서들이다. 출처:구글이미지 검색>


오늘 필자가 문득 80년 대의 그때를 추억하게 된 것은 '내란음모죄'가 적용돼 구속수감된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과 이 사건을 동아줄로 삼아 국면전환을 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새누리당 및 국정원, 수구보수세력의 지나친 공안정국 조성국면에 한숨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 통합진보당 경선부정사건과 똑같은 흐름으로 흘러가는 이석기 사태


마치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번 사건은 지난해 총선 직후 한달이 넘도록 정국을 술렁이게 만들었던 통합진보당 경선부정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통합진보당 경선부정사건의 본질은 진보당 내부에서 자행된 패권주의와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계열(NL)과 진보신당 계열(PD)에 참여당이 가세해 만든 정당이었다. 따라서 각 계파의 입장과 시각이 첨예하게 다를 수 밖에 없는 정당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내부수습과정을 거쳐 합리적으로 봉합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같은 태생적 한계와 약점은 통합진보당 보다 새누리당과 수구보수언론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새누리당과 수구보수언론은 종북과 색깔론으로 매도했고 이를 합리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진보당의 내부 분열로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갔던 것이다.


그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통합진보당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민주통합당은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고 이에 따라 광우병 사태에 대한 정부의 거듭된 거짓말, 민간인 사찰, BBK 의혹 재점화, 내곡동 사저 문제, KTX 민영화 문제, 이상득 의원 비자금 사건, 새누리당 김형태·문대성 당선자 자질 논란,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관여되어 있는 파이시티 사건, 4개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등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과 중요한 민생  현안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민감한 진보적 이슈들을 제기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규명해야 할 시점에 통합진보당의 경선부정사건, 더 정확히는 새누리당과 수구보수언론이 사태의 본질을 매도하고 덧칠한 종북주사파 논란이 이처럼 모든 이슈들을 일거에 잠재워 버린 것이다. 


그때의 상황과 현 정국은 매우 흡사하다. 민주당은 '내란 음모죄'란 무시무시한 주홍글씨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는 형국이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규탄하고 있는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의혹이 '이석기 사태'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궤도에서 이탈한 듯이 보인다. 촛불민심에는 철저하게 외면했던 방송과 언론이 기다렸다는 듯 앞다투어 이번 사태를 대서특필하고 있고,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의혹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이번 기회에 (절대로 그럴 리 없겠지만) 종북세력의 싹을 잘려버려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으름장을 놓고 있다. 


■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색깔론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어김없이 등장하며 단번에 사태를 해결하는 기묘한 능력을 지닌 색깔론은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수구보수들을 위한 전가의 보도이자,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종북'이라는 주홍글씨는 궁지에 몰려있던 특정세력들을 어느 틈엔가 무적의 철인 28호로 돌변하게 만들어 놓았다. 


<악의 무리를 소탕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철인 28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출처:구글이미지> 


철인 28호로 변신한 이승만에에 의해 죽산 조봉암 선생은 억울하게 사형을 당해야 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평생 빨갱이란 낙인이 찍힌채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좌익, 혹은 빨갱이란 이름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과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어디 그들 뿐이랴!


 ■ 너희가 진정으로 종북을 아느냐?

 

지난해 통합진보당 경선부정사태에 이어 이번에 다시 거론되는 종북세력과 주사파 논란은 색깔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진화시킨 결과이다. 북한체제를 무비판적으로 흠모하고 따르는 세력을 의미하는 '종북세력'과 이들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주체사상은 80년 대를 통해 대학가에서 북한의 혁명이론을 근거로 외세, 더 정확히는 미제국주의의 축출과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을 강조하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체 게바라의 투쟁기,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 등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군부독재체제에 맞서 이 시기 운동권에 몸담고 있던 학생들에게는 필독도서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은 군부독재체제 하에서의 민주주의 탄압과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체제의 하나로써 공산주의 체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를 자신들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으려 했다. 이들이 일명 주사파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새누리당에도 과거 주사파로 활동했던 의원들이 상당수 있고, 그들을 보좌하는 보좌관, 지구당 위원장, 원외 위원장 들 중 다수가 과거 운동권 시절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반국가세력의 일선에서 맹활약했던 인사들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만큼 1980년 대 운동권 출신들에게 있어 북한체제는 모순덩어리로 비춰지기만 했던 독점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대체제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대안으로서 학습했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북한은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3대 부자 세습을 하고 있는 독재왕국에 불과하다. 외국자본과 구호단체의 인도적 지원이 없으면 버텨낼 수 없을만큼 북한의 경제난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처럼 그 실상이 낱낱히 공개되고 있는 북한의 체제는 더 이상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체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는 실패한 구체제일 뿐이며, 따라서  보편적 상식과 이성을 가진 국민에게 '종북'은 허무맹랑하고 시대착오적인 과대망상에 다름 아니다. 

 

 

■ 민주주의의 기본을 망각한 종북몰이

 

 

안타깝게도 우리사회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함께 할 수 없는 대상으로 규정짓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기만 한다면 서로 다른 생각들이 다양하게 소통하고 조정과 합의의 과정을 거치는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낳게 되고, 사회구성원들간의 극단적인 분열과 혼란이 더해질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을 특정세력이 주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해방이후 좌우의 극심한 대립으로 사회적 혼란기를 겪어야만 했던 대한민국, 그리고 이후 맞이한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정권유지와 수구기득권세력의 체제유지를 위해 악용하고 있는 특정세력에게 민주주의의며, 역사며 국가와 국민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논제가 아니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민주주의 역시 스스로 정화와 자정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출처:구글>

 

흔히들 고여있는 물은 썩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야만 하고,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정화되는 자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깨끗해 진다. 민주주의의 원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다양한 의견이 서로 소통하고 갈등하고 부딪히면서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 상식과 합리적 판단을 거쳐 사회적 합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토대로 보자면, 시대흐름과 국민의식에 반하는 사상을 주장하거나 과거에 매몰된 채 시대를 역행하는 세력들은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사회구성원들에게 의해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밖에는 없다. 대관절 어느 국민이 3대 세습체제의 참담한 실상과 폐해가 모두 공개되고 있는, 실패한 북한체제를 따르고 추종하려 한단 말인가?

 

■ 국민에게 철퇴맞을 종북세력, 그 다음 대상은?

 

새누리당과 수구보수언론의 종북몰이는 그런면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을 망각한 파시즘적 광기에 다름 아니다. 새누리당과 수구보수언론이 굳이 종북세력을 발본색원하지 않아도, 저들은 스스로 퇴화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누구보다 종북세력의 준동을 원하고 있고, 그들의 명맥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세력이 바로 새누리당과 수구보수들이라는 데에 있다. 이 둘은 결국 한 배를 타고 있으면서 적대적으로 공생하며  민주주의의 합리적 기능을 저해하는 암적인 존재들인 셈이다.

