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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총파업 나서는 김태호 PD가 MBC에 건넨 일침

오마이뉴스


MBC노조가 '마침내' 총파업을 결정했다. 2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지난 24일부터 29일까지 6일간 전국 18개 지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재적인원 1785명 중 1682명이 투표에 참가해 1568명이 파업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투표율 95.7%에, 찬성률이 무려 93.2%다. 압도적인 찬성률은 MBC노조의 총파업 의지가 그만큼 뜨겁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MBC노조의 총파업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었다. 이미 9일 MBC 영상기자회가 기자들의 성향과 파업가담 여부, 충성도 등에 따라 등급을 매긴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반발해 제작거부에 돌입한 상태였고, 이후 편성PD와 드라마 PD, 예능PD, 시사제작국 PD와 기자, MBC 아나운서와 기자 등 300여명의 조합원이 제작거부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MBC노조는 언론 자유와 방송의 공정성을 무너뜨린 경영진 퇴진을 촉구하고 있는 상태다.

MBC노조가 전례없는 고강도 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한편, MBC 예능PD들이 지난 6월 발표한 성명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발표한 지 두 달이 넘은 성명서가 다시 주목받는 건 MBC 예능 간판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파업에 동참하면서 이 성명서를 다시 발표했기 때문이다. 앞서 6월22일 '무한도전' 김태호 PD를 포함한 47명의 예능PD들은 실명으로 낸 성명서를 통해 예능보다 웃긴 MBC의 부끄러운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화제가 되고 있는 성명서를 다시 읽어보니 이건 '성명서'가 아니라 한편의 신랄하고 절절한 풍자다. 자조 섞인 한탄이며, 고백이다. 성명서에는 눈물젖은 빵을 먹으면서도 태연히 웃음 코드를 만들어야 했던 MBC 예능PD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웃기는 방송 만들려고 예능PD가 되었는데 그거 만들라고 뽑아놓은 회사가 정작 웃기는 짓은 다 한다"는 예능PD들의 일침은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은 MBC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하긴, "알통 굵기가 정치적 신념을 좌우한다"는 내용이 메인뉴스에 보도되는 판국이니 안 웃길래야 안 웃길 수가 없다.

성명서는 경연진이 MBC의 언론 자유와 공정성을 어떻게 뭉갰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알고 보니 간단했다. "아무리 실력있는 출연자도 사장이 싫어하면 못 쓰게"만들고, "노래 한 곡, 자막 한 줄 까지 간섭"하고,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아무리 시청률을 잘 뽑아도 멀쩡히 하던 프로그램" 을 뺏으면 됐다. 세간에 떠돌던 MBC와 관련된 흉흉한 풍문 그대로다. 소신있게 일하던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공익시사 프로그램이 하루 아침에 폐지되고, 보도지침에 따라 방송 통제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었던 거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내용임에도 예능PD들이 직접 전하는 MBC의 실상은 일반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고 처참했다. MBC에서 일하려면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 검열하고, PD가 아니라 노예가" 돼야 한단다. "행여 끈끈해질까봐, 함께 손잡고 맞서 일어나 싸울까봐 경력직 PD들은 노동조합 가입도 못 하게 방해하며 누구 후배인지 언제부터 어떻게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는 후배들을 끝없이 늘려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봐야 했단다. 명색이  공영방송사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MBC의 몰골이 이 모양이다. 오죽하면 예능PD들이 MBC를 가리켜 "쪽 팔리는 이름 '엠빙신'"이라 칭했을까.


ⓒ 오마이뉴스

"웃긴 것 투성인데 도저히 웃을 수 없다. 함께 고민하던 동료들은 결국 'PD다운 일터'를 찾아 수없이 떠났다. 매일 예능 빰치게 웃기는 뉴스만 만드는 회사는 떠나는 동료들 등 뒤에는 '돈 때문에 나간다'며 웃기지도 않는 딱지를 붙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웃음을 만들어야 한다. 웃기기 정말 힘들다. 웃기는 짓은 회사가 다 한다. 가장 웃기는 건 이 모든 일에 앞장섰던 김장겸이 아직도 사장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라. 웃기는 건 우리 예능PD들의 몫이다."

예능PD들은 작심하고 말한다. 웃긴데 웃을 수 없다고. 이 기막힌 '역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MBC가 우스워(?)지게 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0년 김재철 사장이 부임 이후 MBC는 우리가 알고 있던 'MBC'가 아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벌어진 MBC의 불공정 방송 사례들은 일일히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국정원 사건, 세월호 참사, 국정교과서 , 한일위안부 협정,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에서 MBC는 관련 내용을 축소·왜곡하는 불공정·편파 방송을 일삼았다. 그런가 하면 말 안 듣는 직원들을 한직으로 내몰거나 쫓아내고, 마이크를 빼앗거나 펜을 놓게 만들기도 했다.

지난 2월 들어선 현 김장겸 사장 체제에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임 이후 김장겸 사장은, 전임자들이 해왔던 방식 그대로, 보도통제와 검열을 일삼으며 언론 자유와 독립성을 침해하는데 앞장서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탄핵'과 <MBC 스페셜> '6월항쟁 30주년'의 방송이 불방된 것도, 해당 PD에게 부당한 징계가 내려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웃픈' 코미디를 총괄·관리하고 있는 김장겸 사장은 외려 당당하다. MBC 총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면서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방식에 밀려 경연진이 사퇴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대통령과 여당이 압박하고 언론노조가 행동한다고 해서 합법적으로 선임된 공영방송의 경영진이 물러난다면, 이것이야말로 헌법과 방송법에서 규정한 언론 자유와 방송의 독립이라는 가치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어떤가. "웃긴데 웃을 수 없다"던 예능PD들의 일침이 가슴으로, 피부로 와닿지 않는가. 공영방송 MBC의 언론 자유와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목받는 당사자가 '언론 자유'와 '방송 독립'을 천연덕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웃긴다. 정말 '웃기고' 있다. 보는 사람의 말문을 탁 막히게 만드는 기막힌 코미디다. 헌데 이상한 건, 웃기기는 한데 기분은 아주 나쁘다는 거다. 의당 웃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하지만 이 코미디는 웃을수록 화가 치민다. 이 볼썽사나운 코미디가 하루 빨리 끝나야 하는 이유일 터다.

코미디는 코미디다워야 한다. 뉴스는 뉴스다워야 하며, 시사프로그램은 시사프로그램다워야 한다. 신뢰받던 공영방송 MBC가 망가진 건 본분을 잊으면서다. 기자와 아나운서가 펜대와 마이크를 놓고 브런치 특강을 듣고 다녀서는, PD가 스케이트장 관리를 하고 있어서는, 할 말 하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서는 MBC는 절대로 정상화될 수 없다. 방송에도 '품격'이라는 것이 있다. 알통의 크기가 정치성향을 좌우한다는, 별 시답잖은 내용이 메인뉴스에 방송되는 어이 없는 코미디는 정말이지 이제는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언론 자유와 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 총파업에 나서는 MBC노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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