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난 5일 '정윤회 동향 문건'과 관련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예상한 대로 '문건의 내용은 허위'라며 오매불망 권력 바라기에 여념이 없는 대한민국 검찰의 면모를 여실히 입증해 주었다. 지난해 교수들이 뽑은 '지록위마'의 고사가 다시 한번 떠오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가이드 라인대로 사슴을 말이라 칭하고 있으니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번 수사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두고 '받아쓰기'라는 굴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검찰에 수사의 가이드 라인을 지시한 청와대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반응들이다. 청와대는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몇 사람이 개인적 사심으로 인해 나라를 뒤흔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번 논란을 개인적 일탈로 규정했다. 새누리당도 논평을 통해 "청와대 문건유출사건은 '조응천 주연, 박관천 조연'의 '허위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정보를 다루는 직원이 근거없는 풍설과 미확인 정보를 '동향보고'란 청와대 그릇에 담아 혼란을 야기시킨 일탈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한심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새누리당과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이 지난 몇개월 동안 사심에 눈이 먼 사람들이 짜집기한 찌라시에 놀아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작 찌라시에 불과한 문건에 온 나라가 이리 들썩, 저리 들썩 하는 꼴이라니. 도대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이길래 고작 찌라시 따위에 나라 전체가 이리 흔들린다는 말인가. 이번 사건이 개인적 일탈로 벌어진 것이라면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피해자가 되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건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공직기강의 붕괴는 또 어떻게 설명할 셈인지 모르겠다. 청와대 내에서 문건유출이 서스럼없이 벌어지고, 물러난 관료들에 의해 정윤회와 문고리 삼인방의 인사개입 사실과 박 대통령이 직접 일선관료의 교체를 지시했다는 뒷얘기까지 나온 상황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정부시스템 내에서라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번 논란은 박근혜 정부의 공직기강이 얼마나 물러 터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저자들은 자기들끼리 짜맞춘 검찰의 수사결과발표를 두고 의기양양 반색하는 논평을 내고 앉아 있다. 똥무더기 피하려다 쓰레기 더미를 뒤집어 쓴 줄도 모르고 있으니 바보들도 이런 바보들이 따로 없다.
애초 이번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에 불을 지핀 세계일보는 어제(6일) 검찰의 이번 수사결과발표와 관련해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연하고 새누리당과 검찰이 조연한 이번 '허위 조작극'에 한가지 중요한 변수가 생긴 것이다. 기사는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재직할 당시 작성한 모든 문건을 대통령기록물로 간주하고 이를 반출한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청와대와 검찰의 주장에 주목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을 찌라시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한낱 찌라시에 불과한 이 문건이 청와대와 검찰에 의해 어느 순간 대통령기록물로 격상되는 이변이 일어난다. 이는 이번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촛점을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서 문건유출로 물타기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개천에서 용나듯이 찌라시에 불과했던 문건이 하루아침에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소중하게 보호받아야 할 가치있는 문건으로 둔갑해 버렸다. 찌라시, 아니 이제는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받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의 외부유출은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요 범죄라는 등식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 졌다.
이런 상황에서 완벽할 것만 같았던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명품 찌라시'가 추후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법조계는 "청와대 문건은 무조건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청와대와 검찰의 논리에 따라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문건은 절대 손을 댈 수 없고 고스란히 보존해야 하며,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 비위 첩보 등도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말한다. 통상 대통령의 친인척 비위 첩보 등 민감한 내용의 문건은 정쟁을 우려해 정권교체 직전 파기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통령기록물로 규정한 공직기강비서관실 문서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 이외에도 친인척과 관련된 유착 및 동향보고서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 차기정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청와대가 직접 "청와대 문건은 모두 대통령기록물"이라고 선언을 해버렸으니 자승자박이요,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꼴이다.
옛말에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총으로 흥한 자 총으로 망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찌라시 사랑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저들의 뒷통수로 되돌아올 지도 모르겠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일순간에 찌라시로 격하시키더니, 십상시들이 국정을 농단한 국가문란사건을 문건유출사건으로 갈아타며 이번에는 찌라시를 대통령기록물로 격상시켜 버리는 저들의 변죽이 어떤 결말로 나타나게 될 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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