 

3년 간 벼르고 별렀다던 국정원의 치밀한 내사 덕분으로 종북세력이 국민들의 철퇴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다음 번에 국민으로부터 철퇴를 맞게 될 세력들이 누가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새누리당과 수구보수세력의 눈엣가시인 진보세력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세력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주지한 바와 같이 시대흐름에 반하거나 민의를 역행한 채 과거로 치닫는 세력들에게는 언제나 예외없이 국민들의 심판과 응징이 내려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과연 누구일까? 다음 대상은?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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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3년 3월 4일 작성된 글입니다)


며칠 전 생활고에 시달린 세 모녀가 공과금 70만원이 담긴 봉투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많은 국민들이 이 사실을 접하고 우리 사회의 열악한 복지체계와 사회 안전망을 한탄하며 안타까워 했다. 이들 중 더러는 정부를 비난하고, 더러는 민생은 외면한 채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했던 정치권을 성토하기도 한다. 또 한편에서는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물질만능에 매몰된 사회공동체의 이기주의를 탓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며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한 다양한 원인 분석과 방법론 도출의 일반적 도식은 우리사회의 오래된 미덕 중 하나다. 이는 아주 아주 오래 전 호랑이가 담배 피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관습이자 관례이며 풍조다. 이 일반적 도식은 정형화된 패턴을 수반한다는 특징이 있다. 먼저 언론과 방송이 구멍뚫린 사회안전망에 문제를 제기하면 마치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일이라도 되는 양 여론이 가마솥처럼 들끓는다. 그리고 그제서야 관련 당국은 규정을 점검하고 대책마련에 동분서주한다. 가끔 사안의 여파에 따라 장관이나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유감을 표명하며 사후대책마련을 위한 정부 당국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한다. 


이번 세 모녀의 비극적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대응방식 역시 과거의 고전적인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언론과 방송, 여론, 관련 당국의 기막힌 콤비플레이 결과, 우리 사회의 열악한 사회안전망을 점검하는 한편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층을 돌아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진화를 멈추고 더 이상 구체화되지도 나아가지도 않는다. 


세 모녀의 자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제(2일)와 어제 잇따라 3건의 가족동반 자살사고가 발생했다. 모두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JTBC 뉴스는 어제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생활비관 자살과 관련해 이 사건을 다시 한번 돌아 보고 정부의 대책을 소개하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에 따르면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일제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3월 한달 동안 지자체 사회복지사 공무원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복지 사각지대 계층들을 찾아서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체계상 사회복지사 2명이 무려 3만 명을 조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번 조사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대두된다. 또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획일적인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현 복지시스템 하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세 모녀 역시 현 복지시스템에 의하면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각한 소득불균형에 따른 사회양극화 현상, 급격한 인구 노령화,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비정규직 문제, 자영업자 몰락, 고용 불안, 실업률 증가 등등의 사회구조적 문제들은 우리사회의 열악한 복지시스템과 맞물려 시간이 갈수록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양산할 수 밖에는 없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사회의 복지체계를 이끌어 왔던 고전적 시스템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사회가 그동안 고수해 왔던 메뉴얼로는 도무지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기본소득제가 시행되고 있었다는 가정을 해 보자. 지난 2월 23일 발족된 '기본소득 공동행동'의 수정안에 따라 일인 당 30만원씩의 기본소득이 저 모녀들에게 지급되었다면 어땠을까? 90만원의 돈은 물론 그리 큰 돈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절망의 나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삶을 지탱해 줄 단비같은 가치를 지니는 돈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디 비단 이들 뿐일까? 지난 2일과 3일에 목숨을 끊은 사람들 역시 기본소득의 혜택을 받았더라면 그리 허망하게 삶의 동아줄을 스스로 내려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 모녀의 죽음, 그리고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생활비관 자살에 대처하는 우리사회의 대응방식은 과거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JTBC 뉴스의 보도 내용이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이와 같은 대응 방식이라면 1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그 절망적 상황이 우리 자신을 비켜갈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한 누구도 이 비극적 상황으로부터 예외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복지시스템의 고전적 방식을 탈피할 혁신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기본소득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자 당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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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3년 5월 2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일베가 연일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에 북한군이 개입되어 시민들의 폭동을 불러일으켰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 5·18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막장 종편도 일베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다. 일베는 진작부터 전두환을 영웅시하고, 5·18의 북한군 개입설 및 폭동주장이 일반화되어 있는 곳이다. 사실 종편이 내보낸 문제의 방송은 일베에 널려있는 게시글들을 방송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그만큼 일베는 5·18의 의미와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실체적 진실마저도 왜곡하고 있는 대표적인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다. 




<일베은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연일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올해로 33주기를 맞은 5·18은 정부로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거부를, 종편으로부터 '북한군 개입설'과 '폭동'이라는 역사왜곡을, 일베로부터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모독하고 비하하는 게시글로 갖은 모욕과 수모를 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처지에 직면해 있다. 특히 종편의 근거없는 5·18 왜곡방송과 일베에 공공연하게 게시되어 있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 등은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의 정도를 넘어선 것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광주시와 5·18 기념재단은 5·18 의 역사적 진실을 왜곡시키고 폄훼하는 게시물과 사례들을 수집하고 분석한 뒤 게시자와 책임자들을 형사고발하고 민사상의 책임도 묻겠다며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임을 밝혔다. 실제로 광주시는 지난 24일부터 '신고센터'를 개설해 5·18 의 역사를 왜곡하고 훼손한 사례들을 신고받고 있다. 광주시와 5·18 기념재단이 개설한 '신고센터'의 타겟이 일베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일베, 그동안 도대체 어땠길래?


일베는 정치·사회·연예·음악·패션·미용 등 주제별로 다양한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있고, 실시간 접속자 수가 2만 명을 초과할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자리잡았다.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 논란에서 보듯 일베는 민주·진보세력들에 대한 혐오감과 불신감이 팽배해 있고, 전라도 지역에 대한 적개심이 만연해 있으며, 한국여성들을 성적으로 비하하고 희화화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베에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글들이 버젓이 게시되고 있다. 이중 전라도 지역에 대한 조롱과 멸시, 적개심이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과 결합한 것이 바로 5·18에 대한 왜곡과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모독이다.  


