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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김시곤의 청와대 외압 폭로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에게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는 것은 비단 총과 칼 따위의 유형의 무기뿐만이 아니다. 말과 글은 이보다 더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유형의 무기는 육신에 상처를 남기지만 무형의 무기는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와 비교해 국민의 공분을 샀던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하 김시곤 전 국장)은 결국 이 일로 옷을 벗었다. 전하려고 하는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뜻이 왜곡됐다며 안타까워 하는 그의 변은 상투적이며 진부한 교과서적인 멘트에 불과하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김시곤 전 국장은 유족들은 물론이고 이번 참사에 함께 슬퍼하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 속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때로 변화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한다. 그가 무심코 호수에 던진 돌이 지금 큰 물결을 일으키며 격랑을 불러오고 있다. KBS 보도국장 자리를 사퇴한 김시곤 전 국장이 16일 KBS 기자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지난 9일 길환영 KBS 사장이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고 사퇴를 종용하며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뒤늦은 각성이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혼자 죽을 수만은 없다고 마음 먹은 것인지는 알 길도 없고, 전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인 KBS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동안 청와대는 방송장악 의도가 전혀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구조라며 야당 및 시민단체의 비판을 한결같이 부인해 왔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도 수차례에 걸쳐 자신은 방송장악의 의도가 없음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같은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며 눈을 가리고 아웅하는 격에 다름 아니었다. 자신의 최측근이자 박근혜 해바라기인 이경재 전 의원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한 것부터가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박 대통령 특유의 언행불일치가 재확인된 대목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심각하게 훼손시킨 언론·방송 환경 역시 박근혜 정부에서 고스란히 흡수해서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청와대의 주장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 대선에서 KBS와 MBC는 서로 경쟁하듯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방송내용을 편집해 보도했다. 


 KBS 뉴스 편파 사례 모음 ☜ (클릭)


KBS 언론노조가 제시한 지난 대선에서의 편파 방송 사례들은 KBS가 얼마나 노골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방송을 제작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위의 사례들에서 나타나듯 지난 대선에서 KBS는 공정성, 중립성, 객관성을 포기한 편파적 방송으로 일관했고, 당연히 그 수혜는 현 박근혜 대통령이 입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KBS의 방송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김시곤 전 국장의 폭로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그는 KBS 보도국장 재임시절 수시로 청와대로부터 외압(세월호 사건 포함)과 사내 인사에 대한 개입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와 보도 관련 요구를 하는 한편, 길환영 사장도 특정뉴스를 빼거나 축소하라는 지시를 수도 없이 했다고 폭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이정현 홍보수석이라 언론은 보도)의 보도 관련 요구와 길환영 사장이 지시했다는 특정뉴스의 삭제 및 축소가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대체 이 정부에게는 감추고 싶은 것과 국민들이 알면 안되는 사실이 뭐가 그렇게 많은 것일까?


김시곤 전 국장의 폭로 내용 중 필자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대목은 "KBS 보도에서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이같은 사실은 KBS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대로) 공영방송이 아닌 어용방송이라는 것을 방증해 준다. '御用(어용)'이란 말 그대로 임금이 사용하는 물건을 칭한다. 김시곤 전 국장의 폭로대로라면 KBS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용하는, 박근혜 정부를 위한 방송국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KBS가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이를 견제해야 할 방송의 책무를 철처히 기만하고 망각했기 때문이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요구대로 방송을 제작해 가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았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보도국장이라는 자리는 해당 방송사의 보도 내용을 책임지고 총괄하는 자리다. 따라서 김시곤 전 국장의 청와대 외압 사실 폭로는 그동안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던 청와대와 KBS간의 검은 커넥션이 사실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은 물론이고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방송법 마저 무력화시키는 명백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헌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를 위반한 것으로 참으로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이를 지적하는 국민들을 향해 법치의 준수를 강조하며 엄격히 여론을 통제해 왔다. 그러나 공영방송사를 동원해 사실을 왜곡하는 한편 진실을 은폐하는 위법행위를 한 것은 (그것도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앙에서 조차) 법치를 그토록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부였다. 시민들에게는 법치를 강요하더니 정작 자신들은 법치마저 사유화하는 전횡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 KBS의 보도본부 부장단이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총사퇴를 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아니, 정권과 적극적으로 유착해 KBS 저널리즘을 망친 사람이 어떻게 KBS 사장으로 있겠단 말인가"라며 길환영 사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 공영방송은 건강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권력의 지배와 예속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검은 치부를 드러내고, 진실을 보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 따라서 공영방송인 KBS를 어용방송으로 전락시킨 주역인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길환영 사장은 결국 박근혜 정권의 보도지침을 충실히 수행한 공복에 불과할 뿐이다. 박근혜 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한 길환영 사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KBS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회복될 가능성은 없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공영 방송을 사유화시키고 이를 정권의 안위와 유지를 위해 철저히 악용한 오만하고 독선적인 현 집권세력에게 있기 때문이다.  


김시곤 전 국장의 청와대의 KBS에 대한 외압과 사내 인사 등에 대한 개입 폭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요즘 습관처럼 되뇌이고 있는 '국가 개조'의 대상이 과연 누가 되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심각하게 묻고 있다.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국민들이 위임한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고 이를 철저히 악용하고 있는 이 추악한 정권에 준엄한 경종을 울려야만 한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