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만 갑니다. 아직 잠이 덜 깬 탓인지 이른 아침 공기가 매섭게만 느껴집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 났습니다. 이제 돌을 갓 지난 셋째 은우가 병원에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정기검진이 있는 날입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이 분주해 집니다. 간단히 씻고 재빨리 옷을 챙겨 입고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막내 녀석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 봅니다.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형상이 또 있을까요. 순간 시간이 멈추고 세상도 따라 멈추고 오직 아이와 저 이렇게 둘만의 고요하고 평안한 천국 세상이 열립니다. 지극히 갸녀린 몸으로 세상에 나온지 벌써 일년하고도 삼개월, 그동안 별탈없이 자라준 아이가 고맙고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행복한 아침입니다.
학교에 간 큰 아이만 빼 놓고 둘째와 막내, 그리고 아내와 함께 서둘러 병원으로 향합니다. 간밤에 큰 눈이 내려서인지 차들이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갑니다. 아무래도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습니다. 길도 미끄럽고 갈 길 바쁜 차들도 여전합니다. 이럴 땐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느긋하게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지요. 급한 와중에도 잊지않고 챙겨나온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는 것으로 마음의 분주함을 지긋이 눌러줍니다.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세상이 살갑게 느껴집니다.
막내의 정기검진은 30분 만에 끝났습니다. 귀 안쪽이 많이 붉다며 바이러스성 감염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으니 경과를 좀 지켜보자는 말씀을 듣고서야 겨우 마음이 놓입니다. 자식을 셋이나 키우고 있지만 제일 겁나고 두려운 것은 역시 아이들이 아플 때입니다. 아이가 아파 힘들어 하면 이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동병상련인 겁니다, 적어도 이 지점에서는.
<다음 뉴스 검색에서 발췌>
배우 김부선씨가 어제(8일) 영화 시사회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김부선씨는 지난해 아파트 난방비와 관련된 비리를 폭로해 수많은 국민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용기와 정의감에 깊은 찬사를 보내며 그녀에게 '난방투사'란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사실 부조리와 불의에 맞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의와 공의의 숭고함과 위대함을 말하기에는 세상의 곳곳에 편견과 왜곡이 비수처럼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 김부선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세상의 비리와 불의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투영되어 있던 편견과 왜곡과도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비겁하고 부당합니다. 그리고 잔인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굽힘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는 건 이런 힘든 싸움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고 있는 그녀의 뚝심과 소신 때문일 겁니다.
사실 김부선씨 정도의 나이가 되면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를 걸러낼 혈기는 날아가고 오로지 냉정한 현실감만 덩그러니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고 질끈 눈감아 버리기 일쑤입니다. 귀찮으니까, 편하니까, 그래야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외면하는 겁니다. 대부분 그렇게 삽니다. 더구나 지금은 괜한 의기 하나 믿고 나섰다가는 큰 낭패만 보기 십상인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헌사한 '투사'라는 훈장도 사실 지금같은 세태에선 부담스럽기만 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 김부선씨의 심지는 굳건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들에 대한 소신과 신념이 흔들리지 않아 보입니다. 이 날 시사회장에서 환히 웃고 있는 그녀의 웃음과 함께 '노란리본'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이 무언의 외침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순간 코끝이 찡해져 옵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 있다 보니 '노란리본'의 메시지가 더욱 강력하게 다가 오는 것입니다.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가슴이 무너지는 것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아고라 2.0 사이트에서 발췌>
지인 중의 한사람은 팔뚝에 문신을 새겼습니다. 그는 '노란리본'과 함께 '2014.4.16~'이라는 문구를 새겼습니다. 그 역시 김부선씨와 같은 마음에서 문신을 팔뚝에 그려 넣었을 것입니다. 잊기 쉬우니까, 망각이란 늪속으로 자꾸 빠져 드니까 '노란리본'을 통해서, 문신을 통해서라도 가슴에 새기고 기억하려는 겁니다.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해 '노란리본' 만큼 강력한 환기제가 또 어디에 있을까요. '2014.4.16~' 만한 메시지가 그 어디에 있을까요. 그 마음을 알기에 저들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덩달아 제 마음도 뜨거워 지는 걸 느낍니다.
사람들의 기억과 마음 속에서 멀어진 듯 보이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나타난 최민수, 박영규, 최재성씨 등 배우들의 모습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려 애쓰는 사람들, 그리고 이렇게 '노란리본'으로 '문신'으로 그날을 마음에 새기려는 사람들까지.
당신들이 대통령보다 훌륭합니다. 당신들이 정치인들보다 더 위대합니다. 그 날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한 당신들이 대통령이고 당신들이 정치인입니다. 오늘 배우 김부선씨를 통해 그 날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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