<5·18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일베의 게시글은 인간에 대한 회의마저 불러일으킨다>


고 송영도 씨(가운데)는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로 중학생이던 외아들 김완봉 군(우측 작은사진)을 잃었다. 송영도 씨가 5월 29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아들을 안장하며 오열하는 사진에 '아이고 우리 아들 택배 왔다. 착불이요'라는 글을 게시하는 일베를 상식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제는 일베에서는 이런 글들이 전혀 문제될 것 없고, 오히려 주목받고 인기를 끌며 널리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일베의 일탈은 마침내 '일베폐쇄' 움직임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베폐쇄 움직임과 표현의 자유 논란


일베가 보여주고 있는 집단적 광기와 폭력성은 언급한 대로 그 정도를 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이에 일베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일베폐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논란만 촉발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이 일베폐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2일 일베에 대해 법원에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박범계 5·18 대책위 부위원장은 24일 인터뷰를 통해 "일베 문제는 과연 법적인 대응을 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고민해왔지만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기 때문에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했다"고 언급했고,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일부에서 '표현의 자유'를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기본은 어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라며 일베에 대한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대체적으로 일베의 폐쇄를 주장하는 측이 내세우는 것은 설명한 바와 같이 일베가 보여주고 있는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및 모욕의 정도가 지나치고, 민주사회에 부합하는 공공의 질서를 위협하고 해치는 게시글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일베폐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 문제가 사회적 논란만 유발시킬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 자리잡은 일베를 폐쇄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개선될 리 없고 , 또 다른 일베사이트가 만들어질 뿐이라며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어느쪽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걸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일베는 사회적 병리현상이 맞기는 하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일베는 대단히 폭력적이고 자극적이며 즉물적이다. 걸러지지 않은 감정이 거침없이 배출되는 통로로 사용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집단적인 폭력의 광기가 용인되어 나타난다. 누구도 제재할 수 없는 곳,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사회적 불만과 억제되어 있는 충동들을 꺼리낌없이 배설해 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베다. 이를 통해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감추어진 내면의 욕망과 즉물적인 감정들을 마음껏 발산시킬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이념과 지역감정이 더해져 사회와 현실에 대한 불만이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표출되고 있다.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야만적 폭력을 동반한 집단적 광기, 그것이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는 곳이 바로 일베다. 그러나 이런 일베를 만들어 낸 것 또한 우리 사회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일베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나?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호받아야만 하는 걸까?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을 실현하는 요소이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형성하는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에 다른 기본권보다 더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도 예외조항이 있는데 바로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훼손과 관련된 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이 부분도 논쟁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기는 하다. 다양한 해석과 법리적 공방으로 첨예하게 상충하고 있는 오래된 논제이기 때문이다. 


관련글 ☞ 일베가 보수? 하태경의 주장은 틀렸다 ☜ (클릭)


그러나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듯 표현의 자유을 보장하는 것과 허위사실 유포가 충돌할 때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는 것은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베에 게시되고 있는 글들, 특히 이번에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킨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 희생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비하와 모욕이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는가의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일베의 글들은 '공익을 해할 목적'에 얼마만큼의 연관성이 있을까? 일베의 글들이 개인의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영역일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제재와 함께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일베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고 부정적이다. 그것은 일베에 게시되고 있는 글들이 일반인의 보편적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고, 사회적 공익에도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기 이전에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들이 버젓이 게시되고 있는 일베는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법적, 사회적 제재가 불가피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베를 폐쇄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사라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주지한 바와 같이 사회적 병리현상의 하나인 일베가 그 본질적인 사회구조적인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상태에서 사라진다 한들 일베는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베에 대한 제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 등 전반에 걸쳐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개선하고 치유하려는 노력들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가시적인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두 가지가 함께 가야만 한다. 


끝으로 일베들에게도 한마디 하겠다. 인간이 동물들과 다른 점은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저 감정을 배설하는 행위가 주는 희열과 쾌락 그 자체에 머물며,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동물과 하등 다를바 없다. 그것이 바로 금수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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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이루스 2014.09.14 03:05

    일베 없어져야할 벌레들이죠.
    인륜과 천륜도 모르는 암덩어리들.
    뭐, 사회가 저리 많들었지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머리 속에 똥이 들어있지 않는한 저럴 순 없죠.
    님이 그러셨나요?
    일베는 치료의 대상이라고? 맞는 말입니다. 계도의 대상이 아니라 일베는 치료의 대상이라는 말,
    절대 공감합니다.

    •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4.09.14 03:58 신고

      사회적 병리현상인 것은 확실하죠.
      더욱 큰 문제는 일베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새력들이 있다는 겁니다. 일베를 체제유지를 위한 우군으로 생각하는 집권여당과 수구보수세력에 의해 정치색을 띠면서 점점 더 변종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국정원 행사에 일베가 초청되는 걸 보면 일반인은 모르는 모종의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겠죠.
      암튼 사회가 어찌되려는지 참 걱정입니다.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 같아요, 요즘 우리는...

      ㅜㅜ

  2. Favicon of https://yeogangyeoho.tistory.com BlogIcon 여강여호 2014.09.14 15:16 신고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민주시민의 권리죠.
    일베의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겠지요. 어쩌면 민주주의의 장점이 때로는 맹점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운운하기에는 일베와 같은 비상식적 표현의 자유가 훗날 어떤 형태로 변모될지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양심이 승리하는 게 민주주의와 역사의 믿음이 아닐까요?....이리 얘기하고도 사실은 답답합니다.

    •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4.09.16 09:28 신고

      네, 답답하지요. 저역시 그래요.
      민주주의가 전혀 민주주의답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 암울하네요.
      ㅜㅜ

  3. 니르바나 2014.10.21 13:15

    표현의자유와는 상관이없는 문제입니다.
    모독죄와 명예훼손이라는 멍연힌 민형사상 책임에 관한 문제임.
    자유란 타인의 권리를 챔해하지 않는 개인적인 분야에서만 적용됩니다.
    타인이 결부되는 순간 자유란 존재치 않아요 1;1 인간대 인간의 평등적인 관계만이 가능한 겁니다.
    그게 자유와 평등 인권이라는 비슷하지만 다른 민주주의 원문칙이란 거죠.
    평등과 인권이라는 2가지 원칙을 어긴 엄단해야할 행동이지 자유권을 보장할 내용이 아니란 겁니다.

