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총선 과정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들어서였을까.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이 있었던 16일, 심상정 정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당 대표)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무거웠던 자리,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다.

21대 총선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던 정의당이었다. 오랜 세월 독자세력화를 꿈꿔온 정의당으로서는 이번이 전국 정당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겼을 터였다. 지난해 말 '4+1협의체' 주도로 이뤄진 선거법 개정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희망은 현실이 될 가능성은 커졌다.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바뀐 선거법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따랐다. 정의당은 숙원이던 원내교섭단체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며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명분이냐 실리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던 더불어민주당까지 위성정당 창당 쪽으로 기울면서 정의당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각계로부터 위성정당은 선거법 개정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꼼수이자 편법이라는 비판이 솟구쳤지만, 현실론 앞에선 무력한 주장이었다.

승자독식인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왔던 정의당이었다. 지난한 협상의 과정 끝에 선거법 개정을 이끌어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은 10%에 육박하는 정당 지지율을 받았지만, 전체 의석 300석 중 2%에 해당하는 6석(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을 얻는데 그쳤다. 바뀐 선거법의 수혜자로 점쳐졌던 정의당은 되레 피해자가 됐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비례대표 선정 과정이 비상식적이었다. 이 부분은 지금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을만큼 납득하기 어렵다. 정의당은 비례대표 경선 득표에서 1~4위를 차지한 배진교, 신장식, 박창진, 양경규를 4, 6, 8, 10번으로 배치했다. 대신 득표율 후순위인 류호정과 장혜영을 1번과 2번에 꽃아넣었다.

노동분야와 여성, 청년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한 조치로 보이지만 이 결과를 납득할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 석연치않은 과정이 정의당을 옭아매는 올무가 돼버렸다. 류호정은 대리롤 논란에 휩싸이며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켰고, 독립영화감독 출신인 장혜영은 조국 사태와 관련해 범진보진영과 동떨어진 인식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차라리 대기업 갑질논란의 피해자 박창진과 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한 김종철(비례대표 20번)을 앞순위에 배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했다면 보다 감동적이고 공감받는 공천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에 입각한 얘기지만 비례대표 잡음이 선거운동기간 내내 논란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틀린 주장은 아니라고 본다.

조국 사태에 대한 인식, 심 대표의 탄핵 발언 등도 정의당에 대한 악재로 작용했다. 특히 선거기간 중 나온 비례대표 후보들의 조국정국 관련 기자회견은 당지도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민주당과의 연대 대신 독자생존의 길을 찾기 위한 정의당 지도부의 전략적 선택으로 보이나 이는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다. 

그렇다면 심 대표를 위시한 지도부는 왜 이런 스탠스를 취했던 걸까. 지극히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조국 선긋기는 중도층 공략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홀로서기로 작정한 이상 정의당은 통합당이 아닌 민주당과 경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전통적 정의당 지지자 외에 중도-진보층을 공략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비례대표 논란에 이은 정의당의 조국 때리기는 정의당 지지층과 정의당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던 민주당 지지층까지 돌아서게 만드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진보진영의 정의당 디스는 총선이 끝난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정의당이 민주당과 부분적 연대라도 하길 바랬다. 적어도 인천 연수을의 이정미나 창원 성산의 여영국 중 한 사람이 민주당 측과 단일화를 했더라면 지금 드리워져 있는 정의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상당 부분 상쇄됐을 것이다. 연수을에선 민주당 정일영이 극적으로 당선되지 않았다면 정의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지금보 더욱 나빠졌을 것이다. (하마터면 프로 막말러 민경욱이 당선될 뻔 했으니까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겠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모두 6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지역구에서는 1석을 얻는데 그쳤지만 정당지지율은 지난 20대 총선 당시의 7.2%보다 높은 9.67%를 기록했다. 민주당과의 경쟁과 총선 과정에서의 여러 잡음들을 고려하면 대단히 의미있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정의당 지도부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의 전략적 공생대신 독자노선을 선택했다. 중도층의 표를 공력하기 위해 민주당과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는 범진보진영의 공공의 적인 통합당이 사라지거나, 그 세가 약할 때라야 가능한 전략이다. 애시당초 통합당 심판 선거였던 이번 총선에서는 먹히기 어려운 전략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는 보수였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정치적 이념과 노선, 정책 등을 보면 보수정당의 면모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진보정당으로 각인되고 진보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통합당 때문이다. 수구·냉전적 인식과 행태를 보이고 있는 통합당이 보수의 지위를 선점해 오면서 그 대척점에 있던 민주당에게 진보정당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치적 색채가 정통 보수에 가깝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민주노동당이 창당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정치는 누가 더 보수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스탠스가 나뉘어졌을 뿐 진보정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으로 분화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거대 보수양당인 한국당과 민주당이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사이 진보정당은 현실성 떨어지는 과격한 주장이나 펴는 이단아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극강의 지역주의가 뿌리내린 양당체제의 풍토에서 진보정치가 자생력을 갖기는 애시당초 대단히 난망한 일이었다. 더욱이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진보정당의 의회 진입을 가로막으면서 저변 확대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같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경쟁력있는 대안정당으로서의 입지를다높이는지기 위해 힘껏 경주해왔다.  

