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표가 어제 '조기 선거대책위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소식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칵 뒤집혔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함께 분당 위기론이 고조되자 문재인 대표가 비주류의 요구를 부분 수용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문재인 대표의 의사가 잘못 전해진 해프닝으로 밝혀졌지만, 이로 인해 당내
분위기는 혼란이 더욱 가중된 모습이다. 주류 측은 갑작스런 소식에 발칵 뒤집혔고, 비주류 측은 사퇴 이외에는 답이 없다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조건부 '조기 선거대책위 카드'를 꺼내든
문재인 대표의 결단에는 어떻게든 분당은 막아야 한다는 고뇌가 담겨있다. 공당을 이끌고 있는 대표로서 당이
극심한 분열에 휩싸여 있고 의원들의 연쇄 탈당과 그로 인한 분당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와전된
것이든 아니든 문재인 대표의 결단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문재인 대표의 발언이
이 시점에서 적절하고 유효한 전략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나 문재인 대표의
'조기 선거대책위 카드'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 한국경제
첫째, 문재인 대표의 제안을 비주류가 받아들일 리가 없다. 비주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권 확보와 당내 기득권 지키기에 맞춰져 있다. 그들이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거듭 촉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가 '조기 선거대책위 카드'를 제안했다는 소식에 '너무 늦었다'며 거부의사를 보인
비주류의 대응에는 문재인 대표 채제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반 문재인, 반노, 비노들의 목표가 문재인 대표의 사퇴인 이상 어떤 제안을 한다 해도 그들은 끊임없이 당을 흔들 것이다.
둘째, 문재인 대표의 제안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과 쇄신을 요구하는 지지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일이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온라인 입당 당원이 7만명을 넘어서며 연일 화제가 되고 있고, 당지지율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이는 야권분열을 우려한 야권성향의 지지자들이 결집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들이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위기에 빠진 문재인 대표 체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표의 제안은 당내 혁신을 갈망하는 당원들의 바람에 찬물을 뿌리는 행위다.
셋째, 문재인 대표의 제안을 설령 비주류들이 수용한다 해도 국민들이 용납치 않을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토했던 이유는 그들이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유린하고 있는 집권여당의 전횡과 폭주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야당의 모습에 진저리가 나있기 때문이다. 새누리
2중대라는 치욕스런 조롱의 이면에는 기득권에 안주하고,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없던
새정치민주연합의 구태와 관성이 자리잡고 있다. 분당을 막기 위한 '조기
선거대책위 카드'는 (혁신안을 통과할 지는 의문이지만)
그들과 다시 힘을 합쳐 총선을 치르겠다는 의미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다. 국민들은 절대로 힘을 실어주지 않을 것이다.
ⓒ 뉴스 1
넷째, 비주류와의 결별은 당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김한길 체제의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합당해서 탄생한 정당이다. 김한길 체제의 민주당은 중도층을 공략하겠다는 취지 아래 당의 노선을 우클릭 했고, 노선과 철학이
비슷한 안철수 의원과의 합당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보다 선명한 노선과 강력한 목소리를 가진 야당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누가 더 보수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외피는 동일한 새누리당과의 노선 경쟁은 우리나라의 정치 여건을 고려하면 승산없는 게임일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도약하려면 대다수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분명한 노선과 철학을 가진 정당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비주류와의 결별은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다섯째, 같은 맥락으로 '조기 선거대책위 카드'는 비주류와의 문제를 매듭지은 이후에 거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변화와
개혁이며, 혁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창당에 준하는 인적 쇄신과 노선
정리가 필수적이다. 가치관과 철학, 노선의 정리없는 단합은 말 그대로
봉합만을 위한 봉합일 뿐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게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야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일이다.
설령 그것이 분당으로 이어진다 해도 선명한 당의 정체성과 색깔을 찾을 수 있다면, 팔 다리를 자르는 한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결행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의 요구하는 혁신의 당위다.
ⓒ 민중의소리
문재인
대표는 어제 자신이 제시한 '조기 선거대책위 카드'가 큰 논란에 휩싸이자 오후 늦게 '조건부 수용'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가 "선대위를 조기에 출범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에 공감한다"고 발언한 것이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비치자 "추가 탈당을 막고 '공천혁신안'을 실천하는 것을 전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라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발언의
진의가 와전된 것이든, 아니면 문재인 대표가 뒤늦은
진화에 나선 것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변화와 혁신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다. 혁신을 위한다면서
혁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행보를 보인다면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실기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문재인 대표는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단호하고 결연하게 혁신안을 추진해야 한다. 당안팎의 반발과 흔들기에 좌고우면한다면 제1야당의 혁신과 개혁을 바라는 국민 여망은 다시 한번
꺾이게 되고, 우리정치는 그만큼 퇴보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적전분열'을 죄악시하는 통념을 전복시킬 필요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직면한 위기는 그들이 단합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분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지금은 봉합과 단합을 거론할 때가 아니라 과감히 분열을 말해야 한다. 혁신이란 거듭남을 의미한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낡은 것들과 단호히 결별하는 것이 먼저다. 기억해야 할 것은 세포분열이 건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선결조건이라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표는 뒤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고 반드시 혁신에 성공해야만 한다. 혁신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운명이며,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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