  4. 니르바나 2014.10.21 13:20

    언론에 종사한다면서 기본적인 상식이없내요.
    언론의자ㅣ유 표현의자유 문구를 보신적도 없나요.
    사실 직시와 개인적 의견 첨부입니다.
    거기에 공격이나 비하적 목적의 글이 들어가면 그게 걸리는것임.
    죽었다 (사실직시) 슬프다 (개인의견) 말고 개같은 놈이 ... 죽었다 잘뒤졌다.. 이딴걸 쓰면 안된다는 겁니다.
    이 멍청한 나라는 그걸 분리하고 원칙적인 분석을 하는 게 아니라.
    포괄적인 제항을 하니깐 문제인겁니다.
    사람이 죽었으면 죽엇다고 쓰는게 자유칩해가 아니죠 인격모독적인 문구가 문제고 사실이 아닌 내용이 문제인겁니다.
    자유 별거 아님. 해도 되는걸 해도 된다는 보장일뿐입니다 안되는걸 보장하는 몰상식은 없어요.
    상식의 성문화.. 이게 법이고 이게 원칙입니다. 몰상식을 보장하는 버이란 그게 잘못된거지 그게 정상이 아니란 사실을 모르는 이데롤로기의 노예들일뿐...
    국문학 공부뿐 아니라 사회와 법을 공부해야 기자와 언론도 해처먹는거죠 내용없는 글의 표현벙밥만 연구해서 무슨 언론입니까.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검찰이 불구속 수사를 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결국 예상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검찰에 대해 부당한 수사압력을 행사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황교안 법무부장관 뿐만 아니라 검찰의 언론플레이에 현혹된 나머지 검찰의 뿌리깊은 본성을 잠시 잊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물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수사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던 검찰과 이를 저지하려는 법무부간의 신병처리에 대한 입장차이가 불구속 수사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검찰과 법무부의 속내와 내막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불구속 수사를 받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불법대선개입 사건은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적용하는 선에서 일단락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졌다는 사실뿐이다. 원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고,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하물며 국정원 게이트는 현직 대통령과 현 정권의 정통성에 본질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엄청난 사안이 아니던가? 박근혜 대통령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임명한 이유가 이로 인해 명확해졌다. 




<전 정권의 현 정권의 명줄을 쥐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의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그가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문제는 공직선거법 위반의 여부이다. 이 문제가 법리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는냐에 따라서 이 사건은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천양지차'라는 고사성어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이 의미하는 것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막판 붉어진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의혹과  '십알단 사건' 등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루어야 했다. 또한 대선 이후에도 전자개표기의 오류 논란, 투표수와 개표수의 차이, 두 후보 간의 변함없는 지지율 차이 등 몇가지 석연치 않은 의문들로 인해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비록 대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정통성에서 이미 흠집이 나 있는 상태였다. 아직까지도 국민들의 상당수는 이런 이유들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그만큼 국정원의 선거개입의혹과 '십알단'에 의한 불법선거운동은 있어서는 안되는 법치를 뒤흔드는 국기문란사건이었다. 그런데 영 개운치 않았던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이 결국 사단을 일으키고 말았다.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의혹과 십알단의 불법선거운동 당시 박근혜 후보는 원색적으로 민주당을 비난하며 정치공작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민주당의 정치공작이 아닌 조직적인 불법 선거개입으로 판명되었다. 



<민주당이 제기한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결국 의혹이 아닌 사실로 판명되었다. 출처 : 구글 검색>


돌아보면 그 당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민주당을 성토했던 당시 박근혜 후보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서 적반하장으로 책임전가를 한 셈이었다. 한마디로 '방구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을 박근혜 후보가 몸소 보여준 것과도 같다. 이렇듯 시작부터 정통성에 금이 간 상태로 문을 연 박근혜 정부,  만약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면 바로 그 정통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현직 대통령이 국가기관인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과 새누리당이 연관된 댓글부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과연 어느 국민이 용납할 수 있을까? 임기 내내 이 문제는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기를 쓰고 나선 것이다. 그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 불구속 수사가 의미하는 것


이미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별수사팀은 두 차례에 걸쳐 구속수사입장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추가 법리검토지시로 구속영장청구가 2주가 넘도록 막혀있는 상태다.  어제가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시한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공소시효가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명확하다.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할 시한이 지나면서 앞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수사 여부가 가려질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공소시효가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더라도 구속수사의 실효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한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형식적으로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는 그에 준하는 효과를 얻는 기막힌 꼼수를 발휘하고 있다. 


구속수사와 불구속수사의 차이 역시 '천양지차'다. 검찰이 구속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구속수사는 국정원 불법대선개입의 위법성을 만천하에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즉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공직선거법을 위반하고 지난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아가 검찰이 전직 및 현직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않고 수사에 임할 것임을 천명하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구속 수사는 이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순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국내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적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지 않겠다는 수순으로 봐도 무방하다. 검찰이 현 정부의 정통성 시비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여전히 정치검찰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다. 물론 불구속 수사를 한다고 해서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구속이냐, 불구속이냐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 볼때,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법리검토지시 및 있을 지 모르는 수사지휘권 발동에 눈치만 보며 2주 가량이나 허비한 것은 검찰 역시 그 속내가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만약 검찰 수뇌부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수사를 담당한 검사의 의지쯤은 언제든 검찰조직의 강력한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 이제 공소시효 만료까지는 겨우 11일 남았다. 


■ 국정원 게이트 과연 어떻게 결론날까?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의 국가기관이다. '직속'이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에 주목해 보자. '직속 상관', '직속 기관','직속 후배'등에서 드러나듯 '직속'이라는 의미는 '직접적으로 어딘가에 속해 있다'라는 뜻이다. 이를 국정원에 대입해 보면,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이 대통령의 직접적인 통제와 지시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수장으로써 대통령과 언제든 독대를 통해 관련업무를 지시받고 보고한다. 게다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재임할 때부터 측근으로 부렸던 수족 중의 수족이었다. 국정원이 하는 일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 


그리고 현 박근혜 대통령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결과적으로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과 십알단의 불법선거운동의 수혜를 입었다. 절대로 이 사건들과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없으며,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저지른 공직선거법 위반혐의가 적용되면 전직 대통령은 물론 현직 대통령이 모두 관련되어 있는 초대형 게이트로 확대될 수 밖에는 없는 사안인 셈이다. 이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재는 게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이어야 한다


국민의 바람과 요구는 언제나 한결같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원칙과 상식에 맞는 공정하고 엄격한 수사를 해달라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해 검찰은 언제나 정치검찰, 권력의 시녀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했던가?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위반 혐의 적용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며 언론플레이를 해왔다. 그러나 언급한 바와 같이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수사지연은 차치하고서라도 검찰 역시 현재 손 놓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또한 전두환 미납추징금의 경우에서 보듯 검찰이 공언한 것과는 달리 실제로 내놓은 성과물은 아직까지는 전무한 실정이다. 뭔가 다를 것, 이번에는 원칙에 입각해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며 수사는 화려하지만 실속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필자는 바로 이 부분에서 검찰의 수사의지에 여전히 의문이 생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법은 물론 공직선거법까지 위반했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이번 사안의 핵심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적용'에 있다. 검찰이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으로 이번 사안을 유야무야 마무리하려 한다면 절대로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는 검찰개혁을 외치며 뒤에서는 정권과 보조를 맞추며 호박씨를 까고 있는 검찰은 더욱 더 위선적이며 위악적이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검찰로서도 추락한 검찰의 명예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가재는 게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이어야 한다. 검찰이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 법과 정의에 입각한 공의로운 검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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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3년 7월 1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치 작심이라도 한 듯 박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벌써 5개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그로서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누구보다 눈여겨 보아 왔을 것이다. 대한민국 보수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 대통령을 향한 그의 비판은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윤여준이 누구던가. 보수세력의 제갈량이요, 장자방으로 불리워지며 과거 한나라당의 브레인 역할을 담당하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보수인사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아파야 한다. 이 직격탄이 폐부를 깊숙이 찌른 것처럼 아프고 또 아파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래야만 한다. 