실제 민주당과 통합당 양당체제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정의당이 정치-사회 개혁을 위해 기여한 바는 결코 적지 않다. 단순 1위제의 비민주성을 극복하고 표의 대표성을 높이는 결선투표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정당이 바로 정의당이다.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소선거제도의 대안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도 정의당이었다. 

남북 관계, 재벌 개혁, 비정규직 보호, 복지 확대, 원전 건설 반대 등 각종 사회 현안에 있어서도 정의당은 분명한 색채를 드러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치·사회·경제적 이슈 뿐만이 아니라 노동과 인권, 복지와 환경, 여성과 평화 등 진보적 의제와 관련해서도 정의당은 일관되고 꾸준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받은 정당 지지율은 이같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자 앞으로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일 터다. 진보정치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건강하고 합리적인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정의당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실망했고, 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정의당을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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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captainkorea83.tistory.com BlogIcon 그랜드슬램83 2020.04.20 07:42 신고

    심상정 대표가 울때 울컥했어요..

  2. 상식체온 2020.04.20 10:25

    보수당은 통합민주당, 진보당은 정의당.
    이런 양당 체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꿈만은 아니길 기다려보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s://dkmahoney.tistory.com BlogIcon Dee K 2020.04.20 10:32 신고

    심상정님 팬인데... 이번에 정의당 좀 안타까웠습니다.

  4. Favicon of https://www.facebook.com/yohan.hwang.39 BlogIcon 황요한 2020.04.20 11:18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동의합니다만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1. 선관위가 비례대표 전략공천을 금지했기 때문에 '왜 설득력있는 후보를 앞순위에 배치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의당이 어떤 룰로 비례대표명부를 선정하고자 했는지입니다. 청년과 여성, 장애인과 농업관련 인물을 당선가능권에 배치하겠다는 것을 룰로 삼고, 당원과 시민선거인단의 득표순으로 배치하는 과정에서, 오래도록 당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외부영입인사보다 다소 유리하도록 판을 짰습니다. 일례로 13번으로 배치된 조성실후보의 경우 청년이자 여성이었지만, 외부영입인사이기 때문에 여성명부에서만 경쟁하도록 해서 앞순위로 가지 못했습니다. 관련한 내용은 http://www.justice21.org/newhome/board/board_view.html?num=125807&page=2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2. 심대표의 탄핵 발언. 이건 마치 심상정대표가 문재인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얘기로 와전되어 보도되었는데, 전체적인 맥락은 '국민이 원하면 민주당이 과반을 가져가도 탄핵을 막을 수 없다' 입니다. 이는 발언에 앞서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이 과반을 하면 총선 이후에 문재인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얘기한 것을 겨냥해, 국민이 원하면 민주당이 과반을 가져가도 탄핵을 막을 수 없으니, 현재 국민이 대통령 탄핵을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발언하라고 꼬집은 것입니다. 이를 받아쓴 언론들이 원하는 것은 정의당과 민주당 지지자를 갈라치기하는 것이었을텐데, 지금으로선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3. 정의당과 민주당의 부분적 연대.. 양정철원장이 창원 성산에 출마한 이흥석 후보 사무실에 와서, "비례연합정당에 참가하지 않은 정당과의 연대는 강을 건넜다. 당 차원의 단일화는 없다는 것이 중앙당의 확고한 의지"라고 했습니다. 정의당에서 비례연합정당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일화를 원천 차단한 것입니다. 결국 자당 후보를 밀어붙임으로써, 정의당에게 - 핑크당 후보를 당선시키지 않으려면 알아서 사퇴하라는 식의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은 모두 정의당 후보에게 전가하고요.

    민주당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볼때 보수당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정책적 대결의 파트너로 정의당을 위시한 진보정당을 지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5. BlogIcon 진보루키 2020.04.20 11:53

    정일영후보는 이명박ㄹㅎ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인물로
    인터뷰중 정의당과의 연대는 절대로 없다를 매우강조 하던데요. 그 인터뷰시점이 선거초반 민경욱후보가 여론조사 1위를 비교적 큰차이로 달릴때라 제 판단은 정의당과 단일화 협상을 하느니 차라리 민경욱이 낫다로 해석 될정도.

