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방송이 나간지 하루가 지났지만 여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루 사이에 관련기사만 수십 건이 쏟아졌고,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 순위 상위에는 아직도 그의 이름이 올라있다. 온라인 게시판마다 관련 글들이 봇물터지듯 올라오는가 하면, 인터뷰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와 유튜브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시쳇말로 난리가 났다. 25일 JTBC '뉴스룸'에 깜짝 출연한 고 김광석의 아내 서해순씨 얘기다.
서씨가 갑자기 주목받게 된 건 김광석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파헤친 영화가 지난달 30일 개봉됐기 때문이었다. 이상호 기자, 아니 감독은 지난 20여년 동안 김광석의 죽음과 관련된 의혹을 파헤쳤고, 급기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 '김광석'을 만들었다. 이상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 김광석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광석의 죽음과 관련된 의혹 한가운데에 아내 서씨가 있다고 지목했다.
인터뷰 이후 서씨는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대중들은 이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최초 목격자이자 김광석의 죽음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던 아내 서씨에게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상호 감독은 보다 직설적이다. 서씨가 이 영화를 보고 소송을 걸어주기를 기대한다.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만큼 김광석의 죽음을 타살이라 확신한다는 뜻이다.
영화 '김광석'이 개봉되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김광석 타살 의혹에 집중됐다. 그러나 서씨는 뜻밖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비치지 않았다. 억울함을 하소연하거나 무고함을 주장할 법도 한데 서씨는 어찌된 일인지 침묵으로 일관하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9일 김광석의 음원 저작권을 상속받은 딸 서연양이 사망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김광석 타살 의혹에 이어 딸 서연양의 사망 사실까지 더해지자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서씨가 입을 연 것은 22일이었다. 이상호 감독이 김광석 유족을 대신해 서연양 사망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고 재수사를 요청한 다음날이었다. 서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살인자 취급을 받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려 한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서연양의 사망 사실을 시댁에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장애가 있는 서연이를 한번도 시댁에서 찾아 않았다"면서 "연락이 왔다면 딸의 상황을 말씀드렸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서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김광석의 죽음과 서연양의 사망을 둘러싸고 석연찮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씨가 '뉴스룸'에 출연한 건 점점 나빠지고 있는 여론을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김광석 타살 의혹을 정조준하고 있는 영화가 개봉한 데 이어 서연양 사망 사실까지 언론에 공개되자, 자신에게 쏠리고 있는 의혹들을 해명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필요가 있었고 생각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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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터뷰 이후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여론이 더욱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서씨의 해명은 설득력이 없었고, 일관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김광석의 죽음과 관련한 중요한 쟁점은 기억이 안 난다면서 유독 재정적인 부분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서씨의 모습은 의아스럽게 비쳐졌다. 이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발언과 태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과도한 몸짓, 심드렁한 표정과 말투 등 상식과 동떨어진 언행으로 빈축을 샀다. 급기야 인터뷰 이후 서씨는 대중들로부터 융탄폭격을 맞고 있는 중이다.
이날의 인터뷰 중 특히 섬뜩했던 부분은 중간 중간 서씨가 웃음을 보일 때였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이날은 웃음이 나올 수 없는, 아니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남편과 딸의 죽음과 관련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의혹을 진솔하게 해명하기 위한 시간 아닌가. 수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고 있는 생방송 뉴스 시간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서씨의 웃음은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한 행동이었다.
그런가 하면 서연양의 사망과 관련한 질문에 "장애우가 죽은 부분이라서 참 힘들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서글픔마저 들었다. 서씨가 부모의 입장이 아닌, 마치 제3자의 시각에서 말하고 있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터다. 서씨의 발언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건조하고 메말라 있는지를 말이다.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감정이입이 안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자기 아이의 죽음에 대해 "장애우가 죽은 부분"이라고 말하는 부모는, 내가 아는 한 없다.
물론 서씨의 인터뷰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심증만으로 한 개인의 인격과 영혼을 계량해서는 곤란하다. 논란과는 별개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방어할 권리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김광석과 서연양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을 서씨의 언행들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기저에는 이처럼 보편적 상식과 괴리된 서씨의 부적절한 언행들이 가로놓여 있다.
80년대와 90년대 초중반 대학을 다녔던 세대에게 김광석이리는 이름 석자는 아주 특별했다. 그는 젊은 청춘들의 객기를 치유해주는 '시인'이었고, 그의 노래는 삶의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주는 '청량제'였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감성과 페이소스로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로해주던 치료자였으며, 힘들 때마다 곁에 있어준 친구같은 존재였다. 삶이 복잡한 듯 보여도 작동하는 원리는 단순하다. 기쁘면 웃게 되고, 슬프면 울게 된다. 행복하면 미소를 짓고, 불쾌하면 오만상을 찌푸린다. 삶은 이처럼 조건반사의 연속이다. 김광석이 떠나던 날 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캄캄한 방 한 구석에서 나는 소주를 들이키며 '꺼이꺼이' 울었다.
김광석이 떠난 이후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한동안 의혹이 제기됐지만 애써 외면했다. 속절없이 떠난 그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의 넋두리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내가 틀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광석 타살 의혹과 서연양의 사망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은 검경의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의혹이, 의혹이 아닌 사실로 밝혀진다면 나는 다시 오열할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추억을 강탈당했다는 생각에 터져나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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