<윤여준, 그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다. 그의 쓴소리를 대통령은 마음에 새겨야 한다. 출처:구글>


그는 지난 대선에서 뜻밖에도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한나라당과 떼놓을래야 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있던 보수인사인 그가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와는 대극점에 놓여있던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게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그가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던 TV찬조연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 방송을 통해 자신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그 첫째는 문재인 후보가 민주주의를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라 판단했기 때문이며, 둘째는 당시 대선의 중요한 화두였던 국민통합을 더 잘 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한 발언이지만 '합리적 보수주의자'라고 평가받는 윤여준 전 장관이 생각하고 있는 국정지도자의 소임과 역할이 저 두 가지 이유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과거로 역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라고 그는 보았다. 그는 이 두 가지를 실천할 수 있는 적임자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를 지목했고, 그 이후의 결과는 여러분이 모두 알고 있는 바다. 


결과적으로 윤여준 전 장관이 선택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 그가 내세운 지도자의 인식기준으로 본다면, 국민들은 민주주의의를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 국민통합을 더 잘 할 수 있는 지도자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셈이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약 7개월의 시간이 흐른 현재, 윤여준 전 장관이 지난 대선의 중요한 화두로 제시했던 두 가지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출처:연합뉴스>


먼저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을 살펴보는 것이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스타일이 민주적 절차에 입각해서 이루어진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첫째 박 대통령은 비판과 쓴소리를 싫어하고 독단적이며 권위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나타난 인사파문에 대응하는 방식, 조직문화와 위계질서에 익숙한 육사출신과 법조인을 중용하는 인사스타일,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고분고분한 인사를 선호하는 대통령의 인물 편향성 등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창조성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데 창조를 강조하는 대통령이 만기친람하면 창조성을 죽인다. 청와대 각료가 대통령 입만 쳐다보게 된다. 취임 초기에 그렇게 되면 자동적으로 대통령의 지시를 기다리게 되고 토론문화가 없어진다" (윤여준 전 장관)


만기침람(萬機親覽)은 임금이 나라의 모든 정사를 친히 다스린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각료와 수석에게 성과를 다그치고 질책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윤여준 전 장관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 국민의 비판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다. 한 인사파문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지명한 후보자는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는 아집을 보였던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이는 역대 최악이자 최고의 인사파동을 겪는 빌미를 제공할 뿐이었다. 당연히 국민과의 소통은 기대할 수 없고 불통행보로 오히려 전보다 더한 비판에 직면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파문은 박 대통령의 불통인사의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고 유례없는 국가적 망신만 초래한 꼴이 되었다. 


"인사를 할 때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문제가 있다고 하고 언론도 일제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인사를 그냥 임명하는 것은 국민의 의사는 어찌됐든 내 생각만 하겠다는 태도로 비친다. 윤창중 사건이 났을 때 간접적으로 수석회의 발언을 통해 국민께 죄송하다고 했지만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사건의 경중을 봤을 때 국민 앞에 정중하게 사과해야 했다." (윤여준 전 장관)


셋째,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보이고 있다. 본래 정치란 어느 한쪽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고집하거나 관철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부조직법 파행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보듯 박 대통령에게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루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같은 대통령의 정치력 부재는 필연적으로 정국불안을 야기시킬 수 밖에 없고, 이것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행정부 수반이 정부조직법을 국회에 보내면서 한글자도 못 고친다는 것은 헌법에 있는 3권분립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말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을 못한 듯 하다" (윤여준 전 장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에 정국을 들썩이고 있는 <국정원 게이트>를 대하는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헌법질서에 대한 수호의지가 불분명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헌법의 가치를 위배하는 반민주적인 국기문란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사건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엄중히 묻기는 커녕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게이트>를 물타기하기 위해 국정원에 의해 전격 공개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파문에 대한 침묵도 마찬가지다. (김무성 의원의 발언으로 대화록은 대선 전 이미 새누리당에게 유출되어 대선국면에 활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 사실을 박근혜 대통령 인지하고 있었는지의 여부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 국가정보원장이 (대화록을) 공개하는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대통령의 동의를 받은 것인지 입장이 있어야 했다. 이 문제는 국가안보에 관한 일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이럴 수는 없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많은 의문을 갖고 있다" (윤여준 전 장관)


한 국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가장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거다. 다수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실현해 나가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가장 충실한 방법이 바로 선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의 공정성 여부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의 작동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그런데 지난 대선은 여러가지 면에서 공정하게 치루어지지 않았다. 방송과 언론의 편파성, 새누리당과 연관된 댓글알바팀 등은 논외로 치더라도,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으로 개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선의 공정성은 빛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헌법을 수호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해야 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이라면 <국정원 게이트>를 그저 흘러가는 강물 보듯 바라보고 있으면 안된다. 그러나 <국정원 게이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과 태도는 (윤여준 전 장관의 인식처럼)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지난 대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5개월이 지난 시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필자는 의문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국정원 게이트>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지난 대선의 큰 화두였던 '국민통합' 역시 무엇보다 시급한 시대적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대한민국 정치사는 분열과 갈등 반목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지역과 이념에 의해 이전투구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따라서 지역갈등을 극복하고 이념갈등을 치유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선결조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통합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하나로 합쳐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통합이란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와 이념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다시 말하면 다양성의 기반 위에서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특정집단의 가치나 이념을 중심으로 합쳐지는 것은 민주주의적 통합의 모습이 아니라 전체주의적 통합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상호공존을 추구하며 필연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이해시키며 이끌어갈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민주적인 리더십이다. 독단과 독선의 리더십이 아닌 민주적 리더십이야말로 시대흐름에 부합하는 지도자의 덕목 중 으뜸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에게서는 민주적 리더십의 면면들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취임 후 5개월의 시간은 그것을 확인시켜준 사례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면에서 훗날 역사는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할 지도 모른다. 그녀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아닌 20세기의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지도자였다고.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의 박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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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전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MBC에서 JTBC 보도 총괄 사장직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종편행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MBC 백분토론'과 '시선집중'에서 보여준 정치현안을 꽤뚫어 보는 날카로움,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예리함에 언론인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덕목인 균형잡힌 시각까지 갖춘 그는 공정성이 처참하게 무너진 대한민국의 방송·언론 현실에서 신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논란은 거세게 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자본과 권력의 유혹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인간일 뿐이다"며 그의 종편행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는 호랑이를 잡으러 굴에 들어간 것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손석희의 종편행, 어떻게 봐야 할까'란 포스팅을 통해 그가 종편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보여줄 모습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가 환경에 순응할 지 아니면 그 환경을 변화시킬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로부터 7개월의 시간이 흐른 현재 손석희의 종편행은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있을까? 오늘 포스팅은 손석희의 JTBC행, 그 이후의 모습들을 살펴보려 한다. 


