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전두환을 국가원로라고 칭할 수 있을까. 우리사회가 다양한 가치판단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 하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전두환 신군부시절을 호시절로 생각하고 그 당시로 회귀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 상당하다.
당장 일베만 보더라도 전두환을 미화하고 심지어 영웅시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무고한 자국민 수백명을 살상하고 권위주의적 철권통치로 악명이 높았던 독재자가 국가의 원로로 추앙받는 사회라니, 섬뜩하고 아찔하기만 하다.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 둘은 묘하게 닮아 있다. 저들은 군 출신으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찬탈하고 반공을 전가의 보도로 삼아 집권기간 내내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한 독재자들이다. 잔인무도한 독재의 악몽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저 두사람은 공포 그 자체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 둘은 찬양과 숭배의 대상이다. 굳건한 안보체제와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강력한 지도자요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 같은 대상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이 극단적 평가는 마치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상황을 연상시킨다.
물론 독재자를 흠모하고 영웅시하는 장면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러시아에서도 독재자 스탈린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독일에서는 아직도 히틀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의 재림을 꿈꾸고 있다.
스탈린과 히틀러는 모두 강력한 통치력과 군사력을 무기로 러시아와 독일의 대제국화를 이루어 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스탈린과 히틀러 시대의 추억과 향수에 젖어드는 것은 현재의 곤궁함에 대한 반작용에 불과할 뿐이다. 죽은 독재자들의 부활을 이끌어 내는 것은 언제나 살아있는 자들의 거센 욕망이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박정희에 대한 찬양과 찬가가 끊이지 않는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박정희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죽은 박정희를 통해 새마을 운동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를 꿈꾸고, 경제가 비약적으로 부흥하고 삶이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전두환에 대한 찬양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죽은 독재자와 아직 살아있는 독재자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며 삶의 일탈을 꿈꾼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모두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와는 대척점에 있었던 독재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명박과 박근혜 체제 하에서 저들의 삶과 정치여정이 새롭게 조명되고, 무자비하게 인권을 유린했던 철권통치마저 다시 쓰여지고 있다. 이는 이명박과 박근혜 체제가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국가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현 집권세력에게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미화와 왜곡, 찬양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국가주의를 염원하는 통치자의 의중은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가장 먼저 알아 차리는 법이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죽은 독재자를 찬양하고 업적을 기리고, 심지어 신격화시키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20년 가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박정희는 특정 정치인에게, 그리고 특정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반인반신'으로 추앙받는 우상같은 존재다.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은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온 '박정희교'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보인다. 구약시대에서 하나님 곁을 떠난 히브리인들이 금송아지에게 복을 빌었듯이, '박정희교'의 메카 경북 구미시에서는 죽은 독재자의 동상을 바라보며 복을 기원하는 기괴한 장면이 연출된다.
살아있는 독재자 전두환을 예방한 이완구 신임총리의 행보도 과거회귀라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본질은 같다. 그는 설 연휴기간인 지난 19일 전두환을 예방했다. 전두환을 향한 반국민정서를 감안하면 여론의 비난을 각오하고 찾아 간 것이다. 예상대로 이번 예방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는 이미 청문회 과정에서 과거 국보위 파견근무 이력과 이때 받은 훈장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루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와 국가주의의 도래를 꿈꾸는 집권세력과 결탁한 그에게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비난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하물며 그는 이명박 박근혜 체제의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아주 충실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전두환을 예방한 그의 행보가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는 아직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을 총리 취임서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민의 뜻을 따르는 총리가 되겠다고 고개를 숙였었다. 그런데 이제는 죽은 독재자의 신화적 세계를 복원하려는 위정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살아있는 독재자를 예방하며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2015년의 대한민국은 죽은 독재자가 '반인반신'으로 신격화되고, 살아있는 독재자가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원로로서 극진히 예우받고 있는 불가사의한 땅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지극히 초라해 보이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 주무장관의 절대다수가 박정희의 권력찬탈과정을 단호하게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의 신임총리는 수 백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한 전두환을 국가원로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이 두 장면은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대통령이, 총리가, 국무위원이, 국회의원이, 그리고 국민들이 죽은 독재자를 숭배하고 살아있는 독재자를 찬양하는 한 저들은 '반인반신'으로, '국가원로'로 영원히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독재자는 절대로 저절로 부활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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