  6. Favicon of http://chamstory.tistory.com BlogIcon 김용택 2020.04.20 13:16

    진보정당 통합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습니다. 모든 진보는 통합해야합니다.

  7. Favicon of https://yeogangyeoho.tistory.com BlogIcon 여강여호 2020.04.20 16:01 신고

    맞습니다. 민주당의 꼰대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의당은 꼭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진보 정의 보수 민주를 꿈꿔 봅니다.

  8. Favicon of https://porkart3217.tistory.com BlogIcon 선한이웃moonsaem 2020.04.20 17:30 신고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 이런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9.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空空(공공) 2020.04.21 05:31 신고

    그래도 지지한 많은 국민들이 있습니다

  10.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2020.04.21 05:54 신고

    안타깝습니다.
    좋아하는 심상정입니다.

  11. Favicon of https://thore.tistory.com BlogIcon 꿩국장 2020.04.28 07:45 신고

    연대하지 않은 것, 그리고 박창진의 낙선 둘 다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고 노회찬의원도 그리웠습니다.

저는 12월이 바쁩니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은 일년 중 가장 분주한 때입니다. 23일과 24일, 그리고 새해 연휴를 앞둔 30일, 31일은 몸이 두 개였으면 할 정도로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오늘도 아침 출근하자마자 눈코 뜰 새가 없네요.

점심 시간 잠깐 짬을 내 글을 씁니다. 뭘 쓸까 고민하다가 4년 전 쯤 쓴 글이 생각나 그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오래 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도 유의미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무도하기 짝이없는 한국당, 기대와 달리 많이 부족해 보이는 민주당 양당체제에 변화를 주지 않고서는 정치개혁도, 사회개혁도 아득해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내년은 총선이 있습니다. 만약 한국당이 제1당이 되거나, 제2당이 돼 지금처런 사사건건 몽니와 어깃장을 부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도 끔찍하기만 한데, 그때는 보다 더 암울해집니다.

민주당은 보수당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수구-극우정당인 한국당을 보수정당이라 하고 민주당을 중도진보정당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과거가 이를 여실히 입증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수구보수인 한국당이 괴멸되고, 민주당이 합리적 보수로 재편되어 진보정당인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 등과 노선 경쟁을 이어갈 때 이 나라 정치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글은 그런 견지에서 작성됐습니다. 몇 년전 글이지만 지금도 그 의미는 퇴색되지 않을 듯 합니다. 씁쓸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정치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일 테니까요. 내년 총선에서는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이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그것만이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저는 12월 28일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올 한 해 뜨거운 성원과 관심, 후원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 연말 연시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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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펜

 

새정치민주연합이 어제(18일) 창당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회의원 회관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는 기사를 접한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2014년 3월 26일 창당한 신생 정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창당한 지 이제 불과 1년이 갓 지났을 뿐인 정당이 창당 6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는 없다.

필자처럼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문재인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오랜 전통과 뿌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축사를 통해 "(민주당은) 60년 전 1955년 9월18일 사사오입 개헌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범야권이 결집해 탄생한 당"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문재인 대표는 1년짜리 신생 정당에 불과한 새정치민주연합에게 60년의 유구한 역사성을 부여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문재인 대표의 축사를 논평하는 것은 지극히 무의미하다. 더불어 창당 60주년을 자축하고 있는 이 기이한 조직의 기념행사 역시 필자에게는 아무런 감흥조차 없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문재인 대표의 축사나, 창당 60주년 행사 소식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그래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문재인 대표의 말처럼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적 뿌리가 서슬 퍼런 독재에 맞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개척해 온 '민주당'에 닿아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목마름과 치열함으로 그들은 국민과 함께 87년 민주화를 이끌어 냈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으며, 이를 바탕으로 김대중•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의 빛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비록 과정의 오류와 실책은 있었을 지언정 민주당이 지난 60년 동안 반민주•반독재 투쟁을 통해 이 땅의 척박한 민주주의를 일구워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맞다, 저 당은 지난 60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않고 걸어 온 뿌리깊은 정통 야당이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전혀 새로울 것 없었던 이 조직의 창당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온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맥을 잇고 있다며 자랑스레 60년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는 이 정당의 현재 모습은 민망함 그 자체다. 국민들로부터 '새누리 2중대'라는 치욕스런 오명을 쓰고 있는 현실이 이 정당의 위기와 참담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 의미로 고작 1년에 불과할 뿐인 이 정당이, 그것도 정통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온 이 정당이 민주당 60년의 역사를 도용하는 것은 오만할 뿐더러 뻔뻔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면한 문제점을 한 두가지로 규정짓기는 대단히 난해하다. 이는 각양각색인 이 정당의 철학과 노선을 구분짓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이 정당은 지금 지독한 중병을 앓고 있다. 마찬가지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를 어느 한 두사람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 역시 이 정당이 처해있는 문제의 본질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판이한 가치관과 철학을 가진 구성원들 간의 내분과 갈등이 이 정당의 위기를 이끈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정치정당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리해주는 도구이다. 따라서 정당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이념과 정치 철학을 분명히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 60년 동안 민주당은 큰 틀 안에서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혀 왔다. 그러나 중도층을 겨냥하겠다는 목표 아래 당의 노선을 '우클릭'한 이후 이 정당의 모습은 이전과 상이하게 달라졌다. 이 시기는 당이 쇠락하기 시작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제 이 정당과 새누리당의 차이는 누가 더 보수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외피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국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변화와 개혁, 정치 혁신을 위한 시대정신은 이 당에서 이제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반'새누리 말고는 내세울게 거의 없는 이 정당이 그들 못지않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과 권력에 대한 강한 탐욕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바보가 아닐 바에야 모르는 이가 없다. 현재 혁신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고 있는 지독한 내홍 역시 이를 다시 한번 재확인시켜주는 웃지 못할 촌극일 뿐이다.