손석희 전 교수가 JTBC 보도부문 사장으로  부임한 것은 지난 5월 경이었다. 그리고 손석희 사장은 9월 16일 부터 'JTBC 뉴스 9'의 앵커로써 주중뉴스를 담당하고 있다. 손석희 체제로 갈아탄 JTBC 보도부문은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 9'이 지향하는 점을 명확히 밝히며 출발했다. 





'힘없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힘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뉴스, 그렇게 가겠습니다'


9월 16일 첫 방송을 시작하기 전 'JTBC 뉴스 9'는 시청자들에게 이와 같은 뉴스 보도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먼저 'JTBC 뉴스 9'의 포멧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가 보여주었던 '백화점식 나열' 뉴스방식에서 벗어나 사회 현안과 이슈에 대한 심층보도와 이원 생중계 등을 통한 '선택과 집중'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뉴스진행 방식은 시청자들을 개별 사안에 대해 그 본질과 핵심까지 이끌어 갈 수 있다. 눈으로 읽고 귀로 듣는 일차원적인 뉴스에서, 읽고 들으며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다차원적인 뉴스로 한걸음 더 진화한 것이다. 


'JTBC 뉴스 9'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뉴스 포멧의 개편으로 지상파 방송과의 형식적 차별화를 도모했다면, 지상파 방송이 철저히 외면했던 뉴스들을 집중 보도함으로써 언론 방송의 사명이자 목적인 '진실 보도'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12월 7일 열렸던 '박근혜 정권 규탄 비상시국대회'는 300여 시민단체와 일반시민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였다. 참여한 인원만 해도 경찰 측 추산 1만 1천명, 주최 측 추산 3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참석한 범국민적 시국집회였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은 이를 단신(MBC 28초)으로 처리하거나 전혀 보도하지 (KBS) 않았다. 그나마 지상파 중 SBS만이 1분 30초 가량 보도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JTBC 뉴스 9'은 달랐다. 현장을 중계차로 연결하여 현장 상황을 생중계로 내보냈을 뿐만 아니라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쏘는 내용까지 방송에 내보냈다. 


국민들이 알아야 할 내용들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실(진실)을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이 바로 언론과 방송의 기본이며, 존재이유가 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2013년 대한민국의 방송과 언론은 이 기본을 철저히 망각하고 있다. (KBS도 MBC도 방송의 기본에 충실한 시절이 있기는 했다, 아주 까마득히 오래 전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의 역할과 기본에 충실한 'JTBC 뉴스 9'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것일 뿐, 사실 이는 손석희 사장이 특출해서도, 투철한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무장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그는 방송이 해야하는 역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뉴스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석희 사장의 JTBC행을 우려했고 그의 행보에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나 몇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사람들의 우려를 기우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어 놓는데 성공했다. 이같은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 답을 찾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일 지도 모른다. 손석희 사장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을 다시 그들의 본래 자리로 되돌려 주는 것, 방송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방송을 원래대로 돌려 놓는 것, 이것이 바로 질문의 답일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공동체가 합의한 원칙과 기준은 물론 보편적 상식에 반하는 역주행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시류에 영합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기본과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손석희 사장의 JTBC행, 그리고 이 이후의 변화들은 그래서 반가우면서 동시에 씁쓸함을 자아내게 만든다. 방송의 기본에 충실했고, 방송 본연의 역할과 본분을 잊지 않고 방송을 제작했을 뿐인 'JTBC 뉴스 9'가 돋보이면 돋보일수록, 역설적으로 2013년 대한민국의 어두운 치부들이 고스란히,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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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하다'라는 단어는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혹은 이용하는 주체는 권력이나 체제를 유지, 보호하기 위한 관성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권력을 갖지 못한 세력,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세력, 기득권의 범주에 들지 못한 세력에게는 절대로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반동성을 제어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되어 온 이 단어는,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고 치명적이며 정치적인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 단어는 정치 논리에 의해 언제든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극한의 확장성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불온하다'란 단어는 '반공'이란 정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빨갱이, 좌익, 용공세력'을 만들어 냈고, '정권비판과 정책비판'에 직면하게 되면 국가보안법이란 올무와 함께 '종북, 좌파, 체제전복 세력'을 양산해 냈다. 이처럼 '불온하다'라는 단어는 권력과 체제유지를 위한 최고의 카드였고, 지난 민주정부 10년을 제외하면 한결같이 권력과 체제를 위한 충직한 파트너였다.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부 시절 완전히 자취를 감춘듯 보였던 이 단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명박 정권 시절인 지난 2008년이었다. 당시 국방부가 병영 내에 반입금지 및 독서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는 '불온서적' 목록의 저자와 출판사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사회적 논란이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23가지의 목록에는 1999년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작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인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 동화작가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나님', 세계적 석학 노암 촘스키의 저서 두 권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당시 재판부가 국방부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국방부의 불온서적 목록 지정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절차와 과정이 배제되어 있어, 국민들의 보편적 상식과 인식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란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이 목록에 자신의 저서가 두권이나 포함되었던 노암 촘스키는 "자유를 두려워하고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려는 이들이 늘상 있게 마련이며,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아마도 국방부를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부서'로 개명해야 할 것 같다."며 국방부의 태도를 꼬집은 바 있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 이후 급속하게 기울어져 버린 보수, 더 정확히는 수구보수와 진보의 무게 저울추에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문화의 선두주자인 국방부가 빠진다면 어색한 일이다. 최근 지난 대선의 불법부정에 개입한 것으로 밝혀져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국방부가 다시 한번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모습을 재연하며 논란의 중심에 우뚝 섰다. 지난 번에는 불온서적으로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불온곡'이다. 


국방부가 이번에 '불온곡'으로 지정한 곡은 모두 50여 곡, 이 노래들은 이제 군 부대는 물론이고 일부 시중 노래방에서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국방부가 이를 '불온곡'으로 지정해 노래방기기에서 삭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MBN이 단독보도한 국방부의 '볼온곡' 목록에는 '우리의 소원', '그 날이 오면' 등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의 노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리랑'까지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의 엽기적인 발상으로 이제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노래조차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오래된 전통 민요이자 국민 민요인 '아리랑'도 마음대로 부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면 모를까, '아리랑'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다면 모를까, 국방부의 이와 같은 비상식적 기행과 집단적 일탈에 수긍할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문제를 지적하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국방부의 답변과 태도 역시 가관이 따로 없다. 국방부는 "왜 이런 곡들이 '불온곡'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지 전혀 모른다."며 말꼬리를 흐리는 것으로, 이같은 행태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짓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2013년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이상 징후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불온하다'라는 단어는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고 서두에 밝힌 바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권력에 맞서 '불온한' 권력이 '불온한 행동'을 일삼으며 다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해 가고 있는 이 '불온한' 시대를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 지 두렵고 또 두렵기만 하다.


