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전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MBC에서 JTBC 보도 총괄 사장직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종편행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MBC 백분토론'과 '시선집중'에서 보여준 정치현안을 꽤뚫어 보는 날카로움,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예리함에 언론인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덕목인 균형잡힌 시각까지 갖춘 그는 공정성이 처참하게 무너진 대한민국의 방송·언론 현실에서 신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논란은 거세게 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자본과 권력의 유혹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인간일 뿐이다"며 그의 종편행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는 호랑이를 잡으러 굴에 들어간 것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손석희의 종편행, 어떻게 봐야 할까'란 포스팅을 통해 그가 종편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보여줄 모습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가 환경에 순응할 지 아니면 그 환경을 변화시킬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로부터 7개월의 시간이 흐른 현재 손석희의 종편행은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있을까? 오늘 포스팅은 손석희의 JTBC행, 그 이후의 모습들을 살펴보려 한다. 


손석희 전 교수가 JTBC 보도부문 사장으로  부임한 것은 지난 5월 경이었다. 그리고 손석희 사장은 9월 16일 부터 'JTBC 뉴스 9'의 앵커로써 주중뉴스를 담당하고 있다. 손석희 체제로 갈아탄 JTBC 보도부문은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 9'이 지향하는 점을 명확히 밝히며 출발했다. 





'힘없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힘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뉴스, 그렇게 가겠습니다'


9월 16일 첫 방송을 시작하기 전 'JTBC 뉴스 9'는 시청자들에게 이와 같은 뉴스 보도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먼저 'JTBC 뉴스 9'의 포멧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가 보여주었던 '백화점식 나열' 뉴스방식에서 벗어나 사회 현안과 이슈에 대한 심층보도와 이원 생중계 등을 통한 '선택과 집중'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뉴스진행 방식은 시청자들을 개별 사안에 대해 그 본질과 핵심까지 이끌어 갈 수 있다. 눈으로 읽고 귀로 듣는 일차원적인 뉴스에서, 읽고 들으며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다차원적인 뉴스로 한걸음 더 진화한 것이다. 


'JTBC 뉴스 9'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뉴스 포멧의 개편으로 지상파 방송과의 형식적 차별화를 도모했다면, 지상파 방송이 철저히 외면했던 뉴스들을 집중 보도함으로써 언론 방송의 사명이자 목적인 '진실 보도'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12월 7일 열렸던 '박근혜 정권 규탄 비상시국대회'는 300여 시민단체와 일반시민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였다. 참여한 인원만 해도 경찰 측 추산 1만 1천명, 주최 측 추산 3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참석한 범국민적 시국집회였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은 이를 단신(MBC 28초)으로 처리하거나 전혀 보도하지 (KBS) 않았다. 그나마 지상파 중 SBS만이 1분 30초 가량 보도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JTBC 뉴스 9'은 달랐다. 현장을 중계차로 연결하여 현장 상황을 생중계로 내보냈을 뿐만 아니라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쏘는 내용까지 방송에 내보냈다. 


국민들이 알아야 할 내용들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실(진실)을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이 바로 언론과 방송의 기본이며, 존재이유가 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2013년 대한민국의 방송과 언론은 이 기본을 철저히 망각하고 있다. (KBS도 MBC도 방송의 기본에 충실한 시절이 있기는 했다, 아주 까마득히 오래 전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의 역할과 기본에 충실한 'JTBC 뉴스 9'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것일 뿐, 사실 이는 손석희 사장이 특출해서도, 투철한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무장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그는 방송이 해야하는 역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뉴스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석희 사장의 JTBC행을 우려했고 그의 행보에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나 몇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사람들의 우려를 기우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어 놓는데 성공했다. 이같은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 답을 찾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일 지도 모른다. 손석희 사장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을 다시 그들의 본래 자리로 되돌려 주는 것, 방송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방송을 원래대로 돌려 놓는 것, 이것이 바로 질문의 답일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공동체가 합의한 원칙과 기준은 물론 보편적 상식에 반하는 역주행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시류에 영합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기본과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손석희 사장의 JTBC행, 그리고 이 이후의 변화들은 그래서 반가우면서 동시에 씁쓸함을 자아내게 만든다. 방송의 기본에 충실했고, 방송 본연의 역할과 본분을 잊지 않고 방송을 제작했을 뿐인 'JTBC 뉴스 9'가 돋보이면 돋보일수록, 역설적으로 2013년 대한민국의 어두운 치부들이 고스란히,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불온하다'라는 단어는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혹은 이용하는 주체는 권력이나 체제를 유지, 보호하기 위한 관성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권력을 갖지 못한 세력,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세력, 기득권의 범주에 들지 못한 세력에게는 절대로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반동성을 제어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되어 온 이 단어는,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고 치명적이며 정치적인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 단어는 정치 논리에 의해 언제든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극한의 확장성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불온하다'란 단어는 '반공'이란 정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빨갱이, 좌익, 용공세력'을 만들어 냈고, '정권비판과 정책비판'에 직면하게 되면 국가보안법이란 올무와 함께 '종북, 좌파, 체제전복 세력'을 양산해 냈다. 이처럼 '불온하다'라는 단어는 권력과 체제유지를 위한 최고의 카드였고, 지난 민주정부 10년을 제외하면 한결같이 권력과 체제를 위한 충직한 파트너였다.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부 시절 완전히 자취를 감춘듯 보였던 이 단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명박 정권 시절인 지난 2008년이었다. 당시 국방부가 병영 내에 반입금지 및 독서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는 '불온서적' 목록의 저자와 출판사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사회적 논란이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23가지의 목록에는 1999년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작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인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 동화작가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나님', 세계적 석학 노암 촘스키의 저서 두 권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당시 재판부가 국방부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국방부의 불온서적 목록 지정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절차와 과정이 배제되어 있어, 국민들의 보편적 상식과 인식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란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이 목록에 자신의 저서가 두권이나 포함되었던 노암 촘스키는 "자유를 두려워하고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려는 이들이 늘상 있게 마련이며,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아마도 국방부를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부서'로 개명해야 할 것 같다."며 국방부의 태도를 꼬집은 바 있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 이후 급속하게 기울어져 버린 보수, 더 정확히는 수구보수와 진보의 무게 저울추에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문화의 선두주자인 국방부가 빠진다면 어색한 일이다. 최근 지난 대선의 불법부정에 개입한 것으로 밝혀져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국방부가 다시 한번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모습을 재연하며 논란의 중심에 우뚝 섰다. 지난 번에는 불온서적으로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불온곡'이다. 


