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는 4월에 치뤄진다. 생명이 움트고 온갖 꽃들이 만개하는 싱그러운 봄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새 일꾼을 뽑는 총선은 시기적으로 아주 잘 어울린다. 봄은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지 않은가. 산과 들이 산뜻한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총선에는 무언가 새롭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게 마련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실상은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계절은 영락없는 봄인데, 선거판은 여전히 겨울의 모습 그대로다. 칙칙하고 우중충하며, 황량하고 을씬년스럽다. 새로움도 없고 그렇다고 기대감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벌써 수십년 째 되풀이되고 있는 볼쌍스러운 선거 풍경에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다. 정치판이야 요동치겠지만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요 축제인 탓이다.
ⓒ 한겨레
대한민국에는 선거에 관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사람이 하나 있다. 도박판에 타짜가 있다면 선거판에는 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으로 통한다. 선거 때마다 연전연승을 해온 탓에 붙여진 별칭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그만 나타났다 하면 선거판은 술렁거렸고, 그 때마다 새누리당은 기사회생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고, 아군에게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 그는 불패의 신화를 써가고 있는 선거의 '신'이다.
그래서일까. 새누리당에서는 지금 '박타령'이 한창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떻게든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줄을 이어보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기존의 '친박'으로는 약발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진박(진실한 박근혜계)'이라는 교태의 수사까지 동원하고 있다. 박근혜의 이름에 기대려는 사람들과 이를 대놓고 즐기고 있는 대통령.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 한국경제
여의도로 복귀한 최경환 의원은 최근 대구 지역 예비후보의 개소식에서 "대구 경북 의원들이 박근혜 정부를 위해 한 일이 도대체 뭐냐"며 핏대를 세웠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승민 의원을 향해서는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면서 (대통령의) 뒷다리나 잡지 않았으냐"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어 진박을 자처하는 영남권 예비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일일이 참석하며 얼굴을 내비쳤다. 대구 경북에 진박들을 꽃아주기 위해 멍석깔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의 박타령은 직설적이다 못해 아주 노골적이다. 진박 마케팅에 대한 당안팍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진박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며 대구 경북에 출마를 선언한 진박들을 홍보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대놓고 본색을 드러내자 이 지역 후보들 역시 노골적인 진박 팔이에 팔을 걷어부치는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진박 6인'이라 명명하고 친유승민계 현역의원들에 맞서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중이다.
ⓒ 아주경제
어제는 친박 실세인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발언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는 어제 "헌법보다 인간관계가 먼저"라고 말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유승민 의원을 강하게 성토했다. 현역 국회의원의 입에서 헌법 가치보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서스럼없이 나오고 있다. 끔찍하다. 새누리당에는 저와 같은 반헌법적 인식으로 무장한 자들이 상당하다. 그들이 모여 열심히 법을 만든다. 노동개혁(악)법이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당 내부에서 박타령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은 선거가 그만큼 가까와 졌다는 방증이다. 총선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박타령은 더욱 빈번해지고 드세질 것이다. 이 나라는 후보자의 철학과 가치관, 살아온 이력과 능력, 정책보다 누가 더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인가, 누가 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실한 사람인가가 선거 당락에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곳이 아니던가. 지구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자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 JTBC 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리더십에 반기를 들며 탈당한 전력이 있다. 1인 보스 체제의 제왕적 통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그가 지금은 그보다 더한 제왕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곱씹어 볼 대목이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변하게 만든 것일까. 권력의 비루한 속성과 무서움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절대권력을 구축한 권위적 제왕과 그의 후광이 필요한 사람들이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술렁이고 있다. 이럴 땐 산 자들의 욕망이 한없이 추하게만 느껴진다. 진박이 쪽박이 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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