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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유적지 위에 레고랜드? 어떻게 이런 일이?

LEGO(레고)는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없는 집이 없는 블럭 완구의 대명사다. 가격은 비싸지만 다른 블럭제품들이 따라올 수 없는 다양한 레고브릭과 미니피겨 등으로 전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 셋을 키우는 필자의 집에도 동물원 세트와 지인에게 받은 몇 통의 피어브릭이 있다. 


레고의 장점은 비단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용 맞춤 완구라는 데에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 저런 모형을 만들다 보면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이에 푹 빠져들게 된다. 생각하는 데로 어떤 모형이든지 만들 수 있으니 아이들의 창의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놀이교재로 이만한 게 없다. 수 십년이 넘도록 레고가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레고는 단순히 완구제품만을 생산하는 것에서 벗어나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테마파크도 건립 운영하고 있다. 현재 레고를 출시한 덴마크를 비롯 독일,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에 대규모의 테마파크가 문을 열고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3년 11월 29일 춘천시 중도에서 기공식을 갖고 착공을 시작했다. 2017년 3월에 준공될 테마파크가 개장하게 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레고랜드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사업전망은 비교적 밝은 편이다. 레고랜드를 운영하는 세계의 다른 테마파크와는 달리 춘천 레고랜드는 로열티를 재공하지 않는다. 강원발전연구원은 레고랜드 조성으로 춘천이 기존 유원지 관광 개념을 벗어나 수도권 동부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차별화된 개발전략으로 레고랜드를 춘천의 문화예술인프라와 접목시키면 충분히 경쟁력있는 사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런데 이 사업에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7월 레고랜드 조성 사업이 한창인 중도에서 2000년 전 선사시대 유적이 대거 발굴된 것이다. 이에 시민단체에서는 레고랜드 건설 중단과 사업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엘엘개발주식회사(LLD)에서는 발견된 유물들을 그대로 떠내어 레고랜드 옆으로 옮겨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과 이를 강행하려는 입장이 충돌하며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6년에도 이천시에 레고랜드를 추진하려다 수도권 규제에 막혀 사업을 접어야 했던 LLD측에서는 뜻하지 않게 발견된 청동기 시대 유적지와 유물로 말미암아 또 다시 사업진행에 난항을 겪게 됐다. 일단 LLD측에서는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와 관련된 부분을 문화재 위원회와 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진행해 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LLD의 민건홍 총괄대표에 따르면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환호(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도랑)와 수혈, 주거지와 지석묘 등을 인근 지역으로 이전 보관하고, 주요 주거지 2개는 역사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발굴의 전 과정을 영상기록물로 남겨 교육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며, 레고랜드 내에 환호의 위치와 당시 생활상을 레고불럭으로 재현하는 방법도 고려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레고랜드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사뭇 다르다. 발견된 유적지가 국내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 중 거의 최대 규모이고, 생활유적지로서는 처음 발견된 유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는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히 볼 수 있는 유적지를 파헤치고 그 위에 레고랜드를 건설하는 것은 역사적 견지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LLD측에서 주장하는 역사박물관에 당시의 생활모습을 재현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문화를 말살하는 몰상식한 태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투자자인 영국의 멀린그룹을 겨냥해 자신들은 영국의 스톤헨지 유적지 수백만, 수천만 평을 보존하고 있으면서 남의 나라 땅의 문화유적지를 파괴해가면서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엄연한 문명파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번 레고랜드 논란은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오래된 화두가 쟁점이다. 강원도가 이번 사업 유치에 심혈을 기울여 왔고, 강원도 지역 경제를 위해서도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레고랜드의 건설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레고랜드가 완공될 지역이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부터는 유적지를 둘러싼 개발논리와 보전논리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다. 


그런데 이번 논란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은 사실 따로 있다. 그들은 개발사도, 시민단체도 아닌 문화재청이다. LLD측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사업은 문화재청의 심의를 거쳐 사업 승인이 난 사안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하라고 있는 곳이지 파괴하라고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적지 위에 레고랜드의사업 승인을 허가해 준 문화재청의 존재 이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문화재청의 이해할 수 없는 허가승인에는 두 가지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발견된 유적지가 보존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경우, 다른 하나는 문화재청이 관련 심사를 부실하게 했을 경우다. 그러나 발견된 유적지에 대한 시민단체와 학계의 보전가치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다. 논란이 일자 강원도청의 레고랜드추진단장은 "문화재청이 전문가 회의를 통해 이미 문화재 보존 방식을 결정했고 그 결정에 따라 적법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LLD측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시민단체들이 레고랜드의 건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시나 문제는 문화재청이다. 지난 9월 문화재청이 LLD측의 문화재 발굴 허가요청을 받아들여 문화재를 박물관에 이전하는 것을 조건으로 사업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개발사의 입장에서는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이는 레고랜드 논란의 빌미를 문화재청이 제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임이 문화재청에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그 상식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문화유적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전해 복원하겠다는 발상이 다른 곳도 아닌 문화재청에서 나왔다는 것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춘천 중도고조선유적지보존  범국민운동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선문대학교 역사학과 이형구 교수는 "문화유적지는 현장을 떠나면 이미 파괴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문화유적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모방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점점 사라져 가는 문화유적을 지켜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어찌된 영문인지 이 나라에서는 새롭게 발견된 유적 위에 테마파크를 조성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를 이해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나는 의문이다. 정말이지 부끄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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