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사를 통해 애국애족의 혈통을 지닌 가계를 심심치않게 접할 수 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여사의 아버지는 미얀마의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이고, 칠레의 현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의 아버지는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에 반기를 든 공군장군 출신이다. 나라의 독립운동에 앞장 서고 민주화투쟁에 헌신했던 아버지를 둔 자식의 심경은 과연 어떤 것일까. 아마도 존경과 경외감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들의 영혼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는 헌사는 그저 허투로 생긴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국민정서에 반하는 역사인식 태도와 부적절한 언행으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가보훈처에 조부에 대한 독립유공자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물론 이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옹호하는 과거 언행들이 문제가 되며 각계각층으로부터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조부의 독립운동 이력을 발판삼아 난관을 타개해보겠다는 취지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라면 누구든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문창극 후보자 역시 총리지명 이후 붉어진 '친일'논란을 조부의 힘을 빌어서라도 잠재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잡은 지푸라기가 상황을 반전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더한 비난에 직면할 빌미를 만들어 준 꼴이 될지도 모르겠다. 왜 그럴까?


일단 보훈처에서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문 후보자의 조부는 1921년 4월 9일 독립신문에 보도된 독립립유공자(문남규)와 성명이 한자까지 동일하고 , 독립유공자 문남규의 전사•순국 지역과 후보자 조부 문남규의 원적지가 평북 삭주로 동일하다"고 밝혔다. 문창극 후보자의 조부에 대한 독립유공자 확인 요청에 보훈처가 손을 들어준 셈이다. 물론 이 사실과 관련하여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는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과 문창극 후보의 할아버지가 동일인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고, 보훈처의 발표 역시 정식절차에 의해 최종 확인된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보훈처가 일단 동일인으로 견해를 밝힌 이상 (추후 확인절차가 필요하겠지만) 현재까지는 문창극 후보자의 조부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은 잠재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듯 싶다. 


1. 문남규 선생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만행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애국지사였다.

2. 그의 손자인 문창극 후보자는 2014년 대한민국의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이 도식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앞서 소개를 했던 '아웅산 수치'여사나 '미첼 바첼레트'의 가계와 혈통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어쩌면 조부의 애국애족의 정신을 잊지않고 계승해준 문창극 후보자의 그것이 더 멋지고 훌륭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이야기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있다. 할아버지의 목숨을 건 독립운동의 정신을 마음에 깊이 새긴 손자가 의협심과 정의감으로 똘똘뭉친 시대의 정치 지도자가 된다는 설정은 낭만적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얄궃게도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낭만적 상상에 거친 태클을 걸어 온다.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격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조부의 애국애족의 정신들이 어떻게 후보자의 삶을 통해 체화되어 나타났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조부가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만행을 옹호하는 식민주의사관에 경도되어 있었다. 이를 자신의 삶 속에 깊이 투영했고 말과 글 속에 반영시켰다. '아웅산 수치'와 '미첼 바첼레트'가 아버지의 뜨거운 열정과 투지를 자신들의 영혼과 철학을 채우는 양분으로 삼았다면, 안타깝게도 문창극 후보자는 할아버지의 숭고하고 거룩한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이 차이가 이들의 삶을 서로 엇갈리게 만드는 결정적 동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들의 첨예하게 다른 삶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필자는 우리사회에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일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수치'와 '바첼레트'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면 그들처럼 될 것이요, 문창극 후보자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면 그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중 '누가 더 올바르게 살았는가'에 대한 답은 여러분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보편적 상식을 지닌 사람에게는 그 답이 너무나 명확해 보이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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