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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언덕의 그때 그 순간

GSOMIA 종료 선언이 '사필귀정'인 이유

문재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시점을 이틀 앞두고 전격 '종료' 선언을 했다. 1년 연장을 예측하던 일본 정부는 충격에 빠졌고, 우리 정치권도 분주해졌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지소미아는 박근혜 정부 시절 충분한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 졸속적으로 맺은 협정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얼마 전 국회에서 협정 체결 당시 참모총장이던 자신도 모르게 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지소미아는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협정이었다.  협정 체결 당시부터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던 사안을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말들이 많았다. 박근헤 정부는 왜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지소미아를 강행해야 했을까. 지소미아가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그 때로 시간을 돌려본다. 

 

ⓒ 뉴시스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되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감행 이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일 양국의 신속한 대북정보 공유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7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라오스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일본은 이나다 도모미 일본 방위성이 GSOMIA 체결을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요청해 놓은 상태다. 이어 유병세 외교부 장관이 오는 18일 뉴욕에서 열리는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의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GSOMIA 문제를 비롯해 북핵 대응방안과 대북 압박방안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직까지 이와 관련해 정부의 공식적 발표가 나온 것은 없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이처럼 GSOMIA 체결을 위한 양국 간의 사전 작업이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4년 전 이명박 정부 시절 여론의 역풍에 휘말려 무산됐던 GSOMIA를 재추진하고 있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다시 한번 정국이 소용돌이 칠 것으로 보인다.

GSOMIA는 이명박 정부 말인 지난 2012년 추진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일본과 비밀리에 GSOMIA를 논의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뜨거운 질타를 받았다. 과거사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양국간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협정을 밀실에서 추진했다는 사실에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정부는 강한 반발 여론을 의식해 협상을 전면백지화 하게 된다.

당시 정부가 국민 정서에 역행하면서까지 일본과 밀실 협상을 벌인 기저에는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미국은 한국 및 일본과의 삼각동맹을 통해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고 이를 통해 중국·러시아·북한의 공조에 대항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오래된 기본 전략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일본을 참여시켰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묶여 있던 캐나다와 멕시코까지 끌어들였다. 호주에는 해군 기지를 건설했고 일본, 필리핀, 베트남을 측면 지원하면서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에도 개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외교의 핵심 화두인 경제와 안보를 한데 묶어 급속히 팽창 중인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 YTN

 

그런데 미국의 동북아시아 경제 안보 협력체 구상의 핵심이 바로 한국과 일본이다. 따라서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실효를 거두려면 한일 양국의 관계회복이 관건이다. 미국이 과거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의 군사팽창정책을 묵인하고 있는 것도, 우리 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타결을 강력히 요청하면서 한일 양국 사이의 관계 회복을 끊임없이 종용했던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국민정서에 반하는, 이해할 수 없는 한일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경제 안보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GSOMIA 역시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묶어 동북아시아에 미사일방어체계(MD)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역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안보 전략적 포석이며, 정부가 도입하려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도 그 연장선에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한반도가 세계열강의 패권 싸움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THAAD의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탐지와 군사정보 공유를 위해 추진되는 GSOMIA는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과 한반도의 안보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 분명하다. THAAD와 GSOMIA가 사실상 MD체계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는 THAAD의 한반도 배치를 졸속적으로 결정함으로써 극심한 내부 혼란과 외교적 갈등을 자초한 바 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과거사에 대해 사과도 반성도 없는 일본 정부와 군사기밀과 정보를 공유하는 GSOMIA를 다시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GSOMIA가 이명박 정부 때 이미 국민들이 단호하게 반대했던 사안임을 감안하면 이를 다시 꺼내드는 저의가 지극히 의심스럽다. GSOMIA는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일본의 야욕을 우리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는 꼴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굳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GSOMIA가 THAAD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를 더욱 자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악의 경우 이는 신냉전체제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으며, 만약 그렇게 될 경우 한반도가 그 중심에 서게 된다. 국민과의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THAAD 배치를 결정해 동북아시아의 안보리스크를 한없이 끌어올렸던 박근혜 정부가 다시 한번 국가와 국민을 혼란과 논란 속으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 과연 GSOMIA가 무엇을 위한 협정인지, 이 정부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