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몸에 밴 나쁜 습성은 어지간해서는 고쳐지지 않는다는 의미의 경구다. 아이의 나쁜 습관이나 습성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 부모들이 부단히도 노력해 왔던 것은 이 경구에 내포되어 있는 심오한 의미를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보고 필자의 머리 속에는 불현듯 저 오래된 경구가 떠올랐다. 박 대통령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에 이보다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뿌리깊게 배어있는 박 대통령의 나쁜 습성이 이번에도 TV 모니터를 통해 고스란히 생중계됐기 때문이다.
불통과 아집, 오만과 독선, 안이한 상황인식, 무책임한 책임전가, 무의미하기 짝이없는 화려한 말의 향연에 이르기까지 이 날 박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국민들이 지긋지긋하게 보아 왔던 모습들을 한꺼번에 재연해 냈다. 그 결과 대통령의 국정인식의 변화와 자성, 청와대의 근본적인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는 이번에도 철저하게 묵살됐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에 이번에도 역시나 실망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인터넷 여론과 SNS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을 향한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같은 흐름은 비단 박 대통령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계층의 목소리만은 아니다. 심지어 여권 내부에서도 이번 기자회견의 내용을 두고 볼멘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대통령) 모두 발언을 보다가 꺼 버렸다"며 박 대통령의 바뀌지 않는 상황인식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또 다른 중진의원은 "노코멘트"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집권여당의 중진위원 조차 "모니터를 꺼 버렸다"는 직설적 반응과 "할 말이 없다"는 부정적 반응을 서스럼없이 내비친다. 박 대통령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왜 그럴까?
필자는 며칠 전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 40% 붕괴의 의미를 살펴보는 글을 포스팅했다. 그 글에서 박 대통령에게 절대적 충성도를 보여온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민심이 흔들리고 있고, 대통령제의 특성상 올해가 실질적으로 국정운영을 주도할 수 있는 마지막 해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에게 환골탈태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곧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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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났듯이 박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이자 명령이요, 여야 정치권의 바람인 변화와 쇄신을 단호히 거부했다. 대신 기존의 관행대로 통치를 계속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쓴소리와 직언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한 인식과 태도, 사태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유와 철학의 빈곤, 소통과 포용을 찾아볼 수 없는 오만과 독선, 그리고 아버지의 철권통치를 선으로 인식해온 근원적 오류로 말미암아 박 대통령은 가서는 안되는 길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집권 이후 계속된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에 실망한 민심이 빠르게 이반되고 있고, 집권여당의 내부에서 조차 박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적 국정운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을 그녀가 어떻게 타개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2016년은 총선이 치루어지는 해다. 정국이 총선제체로 접어드는 올 하반기부터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의 내용을 두고 여권 일각에서 내년 총선을 우려하는 절망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녀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박 대통령에게 찾아올 악재는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다. 이미 새해 벽두부터 2000원 이나 인상된 담뱃세로 민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고, 수도세와 대중교통요금, 고속도로 통행료 등 줄줄이 인상될 공공요금도 부지기수에 이른다. 이는 앞으로 민심이반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의미다.더욱 심각한 것은 빠르면 올 여름 강행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최근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는 국제유가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요동치는 대외상황으로 국내 경제는 바람 앞의 촛불같은 형국에 처해 있다. 결국 이같은 대내외적인 경제여건은 국내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서민들의 삶을 점점 더 절망 속으로 몰아갈 것이다. 박 대통령이 과연 이같은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상황은 상당히 비관적이다. 필자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와 같은 시대흐름과 정치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지독한 아집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자율과 소통, 민주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21세기의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확인되었다.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되어 이번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비판과 지적에도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는 인사문제, 대선공약 파기와 후퇴논란에서 보여준 무책임함,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과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응하는 반민주적이고 초법적인 인식과 태도, 세월호 참사의 과정에서 나타난 이율배반적인 모습, 그리고 국정운영 전반에 걸친 독단과 독선들은 이제 모르는 국민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어떠한 반성도, 그렇다고 일말의 변화도 없다.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의 모습 속에는 과거 독단과 독선에 사로잡힌 채 국민 위에 군림했던 위정자들의 모습들이 오버랩된다. 멀리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희대의 망언과 함께 극강의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태양왕 루이 14세부터, 가깝게는 영구집권을 위해 국가의 헌법마저 뜯어 고친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한낯 통치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과 박 대통령의 모습은 별반 차이가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 했던 위정자들은 한결같이 불행해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역사는 그 누구에게도 예외를 허락치 않는다. 이를 직시하지 못한다면 박 대통령 역시 만고불변의 진리를 비켜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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