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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어셈블리 진상필같은 정치인 어디 없습니까?

KBS2 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어셈블리(Assembly)'는 원래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의미한다. 이 드라마는 영화배우 정재영의 첫 TV드라마 출연이라는 점과 사극 '정도전'으로 대박을 친 정현민 작가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정현민 작가가 국회 보좌관 출신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보좌관 출신답게 국회의 상황을 섬세하고 리얼하게 표현해 내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단으로부터도 국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을 날 것 그대로 재연해 내고 있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셈블리는 정치 칼럼을 쓰고 있는 필자에게도 여러모로 흥미로운 드라마다. 정치불신이 극에 달한 시대, 정치가 국민의 희망이 되지 못하는 시대에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좋은 리더의 조건은 무엇인지, 참된 정치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셈블리에는 현실정치와 오버랩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극중 집권여당인 국민당은 새누리당, 한국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 사회당은 정의당과 오버랩되고, 등장인물들 역시 자연스럽게 현실 정치인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청계의 좌장인 박춘섭과 백도현의 최측근 홍찬미, 사회당 대표 천노심 등이 누구를 롤모델로 하고 있는지 시청자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고공농성을 위해 크레인에 오르다 실족사한 배달수 전 노조위원장은 지난 2003년 두산중공업의 노조탄압에 저항하며 분신했던 배달호 열사를 떠올리게 만들며, 극 초반 사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천막 농성을 이어가던 한국수리조선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문제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어셈블리는 현실정치와 밀접한 코드들을 적절히 배치시키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는 진상필의 좌충우돌 활약상에 있다. 용접공 출신의 노조위원장이 여당의 국회의원이 되어 사회적 약자와 소외층을 대변하는 국민의 국회의원이 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너무나 매력적인 환타지다. 진상필의 고군분투는 특권과 기득권에 찌들어 있는 현실 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틀기이며 기분좋은 일탈이다.





국민 진상 진상필은 거침이 없다. 가식없이 속에 있는 날 것의 말들을 마구 쏟아 붓는다. 그는 극 초반 법정에서 "호떡 구울 때도 한 번만 뒤집지 두 번은 안 뒤집거든요. 대한민국 법이 호떡만도 못합니까? 법을 개떡같이 만드니까 판사들이 호떡같이 뒤집는 겁니다"라며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대한민국 법과 사법부를 향해 일침을 놓았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기성 정치의 구태에 맞서는 모습을 연출했다당과 계파의 이익만 추구하는 당내의 정치행태에 대해서 인정사정없이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고,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한 당에 맞서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보는 이들을 통쾌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진상필이 총리임명 동의안을 막아내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는 장면이다. 도덕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무려 25시간에 걸쳐 의사진행발언을 하는 진상필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처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부적격 고위공직자의 임명을 막아내기 위한 불굴의 의지와 초인적인 투지가 돋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딸 아이의 학교 친구들이 보내준 엽서의 사연을 소개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감동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진상필은 총리후보자가 자신의 비리에 대해 "그것은 당시의 관행이었다. 열심히 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하게 됐다"고 해명했다는 것을 언급한 뒤 학생들의 사연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서민들의 소박한 바램과 하루하루의 치열한 일상을 소개하던 진상필은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법을 지키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꼼수를 써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열심히 사는 거냐"며 총리후보자와 동료의원들을 향해 묵직한 한방을 날린다.

불법과 부정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없이 고위공직에 오르는 인사들과 그런 자들을 눈부신 동업자 정신과 빛나는 동료애로 눈감아 주었던 국회의원들의 모습만 봐왔던 시청자에게 진상필의 의기와 분투는 가슴 뭉클한 감동 그 자체였다.





진상필은 스스로를 '머슴'이라 부르길 마다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장마저 난색을 표명한 다리를 직접 만들고, 환경과 지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무모하기 그지없는 신항만 공사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차기 총선 불출마의 대가로 제시받은 공기업 기관장 자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는가 하면당내 최고실세인 백도현 사무총장에 맞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겪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원칙을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국민의 머슴이기를 자처하는 진상필은 늘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며 봉사한다그에게는 권모술수와 사리사욕을 발견할 수 없다계파가 없으니 -딴청을 계파라 부를 수는 없다당리당략에 매몰되지도 않는다그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국민을 위하는 정치국민이 주인되는 정치를 하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할 뿐이다.


그의 모습은 무려 200개에 달하는 특권과 특혜를 마음껏 누리며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권위적인 국회의원의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다시청자들은 진상필을 통해서 국민을 제대로 섬길 줄 아는 국회의원의 표상을 보고 있는 셈이다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국회의원 진상필의 모습은 '정치인이 다 똑같지', '그 놈이 그 놈이지, '를 습관처럼 되뇌이던 국민들의 관성을 보기좋게 무너뜨린다. 그리고 이내 잠자고 있던 그들의 욕망을 심연으로부터 끌어 올린다. '우리도 저런 정치인을 보고 싶다', '우리도 저와 같은 정치인을 갖고 싶다'라는 강렬한 열망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꿈틀대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진상필이 허구의 인물이라는 점이 그렇다안타깝게도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드러나는 현실은 비참할만큼 잔인하다. 진상필을 통해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그 자리를 끝모를 허기와 공허가 대신한다. 환타지는 깨지는 순간 박제가 된다. 현실 정치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진상필같은 국회의원을 찾아볼 수 없다.


비극은 비루한 현실에 대한 각성을 통해 극대화된다. 위선으로 가득찬 국회와 정치인의 참상을 낱낱히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진상필의 맹활약은 한낯 픽션에 불과할 뿐이다. 기성 정치를 맹폭하는 드라마의 통렬함은 현실 정치에서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큰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정치 드라마이니만큼 기성 정치인들도 이 드라마를 모른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과연 이 드라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치의 '정치다움'을 갈망하는 국민들이 이 나라 정치인들을 향해 "진상필같은 국회의원 어디 없습니까?"라고 간절히 되묻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과연 알고 있을까? 


저 처절한 질문에 가슴이 꿈틀대는 정치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정치개혁이니, 부정부패 척결이니, 국민을 위한 정치니 따위의 허울좋은 수사보다 이 나라 정치의 저렴함과 자신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먼저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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