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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두루 회자되는 정치 격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익숙한 속설도 이제는 달리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보수진영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면 장면들을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분열로 망한 것은 진보가 아니었습니다. 보수였습니다.

실제 보수진영은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연달아 졌습니다. 선거에 죽고 사는 정당의 특성을 감안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입니다. 주목할 것은 보수진영의 잇따른 패배가 모두 '분열·내분'과 연계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원내 제1당의 지위마저 더불어민주당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과반은 물론 180석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허무는 충격적인 패배였습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질 수 없는 선거였습니다. 40%에 가까운 전통적 지지층이 있는 데다, 당시 야권은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으로 분열된 상태였습니다. '일여다야' 구도로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민주당에게 완전히 압도당했고, 전통적 텃밭인 영남에서도 고전했습니다.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에서 비박계의 반발이 잇따랐고, 김무성 당시 대표가 공천 추인을 거부하고 잠적하는 이른바 '옥쇄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여론조사결과 유출, 녹취록 파문 등 크고 작은 논란도 잇따랐습니다.

이같은 잡음의 배경에는 '친박·비박' 간의 해묵은 계파갈등이 놓여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부터 극심한 계파갈등으로 몸살을 앓아왔습니다. 당내 패권을 둘러싸고 두 진영은 빈번하게 부딪혔고, 이는 20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새누리당은 극심한 공천갈등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총선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이후 총선 책임론을 놓고 걷잡을 수 없는 내홍에 빠지게 된 새누리당은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탄핵 정국에 휘말리며 두 동강으로 쪼개지게 됩니다. 

보수진영은 19대 대선과 7대 지방선거에서도 또다시 고배를 맛보게 됩니다. 당시 선거의 쟁점은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에 집중됐습니다. '국정농단·탄핵'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었던 상황에서 보수진영은 설상가상 분열된 상태로 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보수진영은 대선과 지방선거 모두 패배했습니다. 특히 2018년 열린 지방선거에서는 선거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기록하며 체면을 단단히 구겨야 했습니다.

한국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대구와 경북, 원희룡 무소속 후보가 재선에 성공한 제주를 제외한 14곳을 민주당에 넘겨주었습니다. 합리적 보수의 기치를 내건 바른미래당은 광역단체장은 물론이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단 한 곳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보수진영이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한 이유를 한 두가지로 꼽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내분과 내홍, 분열이 선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합니다. 

최근 보수진영 사이에서 보수대통합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도 그와 연관이 있습니다. 역대 선거 결과가 입증하듯, 석 달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선 '보수통합'이 그 무엇보다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보수통합 움직임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은 제1야당인 한국당입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6일 총선 전 야권 통합을 위한 '통합추진위원회' 출범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보수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구상입니다.

황 대표는 7일에는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를 만나 보수통합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황 대표는 새보수당과 우리공화당, 무소속 이정현 의원과 이언주 의원이 추진하는 '미래를 향한 전진 4.0', 친이·비박 보수 인사들이 주축이 된 재야 보수단체 '국민통합연대', 최근 정계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 등을 포함한 보수 '빅텐트'를 염두해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당이 주도하는 정개개편의 최종 목표는 총선 승리에 맞춰져 있습니다. 새보수당, 우리공화당, 미래를 향한 전진 4.0, 안 전 대표 역시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통합의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국당 주류인 친박은 여전히 새보수당 인사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을 주도했던 새보수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기류가 강합니다.

당내 주류인 친박의 입장은 새보수당이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3대 조건'(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책임 면제·개혁보수 노선 설정·흡수 통합이 아닌 제3의 정당 창당)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당초 하 대표와의 만남에서 새보수당이 내건 '3대 조건'을 수용할 뜻을 내비쳤던 황 대표가 이를 취소한 배경도 친박의 반발 때문이라는 후문입니다.

