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필자는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부의 '증세없는 복지론'을 비판한 저의를 살펴보는 글을 포스팅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어차피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처럼 대중들에게 착시현상을 심어주면서 내년 총선을 대비하자는 것이 그 하나요, 이 기회에 증세를 공론화시켜 정치적 부담이었던 '증세없는 복지론'의 멍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그 둘이요, 나아가 눈엣가시같은 보편적 복지를 원래대로 손질하는 것이 그들의 바라는 궁극적인 속내일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진심은 이내 드러나는 법입니다. 불과 며칠 전에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정치인이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하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던 김무성 대표가 어제(5일) 감추고 있던 속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역시나 필자가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개최한 제38회 전국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경제를 살리는 정치'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복지수준의 향상은 국민의 도덕적 해이가 오지 않을 정도로 해야 한다"면서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지고, 나태가 만연해지면 부정부패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어느날 갑자기 '증세없는 복지론'의 비현실성을 거론했던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복지수준의 향상은 국민의 도덕적 해이가 오지 않을 정도로 해야 한다",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 이 두 문장 속에 그의 진심이 모조리 담겨 있습니다. 단 두개의 문장만으로 복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응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의 주장은 그 자체로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백해무익이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입니다. 네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복지과잉으로 가면"이라는 가정부터가 틀렸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이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5일 OECD와 관련 당국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SOCX) 비율은 10.4%에 불과합니다. OECD 28개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인 28위에 해당하는 초라한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과잉을 거론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입니다.
둘째,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지고, 나태해지면 부정부패가 필연적으로 따라 온다"는 주장의 객관적 근거가 빈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리스의 경우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그가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한 이유는 복지과잉 때문이 아닙니다. 당시 그리스는 단순히 한 두개의 원인만으로 단정짓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복지과잉 때문에 그리스가 파산했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대중 선동을 위해 이만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지과잉-국가부도'라는 등식은 '정부비판-종북(빨갱이)'라는 등식만큼 간단하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프로파간다입니다.
그리스 사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산업의 구조적 병폐, EU 가입에 따른 통화정책의 실패, 민간에 대한 과잉 투자, 유럽 최고수준의 지하경제, 정치인의 부정부패, 국가재정상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보장 비용 등을 설명해야 하는 골치아픈 과정이 필요합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게는 그 지난한 과정을 일일이 설명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복지과잉-국가부도'라는 초간단 등식이 정치적 이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훨씬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효율적입니다.
셋째, 김무성 대표의 주장은 최고수준의 국민복지가 실현되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덴마크 등 북유럽의 존재 앞에서 완전히 무력해지고 맙니다. 김무성 대표의 주장이 맞다면 복지과잉이 수십년 째 이루어지고 있는 북유럽의 국민들은 모두 나태해지고 게을러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김무성 대표의 주장을 정치권에 적용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그의 발언이 우리나라 정치인의 비루한 행태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과도하게 부여된 특권때문에 정치인이 나태해졌고, 필연적으로 부정부패가 늘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김무성 대표에게 묻겠습니다. "지금 복지과잉의 혜택을 국민이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치인이 보고 있습니까?"
넷째,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주권을 가진 국민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의 발언을 보면 그가 국민을 교화의 대상이자 계몽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국민을 가르쳐야 할 우민으로 여기고 있는 대단히 교만하고 오만한 인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은 지도의 대상도 그렇다고 계몽의 대상도 아닙니다. 그 자체로 주권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일 뿐이죠.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를 향해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김무성 대표의 인식은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흔히 나타나는 선민의식의 발로입니다.
계몽주의 시대에서나 통용될 법한 인식을 가진 자들이 정치권에 수두룩하다는 건 우리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방증일 뿐입니다. 게다가 김무성 대표의 경우처럼 잘못된 사례를 가지고 국민을 계몽하려는 태도는 위험천만할 뿐만 아니라 차라리 사회악에 가깝습니다.
김무성 대표가 복지와 관련해 계속해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처해있는 현실의 다급함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수권을 위해 내세웠던 수많은 복지공약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묘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럴 때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누구처럼 얼굴에 철판을 깔고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누구처럼 사실을 호도해서라도 판을 뒤흔들거나.
그런 면에서 김무성 대표의 행보는 주목할만 합니다. 그 방법의 잘잘못을 떠나 적어도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럴수록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겠지만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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