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

홍명보 감독의 땅투기, 만약 사실이라면...

홍명보, 그는 한국 축구의 엘리트 코스란 코스는 모조리 섭렵한 축구계의 살아있는 신화이자 전설로 추앙받는 선수다. 축구명문인 동북고와 고려대 출신인 그는 우수한 기량과 품성을 바탕으로 어린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990년 이태리 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4회에 걸쳐 월드컵에 참가했고, 대한민국 축구선수로는 유일하게 FIFA 100에 선정되는 등 축구선수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를 누린 한국축구의 대들보같은 존재다. 


은퇴 이후의 지도자 생활도 선수생활만큼이나 화려했다. 특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2006년 월드컵 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었고, 이후 2009년 U-20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 그 해 열린 FIFA U-20 월드컵에서 18년 만에 팀을 8강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일구어 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일본을 꺽고 동메달을 획득하는 감격적인 드라마를 연출시키기도 했다.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홍명보만큼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선수가 또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독보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적어도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러나 인생사 호사다마라 했다. 인생은 얄궃게도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개인의 삶을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때로 인간의 힘으로는 달리 어찌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해 개인의 삶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 대부분은 인간 스스로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과 탐욕에 의해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미국 프로야구의 최다안타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피트 로즈는 신시내티 레즈 감독 시절 도박에 이은 승부조작파문으로 야구계로부터 영구 제명되었다. 이제 메이저리그 선수시절 보여주었던 화려한 플레이어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는 그저 도박과 승부조작에 연루된 '영구 제명'이란 딱지가 붙은 부끄러운 선수로 기억될 뿐이다. 88서울 올림픽에서 캐나다 육상선수였던 벤 존슨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란 영광스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영광과 영예는 불과 삼일 만에 치욕과 수치로 바뀌었다.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물이 검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최고에서 세계 최악으로, 그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스포츠계에서 이같은 사례들을 찾는 일은 너무나도 쉽다. 대한민국이 낳은 불세출의 축구영웅이자 레전드인 홍명보 감독에게 피트 로즈와 벤 존슨의 사례와 비교하는 무례(?)를 범하게 되는 이 상황을 필자로서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정황은 그동안 홍명보 감독이 쌓아온 명예와 영광에 거대한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월드컵 대표팀의 졸전과 그의 재신임을 둘러싼 대한축구협회의 이른바 '축피아' 논란이 여전히 유효한 가운데 홍명보 감독의 '땅투기' 의혹이 세상에 알려졌다. 월드컵 이후 갖은 구설에 휘말리고 있는 홍명보 감독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를 비난하는 측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크게 땅을 구입한 시기와 목적 두 가지다. 먼저 땅을 구입한 시기를 보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홍명보 감독은 5월 15일 경기 성남 분당구 운중동 토지 79.35평을 약 11억원에 매입했다고 한다. 매입시기가 월드컵 대표팀 소집훈련기간(5월 12일 소집)과 정확히 일치한다. 대표팀의 최종 엔트리 선정 약 3주 전에 10%의 계약금을 지불했다고 하니 대표팀 최종 엔트리 선발과 이후 대표팀 소집 및 운용에 집중할 수 있었겠느냐는 주장이다. 


땅의 구입 목적에 대한 의혹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구입한 땅은 그룹 총수들과 유명 연예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신흥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연고도 없는 곳에 거주목적이 아닌 용도로 토지를 구입한 것이 투기목적이 아니냐는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더니 홍명보 감독이 처지가 딱 그짝이다. 대표팀 엔트리 선정 과정에서의 불협화음, 월드컵에서의 역대 최악의 졸전과 재신임에 이은 이번 땅투기 논란으로 탄탄대로를 달려온 홍명보 감독은 지금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홍명보 감독의 처신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월드컵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지구상의 어느 감독도 월드컵을 코 앞에 두고 땅을 보러 다니지는 않는다. 물론 홍명보 감독의 입장에서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다. 매입 과정은 대리인이 주도했을 뿐이고 자신은 그저 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뿐이라든지, 매입 목적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투기가 아닌 다른 목적 이를테면 실제 주거용도였다든지 등의 해명을 할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언론에 의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사실이 왜곡되었을 수도, 과대포장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그의 행위가 월드컵을  목전에 둔 대표팀의 감독으로서 보여줄 합당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구상의 어느 축구 대표팀 감독도 월드컵을 눈 앞에 둔 시점에 땅을 구입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홍명보 감독이 선수 시절 국민에게 엄청난 감동과 환희를 안겨준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이 같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해주는 축구계의 레전드다. 그러나 축구선수시절과 감독시절에 대한 평가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축구 코치 라이센스가 없었음에도 2006년 대표팀 코치로 발탁된 이후 최근의 유임에 이르기까지 그는 대한축구협회가 작심하고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소위 '축구협회라인'의 인사다. 러시아에 귀화한 쇼트트랙 안현수 선수에 의해 대한빙상연맹의 파벌문제가 도마 위로 오르기 훨씬 전부터 대한축구협회의 파벌과 전횡들은 축구팬들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최근 월드컵 참패를 계기로 재점화된 '축피아' 논란은 그만큼 오래되고 해묵은 축구계의 병폐이자 적폐였다. 우리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병폐들의 축소판이 바로 대한축구협회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필자는 홍명보 감독을 통해 우리사회에 드리워진 참담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그가 대한축구협회의 비민주적 전횡들과 부조리를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병폐와 적폐들을 깨뜨리려 하는 대신 그 속에 철저히 동화되어 공생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우리사회의 기득권들이 살아가는 주류적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필자는 홍명보 감독의 모습과 이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모습에서 차이점을 도무지 발견해 낼 수가 없다. 그들은 특혜와 특권은 줄곧 누리면서도 책임감은 전혀 없고, 파벌과 줄세우기에 앞장 서며 개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철저히 무시해 왔다. 이런 조직체가 건강하게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홍명보 감독이 받고 있는 비난이 어쩌면 과하다고 혹자는 여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적 담론들의 본질적 의미를 성찰하지 못한다면 단언컨대 우리사회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홍명보 감독의 땅투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논란들은, 그래도 이 사회가 건강하고 합리적으로 작동하길 바라는 사회 구성원들의 관성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여전히 효용가치가 있다. 





*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