바라기는 오래되고 해묵은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며 이 '불온한' 권력과 체제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진짜 '불온한' 사람들이 미래시대를 선도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 만이 막장같은 이 '불온한'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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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노역을 하루 하는데 일당을 무려 5억이나 쳐준 통큰 재판 결과가 화제가 되고 있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는 2010년 1월 2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이 선고된 전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했고, 벌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1일 5억원 씩 계산해 노역장에 유치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대로라면 구금된 날을 제외한 49일 동안의 노역장 유치로 허 전 회장은 벌금 254억원을 면할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이처럼 화끈하고 파격적인 판결을 일찌기 본 적이 없다. 하루에 자그만치 5억원의 가치가 있는 노역이란 과연 어떤 노역을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상상이 안된다. 노역장에서 람보르기니라도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재판부의 이번 판결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아가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권력을 가진 사회 기득권 층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가중시키는 '참으로 나쁜' 판결에 해당된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라는 사법정의와 원칙을 무시하고 사회공동체에게 위화감만을 조성시키는 이와 같은 판결은 결국 사법부의 권위와 명예에 스스로 침을 뱉는 웃지 못할 촌극에 다름 아니다. 사법부의 어이없는 이번 판결을 보면서 필자의 머리 속에 불현듯 아주 오래된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1983년에 발매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는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대한민국에 대한 찬사와 희망찬 미래를 향한 꿈을 담고 있는 이 노래는 당시 TV와 라디오에서 주구장창 틀어주던 국민가요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너나 할 것 없이 흥겹게 따라부르던 이 노래 속엔 놀랍게도 '저 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라는 가사가 포함되어 있다. 





세상에나. '정권 홍보용 관제가요'라는 오명이 늘 따라 다니는 이 노래의 정치적 비하인드 스토리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대한민국 음반 역사 상 가장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가사를 바로 이 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꿈과 현실은 서로 마주보는 대극에 놓여 있다. 이 기만적인 노래가사는 우리에게 현실의 낭만을 달콤하게 속삭이고 있지만 현실은 우리의 낭만적 꿈을 철저하리만큼 가혹하고 냉정하게 짓밟고 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을 미화하고 찬양하기 위해 번번히 차용되어 온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입버릇처럼 '국민행복'을 거론하며 '국민소득 4만불' 시대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장미빛 청사진 역시 "죄송하다"는 허망한 유언을 남기며 세상을 등진 세 모녀의 비극적인 죽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국가와 정치권력이 국민에게 제시하는 꿈과 이상은 국민계몽과 통치를 위한 유용한 수단이자 도구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단히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는 도저히 낭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에드워드의 가위손이 깊고 깊은 얼음산 위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아름답게 눈꽃을 날려주는 모습은 우리사회의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어떤 사람들은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은 고사하고 행복을 누릴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텨내는 처절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하루 노역의 댓가로 무려 5억원의 벌금을 감면해 주는 일이 천연덕스럽게 일어나는 곳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다.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우리는 대다수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우롱하는 이 정신나간 판결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직시해야만 한다. 이번 판결은 국가가, 정치권력이, 사법부 등의 국가기관이 더 이상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막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준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이같은 오래된 관성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시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와 특권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보다 분명하게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분출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시민권력이 강화되어 왔고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해 왔는지를 기억해 낼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이 모질고 지리한 싸움을 이길 수 있는 승리 방정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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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dsland.co.kr BlogIcon 창고55 2019.02.13 17:47 신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난 대선에 자행되었던 국가기관의 대선불법개입사건에 중요한 공범이었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무죄선고는 다들 인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법부가 정치권력의 입김에 무릎을 꿇고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를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친 추태와 다름없는 일이었다. 지난 대선의 불법부정선거의 최대 수혜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이를 주도했던 국정원, 국방부, 국가보훈처, 경찰, 검찰에 이어 공정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사법부까지 결국 이 희대의 국기문란사건에 동참한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가기관들과 사람들이 이 사건에 연루된, 혹은 연루되려는 것일까?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온갖 방해공작과 사건수사의 진행과정을 당신이 유심히 지켜봐 왔다면 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시스템이 작동하는 민주주의국가였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가시스템은 정치와 자본권력에 철저히 종속되어 그 부속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고, 그로 인해 국가시스템의 불법과 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향해 오히려 무자비한 권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대번에 역전되고 만다. 유린된 헌법가치를 복원시키고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자는 시민들의 외침은 어느새 국가시스템에 의해 민주주의 체제를 어지럽히고 헌법질서를 위협하는 불순세력으로 교묘히 편집된다. 열 사람이 작당하여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처럼 간단한 일은 없는 것이다.  





지난 주 있었던 김용판에 대한 무죄선고로 인해 개인적 양심과 사회적 정의를 지키기 위해 14대 1의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벌여왔던 권은희 수사과장이 더욱 곤경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경찰 수뇌부는 권은희 과장에 대해 징계 가능성을 시사했고, 새누리당에서는 그녀가 경찰제복을 벗어야 한다며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사법부마저 거들고 있는 마당에 이 참에 아주 본 때를 보여 줄 심산인 듯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기관들이 총동원된 대선불법부정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표적이 되어 왔고, 여지없이 찍혀 나갔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그랬고, 윤석열 수사팀장 및 수사팀이 그랬으며, 이번엔 권은희 과장의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권은희 과장 그 다음에는 누구의 차례가 될까?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정권을 획득한 세력은 체제유지를 위해 반드시 시민들의 기본권, 그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에 가차없는 메스를 들이 댄다. 공고한 일상의 평화를 깨뜨리는 공포와 불안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정치권력이 시민 통치를 위해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자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정치권력과 국가시스템의 불법과 부정, 위악과 위선을 고발하고 이를 문제삼는 힘없는 시민들이 그 다음 타켓이 될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에게는 여러 지인들이 있다. 대부분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다. 그들 중 대학교수가 된 선배가 하나 있는데 그는 대학시절 내내 세상의 부조리와 자본주의의 모순에 저항하며 시위란 시위는 빠지지 않고 참여했던 열혈청년이었다. 그랬던 그가 필자의 요즘 행보를 지켜보다 걱정하며 한마디 한다. 