합리적 보수의 가치를 천명해온 새보수당이 한국당과 통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을 둘러싼 살벌한 간극은 두 세력 간의 통합이 녹록치 않을 것임을 시사해줍니다. 당의 노선과 통합 방법 등을 조율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탄핵 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우리공화당과의 통합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박근혜 탄핵과 관련해 한국당 내부에 다양한 입장과 갈등이 존재하는 데다, 극우보수 성향을 보이고 있는 우리공화당과의 통합이 외연확장이 필요한 한국당에게 어떤 시너지 효과를 주게 될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중도 보수를 지향하는 안 전 대표가 정통보수인 한국당과 한 배를 탈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정치 입문 이후 안 전 대표는 기득권 양당정치를 배격하며 중도·개혁적인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향후에도 민주당과 한국당의 양극단 대결 정치의 폐해를 부각시키면서 '반문재인' 연대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당시에도 '보수대통합' 목소리는 가열차게 터져나왔습니다. 국정농단과 탄핵의 여파로 선거지형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힘을 합치지 않으면 뻔한 승부가 될 것이라는 정치권 안팎의 전망이 잇따랐지만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선거 승리를 위한 통합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이해타산과 정파논리의 벽을 넘지 못했던 탓입니다. 한 이불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꿈꾸는 '동상이몽'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도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통합 목소리가 요동치고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넘어야 할 벽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정치적 노선과 입장,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이 제각각인 데다가, 통합 주도권과 공천지분 등을 놓고도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통합에 목매는 모습이 유권자에게 어떻게 비쳐질지도 의문입니다. 더욱이 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당은 보수정당으로서의 비전과 리더십은 보여주지 못한 채 도로 '친박당'이 돼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새보수당 역시 탈당과 창당을 반복하고 있을 뿐 보여준 것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정계복귀를 선언한 안 전 대표에 대한 평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통합 움직임은 이제는 하나의 관례가 돼버린 모양새입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유권자를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 문법과 관행을 깨트리는 변화와 혁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이 결여돼 있다면 '보수대통합'은 (설령 형식적 통합을 이룬다 해도) 이번에도 실패로 끝날 확율이 높습니다. 유권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1.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2020.01.08 05:21 신고

    통합...안철수....실망스러워요.

    오늘 공감버튼이 고장인가 봐요.ㅠ.ㅠ

  2.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空空(공공) 2020.01.08 06:24 신고

    선거철이긴 선거철인 모양입니다
    이합집산이 시작되는군요 ㅋ

  3.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20.01.08 07:40 신고

    안철수는 정말 정치를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욕심이 사람을 망가뜨리네요.

  4. Favicon of https://captainkorea83.tistory.com BlogIcon 그랜드슬램83 2020.01.08 10:41 신고

    내용이 중요하다는 말에 크게 동감합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5. Favicon of https://a84888008-1.tistory.com BlogIcon 골드만78 2020.01.08 20:36 신고

    합리적인 정치적 싸움으로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면야 반기겠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정치권은 글쎄요.
    매번 쳇바퀴 돌 듯 똑같은 행동을 하네요.

 

오래된 얘기다. 새로운 세기가 열리고 얼마 뒤인 2000년대 초반 정치 개혁의 바람을 타고 '당내 민주화' 운동이 정치권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정당 개혁은 당시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다. 3김 시대가 저물어가던 그 무렵은 오랫동안 이 땅의 정치를 짓눌러왔던 제왕적 정치 풍토가 김대중-이회창 1인 보스 시대의 종언과 함께 마지막 숨을 고르던 참이었다.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과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서로 약속이나 한듯 '당내 민주화' 바람이 가열차게 일어났다. '천정신'(천정배, 정동영, 신기남)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정풍운동과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으로 대표되는 '수요모임'이 당내 정당개혁을 주도했다.

그러나 소장파 의원들의 개혁 바람은 이후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민주당은 완전한 당내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상명하복의 1인 보스 체제를 털어내며 정치 개혁의 물꼬를 텄다.

반면 한나라당은 제왕적 시스템에서 탈피하는 데 실패한다. MB와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나라당은 '친이-친박' 체제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했고, 이 구도는 이후 10년 넘게 당의 헤게모니 싸움을 이끌게 된다.

2000년대 초 '수요모임'으로 대표되던 한나라당 내 개혁소장파들은 당내민주화를 요구하며 강하게 쇄신의지를 피력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한나라당은 친이와 친박 간의 골육상쟁의 피 터지는 권력쟁탈전을 이어가게 된다 .

2008년 총선 당시 친이에 의한 친박 공천학살, 2012년 친박에 의한 친이 학살, 2016년 살생부 파동 등이 연거푸 발생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당 개혁을 외치던 소장파의 목소리는 먼지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제 저 당에서는 당내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소장파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랫동안 당권 경쟁에 노출되는 사이 정치 개혁의 당위와 의지 자체를 상실해버린 탓이다.

한국당 초선의원들이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수대통합과 인적혁신의 길'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황교안 대표가 밝힌 보수통합론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히며 당 중진 인사들의 험지 출마가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성명서의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본다.

