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3일) 정국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이 크게 술렁거렸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직적접 단초가 됐던 청와대 문건유출과 관련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수첩에 적혀있던 'K'와 'Y'의 실명이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되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문건 유출의 배후로 지목됐던 'K'는 김무성 대표, 'Y'는 유승민 의원으로 밝혀졌다. (물론 당사자들은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뛰고 있다)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다. 문건 유출의 배후가 다른 누구도 아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기 때문이다. 저 둘은 한때 대표적인 친박의원이었다가 이제는 그들과 멀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관계가 소원해졌다 한들 그들이 문건 유출의 실질적 배후라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아직까지 언론은 두 사람이 문건유출을 주도한 이유와 경위에 대해서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 문건 유출의 배후라는 전제 하에 몇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먼저 매끄럽지 못한 당•청 관계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밀어내기 위한 차원에서 기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여러차례에 걸쳐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과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왔다.
청와대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에 새누리당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존재는 당•청 관계의 우위선점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따라서 문건 유출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의 입지를 흔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실체 파악을 위해서 문건 유출을 배후에서 조종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어지간한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는 '정윤회'라는 이름 석자가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 여당 입장에서는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이와 잇몸의 관계인 당•청 관계라지만 대통령의 임기는 고작 5년에 불과할 뿐이다. 당의 존립과 수권에 목을 맨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가치 보다 미래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의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을 둘러싼 세간의 풍문과 청와대 내의 권력암투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친박에서 떨어져 나온 후 그들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취급받고 있는 두사람의 오래된 앙금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언급한 것처럼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친박을 대표하며 대단한 위세를 과시했던 인물들이었다. 오죽하면 김무성 대표에게는 '친박의 좌장', 유승민 의원에게는 '원조 친박'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박 대통령과 정치적 갈등을 겪은 후 지금은 박 대통령과 소원한 관계에 있다.
김무성 대표가 당 대표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당권을 잡고, 유승민 의원이 차기 원내대표를 노리고 있을만큼 영향력있는 당내 중진으로 성장했음에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이 두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 비근한 예로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9일 대선승리 2주년을 기념한 청와대 만찬에서 친박 중진의원 7명과 비밀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초대받지 못했다. 상당히 의미있는 장면이다. 특히 당의 얼굴인 김무성 대표가 배제된 것은 그에게는 굴욕적인 일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러나 여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당•청 간의 헤게모니 싸움, 더 정확히는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권력암투가 빚어낸 파문으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높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두번째 가능성과 맞물려 있다) 필자가 다른 글들을 통해 강조했듯이 새누리당이 김무성 대표 체제로 갈아탈 무렵 당내에는 몇가지 변화의 조짐이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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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박심'이 깊숙이 개입한 당 대표 선거에서 필승카드였던 돌아온 노병 서청원 의원이 예상 밖으로 참패했다. 게다가 친박의 또 다른 히든카드였던 홍문종 의원은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지도 못했다. 선거결과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더욱 충격적이었다. 친박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의견 충돌로 표심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김무성 대표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새누리당 내에 탈친박의 기운이 상당히 퍼져 있었다는 뜻이다.
당 대표 선출 이후에는 친박과 비박의 갈등이 점점 농후해 졌다. 물론 김무성 대표의 '베이징발 1일 천하'가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박심'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진 현재권력이다. 그러나 '박심'이 유지되기 위한 전제조건인 민심이반 현상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눈과 귀을 막은 채 오로지 독불장군식의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는 박 대통령으로 인해 미래권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상신호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내년은 총선이 치루어지는 해다. 당권을 꽉 틀어 쥐고 있는 김무성 대표에게는 필살의 무기인 '공천권'이 있다. 이는 대선까지 넘보고 있는 미래권력의 핵심 김무성 대표의 입지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공고해 지는 반면 '박심'은 서서히 힘을 잃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새누리당 내의 권력지형에 일대 대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운영에 지친 국민여론은 싸늘하다 못해 폭팔 직전이다. 어떤 식으로든 당•청 관계의 주도권을 자신들에게 돌려 반전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가 저들에게는 분명히 있다. 이것이 (언론의 보도대로 문건유출을 저 두사람이 주도했다면) 가장 개연성이 높은 가설일 것이다.
믈론 이와는 정반대로 강력한 경고의 의미로 이번 문건 유출파문의 배후를 청와대에서 흘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건 유출의 배후를 적어 놓은 메모가 김무성 대표에 의해서 (실수였든, 고의였든) 언론에 공개되었다는 것에 미루어 보면 개연성은 조금 떨어진다.
어쨌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이번 파문이 당•청 간, 새누리당 내 친박과 비박 간의 치열한 권력투쟁과 암투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는 보통 임기말에 나타나는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헤게모니 싸움이 박근혜 정권에서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무성•유승민으로 대표되는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인 '朴'에게 반기를 든 셈이다. 이 싸움이 어떻게 끝이 날지 상당히 흥미롭게 됐다. 예나 지금이나 구경은 싸움구경이 최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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