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과 검찰의 영장 청구로 구속될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 한 사람은 힘겨운 투병의 와중에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부인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얄궃은 인생만큼이나 걸어온 길이 극명하게 나뉘는 두 사람, 이용마 MBC 해직 기자와 김재철 전 MBC 사장이다.
이용마 기자의 항암 투병 사실이 알려진 건 지난해 9월 무렵이었다. 복막암. 이름도 생소한 희귀암이다.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마와 사투 중인 이용마 기자는 지난 2012년 MBC 파업 당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이었다. 170일에 이르는 최장기 파업을 이끌던 그는 파업 종료 직후 바로 해고됐다. '괘씸하게도' 파업을 주도하며 사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사측을 상대로 한 해고무효소송에서 1심과 2심은 모두 이용마 기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제는 애시당초 MBC에게 그를 복직시킬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 MBC는 대법원 판결까지 지켜보겠다며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이용마 기자는 5년 7개월째 해직 상태에 머물고 있다.
지리한 법정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그는 건강마저 잃었다. 어찌 아니 그럴 텐가. 이용마 기자는 공영방송의 몰락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당사자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장기 파업, 사측의 보복성 해직, 그리고 그 이후의 힘겨운 법정 다툼의 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무력감과 참담함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을 터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따라 아픈 법. 마음의 병이 결국 몸까지 집어삼킨 것이리라.
김재철 전 사장은 이용마 기자의 삶을 송두리채 바꿔놓은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MBC는 김재철 부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회자될 만큼 그가 MBC에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재임하는 3년 여 동안 MBC는 방송의 공정성을 무시한 정권 편향적 방송을 내보내기 일쑤였고, 급기야 '정권의 혓바닥'이라는 멸시와 조롱까지 받아야 했다. 한때 신뢰도 1위를 달리며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MBC의 몰락에 김재철 전 사장이 혁혁한(?) 공을 세운 셈이다.
김재철 전 사장이 부임했던 그 기간은 MBC에서 '저널리즘'이 실종된 시기와 정확하게 맞물린다. MB의 아바타로 불리던 그는 취임 이후 정권 비판적인 시사프로그램을 잇따라 폐지시키는가 하면, MBC의 대표 시사프로그램이었던 'PD수첩'의 제작진들을 전격 교체하는 등 방송제작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방송국 내에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비판의식이 강한 PD와 기자들을 보도국 밖으로 발령하는 대대적인 내부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지난 2012년 MBC노조는 '김재철 사장 퇴진'과 '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위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김재철 전 사장의 독단과 전횡에 대한 내부의 격렬한 반발과 저항이 분출된 것이다. 이후의 진행 과정은 모두가 안다. 총파업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김재철 전 사장은 여전히 건재했고, 방송의 공정성 또한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돼 갔다. 노조의 장기 파업에 이를 갈던 김재철 전 사장이 '피의 숙청'을 단행하면서부터다. 그는 파업 주동자들을 '콕' 찝어 전격 해고시키는가 하면, PD와 기자, 아나운서들을 드라마 세트장 관리, 사내 스케이트장 관리, 신사옥 건설이나 영업 관리 등 엉뚱한 부서로 강제 전보시키기도 했다. 이용마 기자 역시 이때 해고를 당했다. 그것도 누구보다 가장 먼저.
검찰이 7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업무방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김재철 전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앞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는 김재철 전 사장이 취임하기 직전인 지난 2010년 2월 국정원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 등 2건의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공개된 문건에는 간부진 인적쇄신·편파프로 퇴출(1단계), 노조
무력화·조직개편으로 체질변화 유도(2단계), 소유구조 개편 논의로 언론 선진화 동참(3단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은 대부분 현실화 됐다. 이는 김재철 전 사장이 국정원의 지시대로 움직였다는 방증이다 .
그러나 김재철 전 사장은 "제 목숨을 걸고 MBC는 장악될 수도, 장악할 수도 없는 회사"라며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목숨 걸기 참 쉽다. 그는 이번에도 또 다시 자신의 목숨을 내건다. 취임 직후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맞서 "공정방송 하겠습니다. 당당히 권력과 맞서겠습니다. 남자의 약속은 문서보다 강합니다. 정권과 방문진에 맞서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원들이 저를 한강에 돌을 매달아 버리세요"라고 되받아치던 그였다.
김재철 전 사장은 자신이 2010년 3월 저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이용마 기자의 '목숨'과 김재철 사장이 내걸고 있는 '목숨'의 의미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보편적 상식과 원칙, 기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힘뜬 싸움을 해왔던 이용마 기자의 의기 앞에서, 두번씩이나 목숨을 운운하는 김재철 전 사장의 허세와 허풍은 지극히 초라하고 궁색해 보일 뿐이다.
이용마 기자는 얼마 전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지금까지 MBC뉴스 이용마입니다>를 출판했다. 관련 인터뷰에서 그의 최근 근황을 엿볼 수 있었다. 1년이 넘는 투병 생활은 건강하던 그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듯 했다. 웃는 모습이 참 해맑았던 이용마 기자는 병마와 힘겹게 씨름하는 동안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이제 겨우 마른 아홉. 세상을 등지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과 곁에서 묵묵히 힘이 되어 준 사랑하는 아내도 있다.
이용마 기자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디 힘내시라. 그리고 '툴툴' 털고 일어나시라. 공영방송을 파탄낸 자들이 죄값을 치르는 광경은 지켜봐야 하지 않겠는가. 무도하고 완악하기만 했던 세상이 달라지는 모습을 가족들과, 동료들과 함께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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