국방부가 이번에 '불온곡'으로 지정한 곡은 모두 50여 곡, 이 노래들은 이제 군 부대는 물론이고 일부 시중 노래방에서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국방부가 이를 '불온곡'으로 지정해 노래방기기에서 삭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MBN이 단독보도한 국방부의 '볼온곡' 목록에는 '우리의 소원', '그 날이 오면' 등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의 노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리랑'까지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의 엽기적인 발상으로 이제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노래조차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오래된 전통 민요이자 국민 민요인 '아리랑'도 마음대로 부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면 모를까, '아리랑'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다면 모를까, 국방부의 이와 같은 비상식적 기행과 집단적 일탈에 수긍할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문제를 지적하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국방부의 답변과 태도 역시 가관이 따로 없다. 국방부는 "왜 이런 곡들이 '불온곡'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지 전혀 모른다."며 말꼬리를 흐리는 것으로, 이같은 행태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짓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2013년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이상 징후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불온하다'라는 단어는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고 서두에 밝힌 바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권력에 맞서 '불온한' 권력이 '불온한 행동'을 일삼으며 다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해 가고 있는 이 '불온한' 시대를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 지 두렵고 또 두렵기만 하다.


바라기는 오래되고 해묵은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며 이 '불온한' 권력과 체제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진짜 '불온한' 사람들이 미래시대를 선도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 만이 막장같은 이 '불온한'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작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야심차게 준비했던 '오바마케어'로 인해 곤경에 빠져야만 했다. 미국 경제의 가장 큰 골치거리 중 하나였던 살인적인 의료비 증가와 이에 기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된 건강보험개혁이 웹사이트의 부실장애로 말미암아 큰 혼란에 빠진 것이다. '오바마케어'의 부작용을 부각시키며 매섭게 대통령과 민주당을 몰아붙이던 공화당에게 이는 호재로 작용했다. 공화당은 이 문제를 '오바마케어' 정책의 부실과 결함으로 정치쟁점화 시키려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오바마는 웹사이트의 접속장애가 자신의 책임이라며 전격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단행한다. 


"(웹사이트의 접속장애는) 내 책임이다. 이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하루 24시간, 휴일도 없이 노력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날 (누구처럼) 대리인을 내세우지도, 국무회의나 비서관회의 등을 통해 간접사과의 형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는 NBC와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직접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바마의 대국민 사과는 정치적 논란을 조기에 수습하고 민심의 동요를 막기 위한 정치적인 제스쳐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과를 해야할 시점과 방법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의 전격적인 사과 이후 민심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 시키려던 공화당 역시 좀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오바마의 정치적 결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대선후보 시절 과거사 인식 논란과 관련해 지지율이 급락했을 때와 과거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비대위 시절 이런저런 구질구질한 이유들로 당이 위기에 직면해 있을 때를 제외하면,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역대 최악의 인사참사, 전대미문의 청와대 대변인의 방미순방 중 성추행 사건, 각종 대선 공약파기, 졸속 세제개편안 파문,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간첩조작사건 등등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들에서 조차 절대로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었다. 저 바다 건너 낯선 나라의 대통령은 웹사이트의 오작동에도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데 우리의 대통령은 고작 대리인을 내세워 대독사과를 하게 하거나, 청와대 회의를 통해 간접사과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중 대부분이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다. 세월호 참사는 "어른들이 구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학생들의 말처럼 무책임한 어른들로 인해 발생한 역대 최악의 인재사고였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거세지자 이 영악한 자들은 허수아비 총리였던 정홍원 국무총리를 사퇴시킴으로써 여론을 수습하려 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박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사고 발생 후 사고현장에 내려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돌아간 이후에 우리는 박 대통령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길이 전혀 없다. 이따금씩 방송을 통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엄중히 그 책임을 묻겠다는 심판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홍원 총리의 사퇴는 청와대 내에서 사전조율된 것이라 한다. 또한 29일 있을 국무회의를 통해 대국민 사과를 검토 중이라고도 한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사상 최악의 인재사고 앞에, 그것도 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불러일으킨 명백한 과실 앞에서 국무총리를 사퇴시키는 것으로 책임론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또 다시 간접사과를 하려는 모양이다.


오바마는 비록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나 웹사이트가 말썽을 일으켰을 뿐임에도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수 백명의 승객들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귀중한 목숨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묵 중이다. 세 아이의 엄마로 이번 사고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아내조차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라며 한마디 한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장면과 가장 뻔뻔한 대통령을 동시에 경험하는 불행을 겪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자기 혼자 살겠다고 배에서 먼저 탈출한 세월호의 승무원들과 이번 참사에 철저히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중 누가 더 무책임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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