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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KBS 보도 개입 당사자가 당 대표? 기가 막혀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의 신임 대표로 선출됐다. 지난 8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4차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는 비박계 단일후보였던 주호영 의원을 큰 표 차이로 물리쳤다. 그는 선거인단 투표와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한 결과 총4만4421표(득표율 40.9%)를 얻어 총 3만1946표(29.4%)를 얻는데 그친 주호영 의원을 여유있게 이겼다.

이 대표가 대표에 선출되자 대부분의 언론들이 그의 정치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엮은 기사를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호남출신 첫 새누리당 대표'라는 상징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모양새다. 이 대표가 망국적 지역주의를 깨트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대표는 새누리당의 무덤이나 다름 없는 호남지역(전남 순천)에서 두번씩이나 연거푸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로 인해 지역주의의 벽이 허물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그 노력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기실 호남출신으로 새누리당 대표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대표의 승리는 '사건'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영남패권주의가 지독하게 뿌리내려 있는 정당에서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해 대표의 반열에 오르는 뚝심을 연출해 냈다. 그의 성공담에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성공 신화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선망해 온 담론이 아닌가.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낭만을 덜어내고 현실을 마주보면 이 대표 취임은 갖가지 문제들로 점철되어 있다. 말단 사무처 간사에서 출발해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당 대표에 오른 이 대표에게 축하와 찬사를 보내고, 성공담에 취해있기에는 그의 대표 취임이 갖는 의미가 아주 고약하다는 뜻이다.



ⓒ 오마이뉴스



자잘한 것은 제껴두고 눈여겨봐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새누리당이 도로 '친박당', '박근혜당'이 됐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이 대표 외에도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친박 최고위원이 대거 선출되며 '친박 집단지도체제'가 완성됐다. 비박계인 강석호 의원을 제외하면 최고위원들 모두가 친박계다. 친박 패권주의를 심판했던 총선 민의는 증발되어 버렸고, 새누리당은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친박당'으로 전열을 정비했다.

이로 인해 새로운 당·청관계를 바랬던 당안팎의 기대는 한여름 밤의 꿈이 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의 핵심참모 출신 당 대표에 친박 일색의 지도부가 의미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친정체제가 구축됐다는 사실 하나로 모아진다. 가뜩이나 말이 많았던 수직적 당·청관계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박 대통령은 후반기 국정운영의 가장 확실한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전당대회 결과는 이 대표의 승리이면서 동시에 박 대통령의 승리다.

문제는 전당대회 결과로 인해 새누리당의 혁신과 변화를 기대하기가 난망해졌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이 패권과 기득권에 집착하는 수구정당으로 전락한 데에는 친박세력의 전횡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드러난 친박 패권주의는 권력을 항한 저들의 천박한 욕망을 압축해서 보여준 결정판이었다.

그런데 당내에 만연해 있는 권위주의와 패권주의적 정당 문화를 혁신적으로 개혁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새누리당은 도로 '친박당'이 되어 버렸다. 가속 패달을 밟아도 모자랄 판에 황당하게도 후진기어를 넣은 셈이다. 이는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의 명백한 퇴보를 의미한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이 대표 취임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실 따로 있다. 이 대표의 성공 스토리에 가려져 언론이 놓치고 있지만 그는 현재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그는 KBS에 외압을 행사해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권력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고 사회의 치부를 밝혀내는 일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나라 언론은 권력에 종속되어 '기레기'라는 치욕스런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권위주의적 독재시대에나 횡횡했던 '권언유착'이 박근혜 정부 하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탓이다.


얼마 전 세상을 시끌벅쩍하게 만들었던 'KBS 세월호 보도 개입' 논란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 대표가 깊숙히 개입해 있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임할 당시 KBS에 대한 이 대표의 압력은 아주 노골적이었다. 그는 욕설까지 동반하며 KBS의 보도 내용에 불만을 내비쳤고, 방송 내용을 수정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언론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사실은 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그는 현재 새누리당의 대표가 되어 있다. 언론을 권력을 위한 도구쯤으로 여기는 문제의 인사가 집권여당의 대표가 된 것이다.

문제는 그를 당 대표로 만든 사람들이 새누리당 당원들과 새누리당 지지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언론관에 휩싸여 있는 이 대표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면죄부를 부여했다. 새누리당의 편향된 언론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독립과 자유, 공정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그리고 바로 여기에 간과해서는 안되는 치명적인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새누리당은 이 대표 체제로 내년 대선을 치르게 된다. 언론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 대표와 이런 문제적 인물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준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시대착오적 언론관에 미루어 본다면, 내년 대선 역시 극도로 혼탁하고 무질서한 가운데 치러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대표의 취임이 고약한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난장판이나 다름이 없었던 지난 대선의 악몽을 떠올려 보니 벌써부터 눈 앞이 캄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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