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

만나면 좋은 친구? MBC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 오마이뉴스


최윤영, 서현진, 문지애, 나경은, 최일구, 방현주, 오상진, 김정근, 김경화, 최현정, 박혜진, 박소현. 친숙하고 낯익은 이 얼굴들을 이제는 더 이상 MBC에서 찾아볼 수 없다.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며 지난 2012년 무려 170일 간에 걸친 장기파업에 나섰던 아나운서들은 파업종료 이후 사측의 눈밖에 나는 신세가 됐다.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사측은 아나운서들의 방송 복귀를 가로막았다. 방송인으로서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그들은 MBC의 간판 아나운서들이었다. 뉴스에서, 교양·시사프로그램에서 다양하고 생생한 정보들로 시청자들과 함께 '동거동락'한 전도유망한 아나운서들이었다. 그러나 파업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방송 현장에 있어야 할 그들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몇개월 씩 대기 발령을 받아야만 했다. '브런치 만들기', '요가 배우기' 등의 교양 강좌를 들으며 시간을 '소비'해야 했는가 하면, 방송과 연관이 없는 부서로 전보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부서이동 없이 아나운서국에 남아있던 이들도 방송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파업에 따른 '괘씸죄'가 적용된 탓이었다.

당시 MBC는 김재철 사장 체제였다. '쪼인트 사장'으로 잘 알려진 김재철 사장은 공영방송으로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MBC를 망친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실제 MBC는 김재철 사장 취임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갈릴 만큼 양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방송 신뢰도 1위를 달리며 '만나면 좋은 친구'로 각인됐던 MBC는 김재철 사장 이후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취임 할 때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바타'라 비판받던 그는 노골적인 정권편들기로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달고 살았다.

김재철 사장 이후 MBC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던 걸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내부 인사다. 김재철 사장은 방송 현장에 자신의 측근을 심기 위해 보도국의 내부인사개편을 단행했다. 일선의 기자와 PD, 방송 진행자 중 정권이나 사회 비판적 인식이 있는 인사들을 선별해 보도국 밖으로 전보조치하거나 퇴출시켜 버렸다. 이 과정에서 시사고발프로그램 'PD수첩' 제작진이 업무와 상관없는 곳으로 발령이 났고, MBC 라디오를 진행하던 김미화씨 역시 같은 이유로 방송에서 하차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방송프로그램은 결방시키거나 폐지시키기도 했다. 4대강 사업 등 민감한 내용이 담긴 'PD수첩'이 몇차례 결방되는 사태가 일어나는가 하면, '쌍용자동차' 관련 보도는 노조측의 일방적 입장을 전달한 우려가 있다며 방송이 불발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공익적 내용으로 주목을 받던 시사프로그램 <뉴스 후>와 <김혜수의 M>이 폐지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였지만 정권에 부담이 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방송 폐지의 실질적 이유였다.

시작부터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던 김재철 사장은 이처럼 부당한 인사와 공정성 문제로 MBC노조 측과 큰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이 갈등이 지난 2012년 MBC노조가 170일 간의 최장기 파업을 이어간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동한다. 아나운서들도 그때 파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김재철 사장 부임 이후 부당한 인사조치가 이어지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역할이 크게 위축·축소되는 등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이 크게 위협받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분연히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 무려 170일간 아나운서들은 동료들과 함께 공영방송인 MBC의 정상화를 위해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추락할대로 추락한 MBC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고 외부의 압력에 맞서 당당하게 싸웠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들의 수고와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외려 파업 종료 이후, 이를 갈던 김재철 사장의 서슬 퍼런 복수극에 벼랑 끝으로 내몰려는 곤궁한 처지가 됐다.

<PD저널>에 따르면, 파업 종료 이후 사측은 서울에서만 69명, 지역에서 51명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 과정에서 정영하 노조위원장과 최승호 PD 등 6명이 해고됐고, 38명이 정직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지역에서도 노조집행부 32명이 정직을 받는 칼바람이 불었다. 파업에 동참했던 아나운서들도 김재철발 '피의 숙청'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릴없이 대기발령, 교양수업, 인사전보조치를 받아야 했고, 그러는 사이 그들의 자리는 새롭게 투입된 새내기 아나운서들의 차지가 됐다.


ⓒ 오마이뉴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에 따랐을 뿐인데. 방송인으로서의 소임을 잊지않았던 것 뿐인데,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기 위해서였을 뿐인데 그들은 사측의 처절한 보복성 징계에 휘둘리며 파압에 동참한 대가를 톡톡히 치뤄야만 했다. 젊은 날의 꿈과 땀이 깃들어있는 MBC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나가는 길에 보니 회사가 새삼스레 참 컸다. 미우나 고우나 매일같이 이 커다란 건물에서 울고 웃었던 시간이 끝났다. 이제는 기억하기 싫은 일들보다는 이곳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영원히 기억해야지. 변해갈 조직을 응원하며. 내일부터의 삶이 아직은 도저히 실감이 안 가지만, 인생이 어떻게 풀려가든 행복을 찾아야겠다는 약속을 한다."

'MBC 뉴스데스크'와 'MBC 뉴스투데이' 의 앵커를 맡았던 김소영 MBC 아나운서가 '애증'어린 MBC를 결국 떠나는 모양이다. 아나운서들의 잇따른 퇴사 이후 김소영 아나운서는 MBC의 간판 아나운서로 자리잡았지만, 새내기 시절이던 지난 2012년 파업에 동참했던 것이 결국 족쇄가 된 듯 보인다.

<허프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김소영 아나운서는 지난 2016년 10월 '뉴스투데이'에서 하차한 이후 방송이 끊겼다 한다. 이후 방송 섭외가 이어졌지만 제작진 미팅까지 끝난 프로그램이 엎어지기 일쑤였단다. 그렇게 10개월을 버텼지만 철저히 방송에서 배제됐고, 급기야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던 방송사였던 MBC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한다. 선배 아나운서들이 겪었던 전철을 김소영 아나운서 역시 걷게  된 것이다.

김소영 아나운서의 퇴사는 공영방송 MBC의 불편한 현주소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의 퇴사는 김재철 사장 이후 김종국·안광한 사장을 거쳐 현 김장겸 사장에 이르기까지 MBC의 방송환경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자신들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을 탄압하고 규제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MBC는 파업에 참여한 아나운서와 기자, PD 등을 '콕' 찝어 방송에서 소외시키고 배제시켜왔던 것이다.

한편으로, 김소영 아나운서의 퇴사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취임 일성으로 천명한 이효성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의 행보를 주목하게 만든다. 지난 1일 취임사에서 이 위원장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은 방송이 환경 감시 등과 같은 방송 본연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조건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방송만이 방송법에 규정된 방송의 공적 책임을 다하고, 공정성과 공익성에 충실할 수 있다"며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영방송 정상화'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방송의 현실은 이처럼 졸렬하고 암울하다. 이 위원장의 행보가 중요해진 건 그래서다. 김소영 아나운서의 퇴사는 '공영방송 정상화' 약속을 내건 이 위원장의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졌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위한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아나운서와 기자, PD의 밥줄을 끊어버리는 이 야만의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그들이 겪었을 좌절과 아픔, 한숨과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자신들을 내친 방송국을 여전히 사랑하는 바보들에게 웃음을 돌려줘야 한다. 몸담았던 조직의 변화를 기대하는 그들의 바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결단코, 그래야 한다.



♡♡ 바람 언덕의 정치 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