창당 60주년을 맞는 자리에서 저들은 어색하게도 당의 '단결'을 외쳤다. 분당까지 거론되고 있는 최악의 당내 갈등을 수습하기 위한 저들의 노력이 애처롭고 눈물겹다. 그러나 가치관과 철학, 노선의 정리없는 봉합만을 위한 '단결'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회생시켜 줄 동아줄이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금 무색무취의 이 노쇠한 정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일이다. 잃어버린 야성을 찾는 일이며, 분명하고 선명한 철학과 비전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설사 그것이 당의 분당을 촉발시킨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몰골은 어떠한가. 한심하다는 것 밖에는 달리 나올 말이 없다.

자신이 맹수라는 사실을 잃어버린 호랑이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해야 할 급선무는 형식적이고 허울뿐인 '봉합'과 '단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뚜렷한 색채를 가진 정당, 노동자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선명하고 강력한 야당, 즉 과거의 민주당으로 복귀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당은 가장 중요한 것을 빠트린 채 60년의 명맥에 기대어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근근히 이어가려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정당의 미래가 지극히 암울해 보이는 이유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사실상 양당제로 운영되고 있는 정치지형 하에서 유권자의 선택지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데에 있다. 이같은 환경은 지역주의와 함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두 거대정당이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의 당위를 망각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7년의 폭주와 실정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여전히 저급한 막장 수준에 머물러 있고, 국민의 삶이 나아지기는 커녕 갈수록 바닥을 향하고 있다면 이제는 새로운 선택지를 고려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는 두 거대 보수 정당의 변화와 각성을 이끌어 내는 측면에서도 대단히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원내 제1당과 2당을 차지할 수 있다면 저들이 굳이 유권자들의 요구와 시대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수억년이 넘도록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몇몇 생물들이 진화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진화할 필요가 없는 우월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우월한 유전자(지역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정당이며,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렇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정당이다. 저 두 정당이 각각 우월한 유전자에 대한 변치않는 믿음과 착각에 빠져있는 한 대한민국 정치의 레벨업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저들보다 먼저 변해야 한다. 유권자 스스로 정치권의 변화와 각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에 강력한 제3당의 출현이 절실한 이유이며,  유권자들이 정의당과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당위다.



  1.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空空(공공) 2019.12.24 07:21 신고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민주당을 합리적 보수당으로 제1당이 되고 진보정당이 제2야당이 되어야 좋을것 같은데.
    그 희망이 내년 총선을 통해 이루어졌음 좋겠습니다.

  2. 익명 2019.12.24 10:39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9.12.24 14:56 신고

    주권자들이 정당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당의 정체성을 몰라 존재를 배반하는 대표자를 뽑습니다.

  4.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12.24 18:03

    잘보구갑니당

  5. Favicon of https://lsmpkt.tistory.com BlogIcon 가족바라기 2019.12.24 23:02 신고

    포스팅 잘보고갑니다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세요^^

  6. Favicon of https://doolytubbies.tistory.com BlogIcon 둘리토비 2019.12.25 20:11 신고

    오랜만에 들려봅니다. 그동안 너무 정신이 없었네요~
    현 정국에 관한 뉴스는 그래도 계속 듣고 보면서 주시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앞서서 스스로를 사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좀 쉬다가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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