"오늘로 제21대 총선이 161일 남았다. 내년 총선에 국민이 거는 기대는 혁신이다.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고 민생은 철저히 외면당하는 나라답지 않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라는 국민의 바람이자 명령이다"

"그 시작이 바로 보수대통합과 인적혁신이다. 한국당 초선의원들은 황교안 대표가 제시한 보수대통합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향후 보수대통합의 길에 밀알이 되기로 결의했다"

"총선승리와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되찾기 위해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왔는가에 대한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아름다운 자기 희생에 앞장서야 한다"

"그 흐름의 물꼬를 트기위해 누군가의 헌신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배 의원님들께서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위해 큰 걸음걸이를 보여주길 바란다. 국지전에서의 승리가 아닌 당과 국가를 구하는 수도권과 같은 전략적 요충지에서 승전보를 전해주시길 촉구한다"

"지금껏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었던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좀 더 용기 있게 나서지 못한 점도 깊이 반성한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우리 모두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초선의원들도 주저하지 않고 동참하겠다"

이러쿵 저러쿵, 구구절절 많은 것을 담고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요컨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반드시 보수대통합을 이뤄내야 하며, 그를 위해서 당 유력인사들의 불출마 및 살신성인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참 역겹다. 비겁하고 파렴치하다. 도대체 유권자를 뭘로 보고. 저들의 의도는 "오늘로 총선이 161일 남았다"는 부분에서 백일하에 드러난다. 한마디로 총선이 없었다면, 이 따위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초선 의원들은 당의 자산이자 미래다. 당 개혁의 시발점이며 혁신의 동력이다. 그런데 그간 한국당 초선들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국정농단과 박근혜 탄핵으로 당이 풍비박산 날 때,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로 당이 존폐 위기로 내몰릴 때, 계파 청산과 인적 쇄신, 정당 개혁 요구가 빗발칠 때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

인두껍을 썼다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그들의 침묵과 외면, 자리 보전을 위한 계파 줄서기 행태가 오늘의 한국당을 만든 실질적인 요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인적쇄신과 혁신을 요구하려 했다면 진작에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국정농단-탄핵 사태 때, 대선과 지방선거에 참패했을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어야 했다.

그러나 저들은 그렇게 하질 않았다. 한국당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봇물처럼 솟구쳤을 때조차 저들은 당 지도부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것도 총선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혁신과 쇄신을 말하고 있다. 정치 도의도, 부끄러움도 없다. 이들의 성명서가 비겁하고 무능하며 치졸해 보이는 이유다.

 

참, 구질구질하다. 4년 내내 누릴 것 다 누리고 쳐 '아닥'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보수대통합과 인적혁신이라니. 차라리 공천 때문에 황 대표에게 줄을 서는 것이라 말하라. 정치판이 아무리 막장이 됐기로서니 최소한 염치는 있어야 한다. 벼룩에게도 낯짝은 있다.

  1.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空空(공공) 2019.11.08 08:15 신고

    160여일 뒤에 반드시 표로 심판해야 합니다..

  2. Favicon of https://thore.tistory.com BlogIcon 꿩국장 2019.11.08 09:32 신고

    초선이든 재선이든 기대하지 않습니다.

  3. Favicon of https://ddfood.tistory.com BlogIcon 김캐셔 2019.11.08 21:36 신고

    공감과 구독신청 하고 갑니다~~ 감기 조심하세용!!^^

최근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오는 2월 27일로 예정된 한국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정치권에서는 황 전 총리의 출마를 사실상의 대권 도전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보수진영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황 전 총리의 시선이 당권 너머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일. 당권은 대권을 위해 거쳐야 할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 전 총리는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 한국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도탄의 국민을 구하고 위기의 나라를 지켜내려면 당 대표가 돼 동지 여러분과 함께 싸울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다"면서 "당 대표가 된다면, 단순한 승리를 넘어, 한국당을 압도적 제1당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에 나설 것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황 전 총리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날, 아주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기자회견 직전 발표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황 전 총리가 이낙연 현 총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줄곧 2위권을 형성하고 있던 황 전 총리가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 행보에 나서는 황 전 총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기분좋은 소식이 전해진 셈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 21~25일 전국 성인 2,515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한 결과에 따르면, 황 전 총리는 17.1%의 지지를 받아 15.3%를 기록한 이 총리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당권·대권 경쟁 주자로 평가받는 홍준표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각각 5.9%, 5.3%를 기록해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전 총리를 흐뭇하게 하는 소식은 또 있다. 이날 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입당한 지 3개월이 되지 않아 피선거권이 없는 황 전총리와 오 전 서울시장에게 책임당원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당권 경쟁에 앞서 출마 자격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당 선관위가 사실상 황 전 총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 선관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거의 후보등록 신청자가 경선 기탁금을 납부하고 입당원서 또는 당비를 정기납부했다는 출금이체 신청서를 제출할 경우, 책임당원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의결해달라고 비상대책위원회에 요청하기까지 했다. 당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피선거권 논란을 일단락시키겠다는 취지다. 

