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이제 몇 주만 있으면 훈훈한 바람과 함께 봄을 알리는 전령사들인
개나리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 속에서 새삼 생명의 경이를 체험한다.
봄을
앞두고 저마다의 생명들이 기지개를 펴는 것처럼 정치인들 역시 선거철을 목전에 두면 잠자고 있던 생존본능이 꿈틀거린다. 변화를 직감하고 치열하게 내부투쟁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 저 둘을 지독하게
닮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꽃피는 춘삼월이야 바로
눈 앞이라지만 전국단위의 선거인 총선은 내년 5월 30일로 아직
1년이나 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무렴 1년도 훨씬 더 남은 내년 총선을 벌써부터 걱정할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놀라지 마시라,
총선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과 치열한 사투의 막이 오른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먼저 그 서막을 열었다. 그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불안감이 그들을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오늘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바라보는 내년 총선
판세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만약 다음 달에 총선이 치루어진다는 가정 하에라면 "서울지역은 강남과 서초를 빼고는 다 전멸이다"라고 단언했다.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새누리당 소속의원들이 들으면 집단쇼크에 빠질 그의 진단은 대단히 영민하기 이를 데 없다. 새누리당이 처해 있는 현실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으면서 동시에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나아가 조기 총선체제를 통해 당•청 관계의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분위기마저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두언
의원의 진단대로 새누리당은 지금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돌아선 민심은 좀처럼 반등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한 배를 타고 있는
새누리당도 덩달아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대표체제로 갈아탄 새정치민주연합은 집권여당의
실책과 문재인 대표에 대한 기대감이 결합해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급기야 두 정당의 지지율 차이는
0.9%~1.3% 차이로 좁혀졌다.
정두언
의원의 발언은 이와 같은 대내외적 정치환경을 고려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그의 진단대로라면 새누리당은 지극히 비관적인 상황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낯이 익다.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해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19대 총선으로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맞이한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극심한 위기감에 직면해야만 했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나타난 민심은 반이명박 정서를 분명히 하고 있었고, 공천파동과 고승덕 의원이 폭로한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100석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새누리당의 압승이었다. 새누리당이 승리한 원인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새누리당의 선거전략만으로 국한지어 살펴보면 당의 쇄신과 변화(이미지 변화), 유권자의 감성에 대한 호소, 좌클릭한
선거공약, 그리고 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존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한나라당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당명을 바꿨다. 당 로고도 파격적인 빨간색 문양으로 새롭게 제작했다. 방송에서 거리에서 무조건
"잘못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를 연발하며 고개를 숙였다.
연령별 맞춤공약을 들고 나오는 등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다양한 공약(空約)을 제시했다. 그리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리고 그들은 선거에서
이겼다.
새누리당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은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박근혜의 입장이 이명박의 그것과 같아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난 19대 총선 당시와 놀라우리만큼 똑같다. 반이명박 정서가 극에 달았던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반박근혜 정서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100석도 못 건질 것이라며 엄살을 떨었던 것처럼 이제는 강남•서초를 제외하면 서울에서 전멸할 것이라고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한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현 상황은 19대 총선의
데쟈뷰다.
총선을
바라보는 새누리당과 소속 의원들의 앞으로의 전략적 행보를 예상해 보는 것도 쉽다. 그들은 박근혜 정부와의 선긋기를 명확히 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그리고 대선에서 반이명박 전략으로 재미를 본 것과 마찬가지로 때에 따라서는 박근혜 정부와 정책적으로 대립하는 기묘한 상황을
목도할 수도 있다.
공천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점점 더 강화될 것이다. 그들을 향한 줄서기가 가속화될 것이고 친박은 자신들의 원죄로 공천학살의
희생양이 될 지도 모른다. 그나마 남아있던 친박은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대단히 굴욕적인 상황(레임덕)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의
총선 선거전략은 지난 19대 총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돌아선 민심을 돌이키기에는 그 방법이 마땅치 않은 까닭이다. 지역감정에 호소하고, 지키지도 않을 공약들로 표심을 흔들고, 무조건 잘못했다며 유권자에게 바짝 엎드릴 것이다. 방송과 언론은 연신 네거티브를 조장할 것이며,
새로운 용공조작사건이 터져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새누리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마다 나왔던 필승 시나리오가 고작 저 따위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테지만, 저들은 저 낡고 조악한 방법으로만 민주정부 10년을 제외한 그 오랜 기간을 집권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유권자가 반드시 풀어내야
할 미스테리이자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흑역사다.
설
민심을 통해 정두언 의원의 비관적 진단의 실체를 파악한 새누리당 소속 지역구 의원들은 본격적으로 총선을 준비하는 전투태세로 진입할 것이 분명하다. 저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위에 열거한 익숙한 풍경들이 곧 다시 펼쳐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저 익숙한 선거풍경은 이제는 타임캡슐에나 집어넣어야 할 낡은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낡은 방식을 고집하는 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가 퇴보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나는 다음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이 명징한 사실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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