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7일)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SNS에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믿기지 않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많은 사람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 넣았다. '친구 먹었다'는 제목의 글 속에는 자신이 일베 회원임을 인증하는 손가락 모양과 함께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비하하는 의미인 오뎅을 들고 있는 사진이 게제되어 있었다.
'오뎅'은 일베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빗대어 사용하는 용어로 이 사진은 '바다에서 수장된 친구 살을 먹은 물고기가 오뎅이 됐고, 그 오뎅을 자기가 먹었다는 뜻'이라는 설명과 함께 인터넷에 빠르게 확산됐다.
그동안 사회구성원의 보편적 상식과 인륜에 반하는 내용의 글들을 아무렇지 않게 게시하며 여론의 따가운 질책과 비난을 받아왔던 일베가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 기사를 접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악'과 '충격' 속에 빠진 모습이다. 그러나 경악과 충격은 이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전이되었다. 이 뜨거운 분노는 어쩌면 인간성이 상실된 광기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이미 몇차례에 걸쳐 일베의 실체와 그들의 내재된 욕구와 욕망의 기저를 살펴보는 글을 포스팅한 바 있기 때문에 오늘 글에서 이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이번 논란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과 논란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이중적인 대응방식과 모순된 상황논리다.
올 초 검찰은 재미교포 신은미씨와 민주노동당 전 부대변인 황선씨가 '통일 토크 콘서트'에서 북한을 찬양하고 미화했다는 혐의로 신은미씨에게는 강제출국을, 황선씨에게는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검찰의 행보가 지난해 말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앞두고 조성된 '공안몰이'의 연장선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신은미씨의 강제출국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한국 검찰의 결정을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들은 신은미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미국 국무부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AP통신 등 세계 유수의 외신들도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박근혜 정부의 표현의 자유 수호 의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 위축에 대한 외신의 부정적 평가는 단지 이번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근황에 의문을 표시한 언론사들을 향한 정부의 각종 고소와 고발, 세월호 참사 시위와 관련된 검찰의 고발과 기소,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SNS 글에 대한 고발과 기소,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 등에 대해서도 외신들은 일제히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 제약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외신들의 평가와는 달리 한국은 사실 표현의 자유가 아주 잘 지켜지고 있는 나라다.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예외조항에 속할 뿐이다. 예외조항만 벗어나면 박근혜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무척이나 공을 들이는 모습을 연출해 왔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가지 사례들을 살펴보겠다.
탈북자단체와 보수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벌이는 대북전단살포는 그동안 우리사회의 커다란 갈등과 논란을 야기시켜 왔다. 급기야 전단살포를 둘러싸고 이를 결행하려는 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 간의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의 강력한 경고로 자신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결사적이 될 수 밖에는 없었다.
주민들은 탈북단체들에 맞서는 한편 정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자신들의 안전권과 생존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며 정부가 개입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대북전단살포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자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들먹였다. 이것으로 박근혜 정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증명이 된 셈이다. 이 정부는 자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 표현의 자유를 더 우선 순위에 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표현의 자유에 있어 얼마나 확고부동한 정부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는 뭐니뭐니해도 서두에 언급한 일베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아니 하지 않는 사자모욕과 명예훼손글이 서스럼없이 게시된다. 또한 개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허위사실 유포는 물론이고 사회공동체의 공공의 질서를 위협하는 반사회적•반인륜적 내용의 글들이 넘쳐난다.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불러 일으키고 공공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나아가 인간 내면의 광기를 외부로 여과없이 노출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일베의 폐해는 박근혜 정부가 엄격하게 적용시키고 있는 국가보안법 못지 않게 반사회적이고 반국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반시민들까지 일베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주고 있는 열린 정부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내용들로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일베에 대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수족인 국정원에서는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일베를 국정원 행사에 초대하는 등 묘한 연대감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자신에 대한 모독이 도가 넘었다며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렸던 박근혜 대통령이 사자 모욕과 명예훼손, 반사회적 망동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베에 대해서는 단 차례의 언급조차 없다)
반사회적인 '파시스트 양성소'로 평가받는 일베가 수많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승을 부리는 것은 정부의 태도로 미루어 보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작금의 대한민국은 가히 일베의 전성시대라 칭해도 무방할 정도다.
서두에 언급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이중적 대응방식과 이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적인 논리는 결국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국정운영의 기조와 방향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나라에서는 한심하게도 피도 눈물도 없는 엄격함과 한없는 관대함을 가르는 기준이 고작 위정자와 집권세력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다.
이같은 사실은 우리가 습관처럼 말하고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시민의 기본권 등이 사실은 얼마나 취약하고 부실한 것이었나를 직시하게 만든다. 숭고한 민주주의, 존엄한 시민의 기존권 등을 말하기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환경은 한없이 작고 소박하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표현의 자유가 정권의 입맛대로 완전히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현실은 이 땅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 정치집단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내용과 시민권의 크기가 결정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자각이다. 언제나 그렇듯 자각이야말로 기적같은 변화를 이끌어 내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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