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놓고 정부와 시·도교육감 사이에 뜨거운 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정부는 교육청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통해 3~5살 누리과정에 있는 어린이의 어린이집·유치원 보육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고, 시·도교육감들은 누리과정은 정부시책사업이니 만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아닌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시·도교육감이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자 일선 학부모들 사이에는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논란을 초래한 당사자로 시·도교육감을 지목하고 있고, 시·도교육감은 정부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무상보육 공약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려 한다며 정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지난 7일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5년 누리과정 예산 가운데 2조5000억 여원을 예산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12년 당시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등의 결정으로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했던 보육 예산을 정부가 올해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대처하겠다고 발표하자 열악한 지방재정을 감안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시·도교육감의 반발이 터져 나오자 이번에는 정부가 시·도교육감을 비판하고 나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시·도교육감들이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지난 정부였던 2012년 유치원-보육 일원화를 추진하면서 전체 학생수 감소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교육교부금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의) 재원을 부담하기로 이미 지난 정부에서 합의해서 추진해온 사항"이라며 "교육감 협의회의 주장은 똑같은 어린이 교육문제를 두고 유치원은 교육부(교육청), 어린이집은 복지부(지자체)로 나뉘어 영역다툼을 벌이던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라고 시·도교육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이미 합의된 사항을 시·도교육감들이 뒤집은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원래 누리과정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남겨놓은 상황에서 추진된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 협의과정에서 시·도교육감은 논의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별도의 예산도 편성되지 않았다. 시·도교육청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고, 예산조차 편성되지 않아 문제의 소지가 있던 누리과정을 박근혜 대통령이 "보육비 부담을 덜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 키우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대선공약으로 확대한 것을 정부가 이번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떠넘겨 버린 것이다. 시·도교육청 입장에서는 내년부터 만 3~5세 전원에 대한 예산 전부(약 6,000억원)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적 압박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시·도교육청과는 어떠한 협의와 논의과정도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보육예산을 편성하지 않았으니 시·도교육감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황당함은 계속 이어진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어제(8일) 교육부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아교육·보육에 대한 국가 완전 책임 실현을 위해 3~5세 누리과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앞뒤 말이 전혀 맞지 않는 자가당착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정부가 내년 예산에 누리과정과 돌봄교실 예산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으면서 3~5세 누리과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하고, 유아교육 및 보육에 대한 국가 완전 책임을 실현하겠다면서 보육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기겠다 하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또 없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자가당착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인수위 당시에 전국 시도지사를 모아놓고 보편적 복지를 중앙정부가 맡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못 지킬 거면서 왜 광을 파셨나.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할 일 아닌가.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라고 해야 한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의 질의에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면서 약속을 지킬 것이라 한다. 문장으로 치자면 비문이고, 행위로 치자면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다짐에 앞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지난 행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다짐은 드러난 행위의 결과에 따라 그 신뢰의 유무가 판단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본다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다짐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교육감의 갈등은 단순히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간의 예산을 둘러싼 공방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국민과 약속했던 대선공약들의 파기 및 축소 논란의 연장선 상에 있는 갈등이자 혼란이다. 문제는 이 갈등과 혼란을 유발하는 주체가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부라는 사실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논란이 된 '노인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부터 시작해서 수십가지에 달하는 대선공약들이 파기되거나 축소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게 친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부에게 공약파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엄중한 책임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번 보육료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에서 '국가 보육 책임'을 거론하며 무상보육을 대선공약으로 들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었다. 보육료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무상보육 공약이 재원을 감당키 어려워지자 그 책임을 지방교육청으로 슬그머니 전가시키려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런데 정부는 논란의 원인을 자신들이 제공해 놓고 책임은 지방교육청이 져야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책임전가를 하며 보여주는 방식도 불량스럽기 그지없다. 지방교육청과의 충분한 협의와 논의 없이 막무가내로 부담하라고 등을 떠밀 뿐만 아니라, 이를 반대하는 시·도교육감들을 향해선 '좌파교육감들이 몽니를 부리고 있다', '국민과 어린이들을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는 등의 선정적이며 원색적인 내용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결국 논란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국민과 어린이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은 시·도교육감들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증세없이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내용으로 재미를 쏠쏠히 봤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때 박근혜 대통령은 호기롭게도 '아니요'를 외치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노인기초연금,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등의 공약들이 '증세없는 복지'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이는 데이빗 카퍼필드가 보여주는 화려한 마술에 불과했다. 마술이 결국 눈속임에 불과하듯 박근혜표 복지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그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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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정치는 국민과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정치"라며 멋들어진 정의를 내린 당사자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저 가식적인 말이 아무 꺼리낌없이 남발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개탄스럽게 만든다.
중국 속담에 "한 번 약속을 어기는 것보다 백 번 거절해서 기분을 상하게 하는 편이 낫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신뢰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경구다. 나는 정치인들이 비록 공약을 지키지 못할지라도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백번 양보해서 선거 때 표를 의식해서 한 행위일지라도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국민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정부는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논란의 당사자로 시·도교육감을 지목하고 있다. 너무나 뻔해 보이는 거짓말도 이렇게 잘만 포장하면 대동강물도 팔아먹을 수 있다.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뻔뻔한 정치인, 염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관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자들을 보는 것은 이제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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