'너 그러다가 잡혀간다'


그 선배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필자는 '과거의 그'와 '현재의 그' 사이의 괴리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과거의 그'였다면 누구보다 먼저 이 말도 안되는 부정선거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앞장 섰을 터였다. 그러나 '현재의 그'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 사건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어디 이것이 필자의 선배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며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던 구조적 모순들에 울분을 토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적 고민들로 젊음을 불살랐던 필자의 지인들도 이 사건에 침묵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이 사건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하나씩 있는 듯 보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필자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다만 '사람들은 왜 분노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필자를 참으로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 질문 속에는 필자가 이미 알고 있고, 알기를 원하는 수많는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자조섞인 체념과 원망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소중한 권리가 무참히 짓밟힌 선거부정사건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겁니까?'라고 묻고 있는 필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 그 자체로 씻을 수 없는 모멸감과 자괴감을 안겨 준다. 필자가 지금까지 믿고 있고, 믿어 왔던 가치들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무의미한 것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권은희 과장, 그녀만큼은 꼭 지켜주고 싶다. 그녀는 국가기관이 개입한 불법대선개입사건의 수사과정을 지켜보며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져있을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잃어서는 안되는 공동체적 가치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일깨워 준 몇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권력을 이기는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속에서, 훗날 박물관에서 보게 될 지 모르는 개인의 양심과 사회의 정의에 혹 목말라 있다면 권은희 과장을 지키는 일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 그녀는 충분히 당신이 그렇게 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부당하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며 무섭고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이 가녀린 여인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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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살리기운동본부, 자유통일포럼 등의 보수단체가 3·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바른역사 독립을 위한 시민대회'를 개최하고,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처음으로 현장 판매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문제의 교과서를 다른 날도 아닌 3월 1일에 판매하겠다고 하니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저들의 머리 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희생을 차분히 기리며 묵도해야 하는 숭고한 날에 저 무모한 자들은 "95년 전 (3월 1일에) 대한독립을 만세 부른데 이어 이제는 자유통일과 바른역사를 위한 만세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어도단도 이만한  언어도단이 또 있을까? 수치스럽고 치욕스럽기 그지없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동기가 수반된다. 보수단체들이 95주년 3·1절을 기념하여 바른 역사 독립을 외치며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판매하겠다고 나선 것은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올바른 교과서의 표본이라고 신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읽지도 않고 욕하지 말고, 읽고 나서 말하자'는 저들의 확고한 믿음처럼 과연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제대로 기술된 역사교과서라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교과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교학사의 역사교과서는 지난 해 10월 교육부로부터 251건에 달하는 수정·보안 권고를 받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 교육부는 역사왜곡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에 있다. 실질적으로 역사왜곡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교육부가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251건의 수정·보안을 권고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교과서의 오류를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후 교육부의 수정·보완 권고와 교학사의 자체적인 수정으로 총 626건에 달하는 내용이 고쳐졌고, 12월 10일 교육부는 수정·보완이 완료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12월 24일 교육부는 출판사의 요청이라면서 또 다시 수정사항을 보완했다. 이렇게 해서 교학사의 역사교과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총 937건 중 751건에 해당되는 내용을 수정했다. 검정단계부터 본다면 무려 2,122건에 해당된다. 이 정도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책 한권을 완전히 새로 기술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건물로 치자면 부실공사도 이런 부실공사가 따로 없는 것이다.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수정·보안된 건수 만큼이나 그 내용도 수많은 역사왜곡으로 가득차 있다. 일본군 트럭에 끌려가는 위안부의 사진 아래에 '한국인 위안부는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가 어느새 자발적 참여자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피해 당사자가 이 내용을 보기라도 한다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리라. 일제의 헌병 경찰이 독립군 의병을 '토벌'하고 독립운동가를 '색출'했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식스센스급 반전이다. '일제의 헌병 경찰이 아군이 되고, 독립군 의병과 독립운동가가 적군'이 되는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독립군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만큼 대단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임시정부 승인 획득 운동의 주역이 이승만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나 중국으로부터 임시정부를 승인받기 위해 노력했던 주역들은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김규식·조소앙·박찬인 등 충징의 임시정부 요인들이었다. 이는 명백한, 의도적인 오류다. 이 교과서의 왜곡된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책 한 권을 다시 쓸 정도의 방대한 내용이 고쳐진 마당에 더는 말해 무엇할까?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런 불량품이 최종소비자에게 아무 문제없이 유통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관련당국의 의중을 의심해 봐야 한다. 


미래세대에게 잘못된 역사관과 가치관을 심어줄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 이 불량품이 아무 문제없이 유통될 수 있는 데에는 관련 당국의 방조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련 당국자들이 이 불량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교과서 왜곡 논란의 실체가 이내 드러난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는 "교과서를 하나 만들었는데 1%의 채택도 어려운 나라가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실을 아주 비통하게 보고 있다"고 애통해 한다. 불량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이를 감시하고 규제해야 할  입장에 있는 집권여당의 대표란 자가 소비자가 불량품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되려 비통해 하고 있는 이 어이없는 상황이 대한민국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새누리당 실세 중의 실세 김무성 의원은 "7종 교과서가 현대사를 부정적인 사관으로 기술한 반면 교학사가 긍정적인 사관으로 교과서를 준비하고 있다. 학생들이 역사 교과서 중 현대사 부분을 긍정적 사관으로 배워야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이에 따라 애국심을 갖고 국가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개드립을 서슴없이 날린다. 그의 말대로라면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한 식민지 근대화론이 긍정적 사관이 되고 이것으로 배워야 애국심을 갖고 국가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이 영혼없는 정치인이 말하는 애국심과 국가란 과연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지극히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여기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명징한 근거가 있다. 지난 2008년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이 중심이 되어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판기념회에서 그녀는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평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교과서의 출판으로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랍지 않은가.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뉴라이트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이쯤되면 이 불량품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관련당국이 방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밑에서 지원하고 나아가 소비자에게 적극 권장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누구 말마따나 전율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거리낌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보수단체들이 3·1일 오전에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바른역사 독립을 위한 시민대회'를 개최하고,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처음으로 현장 판매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적어도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만큼은 철저하게 보장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마치 독도에서 대한민국 사람이 '독도는 다케시마다'라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과 같은 이 어이없는 망동이 아무 꺼리낌없이 일어날 수 있는 대한민국이야말로 그래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 칭할 만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가지 아쉬운 것은 역시 시기의 문제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한민국이라지만 그렇다고 보편적 상식을 무시해 가면서까지, 더군다나 3월 1일에 이런 극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은 아무래도 나가도 너무 나갔다. 프로파간다는 좌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은 이제 버려야 한다. 


글의 서두에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동기가 수반된다고 언급했다. 3·1절의 의미와 가치를 저들이 모를리 없다. 그렇게 본다면 역사왜곡의 상징인 교학사 교과서를 들고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저들의 얼굴은 일종의 조롱이다.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와 순국선열의 희생과 보편적 상식을 지닌 국민들에 대한 조롱이며 도발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게 읽힌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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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쌍둥이아빠 2014.06.01 07:27

    언덕님만 그렇게 읽히는게 아니라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
    우리나라의 보수는 친일과 동의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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