비대위의 최종 입장은 31일 나올 것으로 보인다.  황 전 총리의 전당대회 출마에 부정적인 비대위가 당 선관위의 요청을 받아들일지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나 당 선관위가 황 전 총리의 출마를 승인한 이상 비대위가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활동 종료를 앞둔 비대위가 당 선관위의 결정을 뒤짚으면서까지 당내 분란을 야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렇듯 당 일부의 반발과 출마 자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황 전 총리의 당권 도전은 거침이 없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위에 오른 여론조사 결과는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에 나선 그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이자 버팀목이라는 분석이다. 당장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황교안 대세론'이 회자되고 있다.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황 전 총리가 보수 통합과 재건에 앞장설 적임자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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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전 총리 역시 이같은 세간의 흐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당권 도전 기자회견에서 보수진영을 의식한 발언들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그는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되살리겠다”며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다”고 문재인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철 지난 좌파 경제실험 소득주도성장이 이 정권의 도그마가 됐다”, "김정은을 칭송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들이 광화문 광장을 점령하고, 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좌파 진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보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보수 통합 의지와 재건 방향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금 절실한 과제는 자유우파의 대통합을 이루고 당의 외연을 확대해 더욱 강한 한국당을 만드는 일"이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에 뜻을 같이 한다면, 폭넓게 품고 함께 가는 큰 정당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흩어진 보수진영을 하나로 모으는 한편 외연 확장에도 힘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황 전 총리의 행보에선 이처럼 자신감이 '철철' 묻어난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사분오열됐던 보수진영은 최근 정부 여당이 각종 악재에 신음하는 사이 뚜렷하게 세를 규합해 나가고 있다. 한국당의 지지율도 국정농단 사태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한 때 20~30% 차이가 나던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이제 10% 안팎으로 좁혀졌다. 

그러나 한국당의 차기 대권주자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황 전 총리가 전격 입당을 결정한 이면에는 이같은 한국당의 지리멸렬한 내부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범보수진영의 차기 대선후보 1순위로 손꼽혀온 황 전 총리는 친박계로부터 전당대회 출마 요청을 받는 등 꾸준히 러브콜을 받아온 상태였다. 당권을 잡고 지도력을 인정받게 될 경우 대권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황 전 총리가 야인 생활을 접고 정치에 뛰어든 실질적인 배경일 터다. 

그러나 황 전 총리가 넘어야 할 산도 만만찮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날, 과거 통합진보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김미희·김재연·오병윤 전 의원 등이 황 전 총리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법무부 장관으로서 직권을 남용해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독립적이지 않고 불공정하게 정당해산심판 사건을 처리하게 함으로써 고소인들의 공무담임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의 행사를 방해했다"며 "(황 전 총리는) 헌재와 법무부 간의 내통 의혹이 있으며, 정부 측 증인 김영환(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고, 사법권을 침해하고 훼손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황 전 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이던 2013년 말 당시 박근혜 정부를 대리해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고 직접 변론에 나선 바 있다. 황 전 총리는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관계자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정당해산 사건의 진행사항과 선고결과에 관한 내용을 김영환 전 수석에게 미리 알려줌으로써 정당해산사건의 직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30일에는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여론조사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도록 조치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광주지검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이 있는 황 전 총리가 대선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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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황 전 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 해경 123정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업과사) 혐의 적용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시 변찬우 광주지검장을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커지자 ‘업과사’ 적용을 하지 못하도록 법무부의 김주현 검찰국장-이선욱 형사기획과장 라인을 통해 대검과 광주지검을 압박했다는 의혹도 있다. (한겨레 2017년 5월 29일자)

황 전 총리를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막는가 하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진두지휘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에는 박영수 특검팀의 활동 연장을 거부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국군 기무사령부가 2017년 3월 작성한 계엄령 문건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표기가 발견되면서 이를 지시하고 보고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황 전 총리가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자 홍 전 대표는 "황교안은 박근혜가 탄핵될 때 정치적으로 같이 탄핵된 사람"이라고 했다. "이 당이 다시 도로 탄핵당, 도로 친박당, 도로 특권당, 도로 병역비리당으로 회귀하게 방치하는 건 한국 보수우파세력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도 했다. 강력한 경쟁자 중의 한 사람인 홍 전 대표의 일갈은 황 전 총리를 향한 당내 견제가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당 내부에서도 '박근혜-최순실'과 겹쳐지는 황 전 총리의 이미지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당이 어려울 때 먼 발치에 서있던 황 전 총리의 '무혈입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황 전 총리의 '맷집'을 걱정하기도 한다. 앞으로 예상되는 혹독한 검증을 견뎌낼 수 있을까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일 것이다. 주자하다시피 정치에 도전했던 관료·학자 대부분이 이 과정을 버텨내지 못했다.

그러나 황 전 총리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역시 국정농단의 꼬리표다. 황 전 총리가 보수진영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장관으로서, 총리로서의 후광을 떼어놓고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문제는 그가 장관, 총리를 거치는 동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의 그림자를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직무유기'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이력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음에도 황 전 총리의 정치 여정이 녹록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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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空空(공공) 2019.01.31 10:47 신고

    교활 그 자체입니다.
    최근 일련의 사태들이 정치 글을 쓰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도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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