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발생한 어린이집 폭행사건의 파장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공개된 해당교사의 폭행 영상이 워낙 충격적인데다가, 다른 지역의 어린이집에서도 아동을 학대한 사례들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파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처지의 학부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분노와 불신,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있다.
어제(19일) 언론은 구속된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의 해당교사가 평소에도 어린이들에게 난폭한 행동을 해왔다는 것을 원장도 알고 있었으며,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원장이 일선교사들에게 관련사실에 대해 함구령까지 내렸다는 사실을 새롭게 보도했다.
언론의 보도대로라면 적어도 문제의 어린이집에서는 해당교사에 의한 아동학대가 상습적으로 자행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뜩이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는 학부모들을 더욱 분노케 만드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참을 수 없는 분노는 '과연 내 아이는 안전한 걸까' 하는 불안으로 이내 전이된다.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 글을 포스팅하는 와중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망각의 늪에 빠져 늘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함과 함께 자괴감이 물밀 듯이 밀려 들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현상 그 자체에 함몰되어 감당키 힘든 감정을 하염없이 분출하고만 있을 것인가. 오늘 필자는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 이유이자 본질을 발견했다.
하나도 다르지 않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이에 여론이 불같이 들끓어 오르고, 교사와 원장에게 주체할 수 없는 비난과 분노를 난사하고, 놀란 정부와 정치인들은 현장과는 동떨어진 의미없는 대책들을 급조해 내고, 난리부산법석을 떨다가 이내 관심에서 멀어져 버리는 전형적인 패턴은 이번에도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
기억의 저편에서 잊혀진 사건 하나를 호출해 본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부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17개월 된 아이가 자꾸 보챈다는 이유로 교사와 원장이 아이에게 폭행을 가한 사실이 공개되어 엄청난 사회적 파문이 일으켰었다. 당시 여론은 충격과 휩싸였고 분노로 이글거렸다. 해당 교사와 원장은 공공의 표적이 되었고, 애꿎은 다른 어린이집까지 도매급으로 엮여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과 방안들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대한 관리•감독과 보육교사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한편, 어린이집에 대한 행정처분을 엄격히 하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CCTV 설치의무화 법안 요구도 이 때 등장했다.
2년 전 발생한 부산 어린이집 폭행사건과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은 그 시작부터 이후의 수습과정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2년 전 당시 언론들은 뽑은 기사의 타이틀이다. 그들은 대부분 '어린이집 폭행사건 또 발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는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우리사회가 같은 문제로 똑같은 고민을 해왔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사회가 언제나 수박 겉 핧기 식의 '땜빵'용 정책으로 핵심을 비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에서도 이와 같은 관행이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6일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 번이라도 학대행위가 발생하면 해당 어린이집은 폐쇄된다. 그런데 정부의 대책에는 어린이 집이 폐쇄되면 다니던 어린이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의 대책은 빠져 있다.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급조된 정책을 발표했다는 것으로 밖에는 달리 이해할 길이 없는 것이다.
모든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인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폭력은 CCTV가 있었음에도 벌어졌다. 이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CCTV가 어린이집 아동폭력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수년 째 공전 중인 CCTV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도 남아 있으며, 예산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불분명하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의원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대책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어린이집 아동폭력을 막기 위해 할머니들을 투입해야 한다는 이색적인 방안을 내 놓았다. 손주 사랑이 각별한 할머니들을 오전과 오후에 어린이집에 출근하게 해서 수업을 참관하게 되면 일자리도 창출되고 아동폭력방지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핵심과는 거리가 먼 대책에 네티즌들은 실소로 대응하고 있다. 역시 본질을 비켜간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정부여당에서 내놓은 대책들은 어린이집 아동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본질적인 제도 마련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들 일색이다. 그 어디에도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근무를 해야하는 보육교사들에 대한 처우개선이나(임금인상과 복지), 맞벌이 부모를 양산할 수 밖에 없는 사회경제 시스템의 개선(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 체계적인 보육시스템을 갖춘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공공재 확대) 등의 핵심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당장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정부여당의 근시안적인 대책과 모든 책임을 일선 보육교사와 어린이집으로 몰고 가는 여론몰이의 행태로는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폭력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현상에 매몰되어 감정에 치우치는 순간 사태의 본질은 가려지고 핵심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것은 드러난 현상보다 그 속에 감추어진 본질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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