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쯤 미국 영화배우 맷 데이먼과 손석희 앵커 사이의 인터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13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는 영화와 삶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담담하게 풀어내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진지하면서도 위트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했던 그날의 인터뷰 내용 중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정치에 대한 그의 소신있는 발언이었다.
그는 "자국 정치에 관심을 쏟는 일은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정치적 발언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정치에 대한 소신 발언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데 괜찮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대중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할 자리에 나와 있는 만큼, 문제될 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겠죠"라고 말해 대중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
맷 데이먼의 인터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국내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그의 발언이 화제가 된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경직되어 있다는 의미다.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일신상의 제약과 압력이 뒤따를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맷 데이먼이 우리나라의 영화배우였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맷 데이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당당히 밝힌 한 남자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오마이뉴스
방송인 김제동씨는 얼마 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소신 발언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그가 지금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 5일 경북 성주군청 앞 광장에서 있었던 김제동씨의 사드 배치 반대 연설에 성주군민들과 네티즌들이 뜨거운 환호와 성원을 보내자 새누리당과 종편이 발끈하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것이다.
새누리당은 김제동씨의 사드 배치 연설을 '선동'이라 규정하고 맹비난했다. 새누리당의 지상욱 대변인은 7일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의 중국 방문을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하는 와중에 "일부 연예인 등이 직접 성주에 가서 대통령 비방에 열을 올리며 노골적인 선동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김제동씨의 성주 연설을 문제삼았다.
하태경 의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아예 김제동씨의 방송 퇴출까지 거론했다. 그는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주 방문 김제동 '대통령도 외부세력', 요즘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외국인이 뽑는 모양이죠? 이토록 지독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공중파 방송의 진행자를 맡는 건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며 김제동씨의 방송 퇴출을 노골적으로 거론했다.
편파 왜곡 방송의 메카 종편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김제동씨의 성주 연설을 악마의 편집을 통해 왜곡 보도했다. 종편은 김제동씨가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 헌법 조항에 의거에 해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을 비판한 내용은 잘라낸 채, "대통령도 외부세력"이라는 김제동씨의 정부 비판 내용만 집중 보도하며 그를 선동꾼으로 매도했다.
그러나 이날 김제동씨는 하태경 의원과 종편의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왜곡과는 달리 국민의 권리와 주권을 적시한 헌법 조항을 일일히 열거한 뒤 정부와 종편이 만들어 낸 '외부세력' 프레임을 반박해 나갔을 뿐이다. 김제동씨는 "주민등록이 성주로 되어있지 않는 사람이 외부세력이라고 한다면 대통령, 국무총리, 국방부장관도 외부세력이 된다"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의 일침은 정부와 종편이 성주 집회를 '외부세력'에 의한 불순집회로 몰고가는 것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본디 선동은 조작이나 왜곡, 과장을 통해 남을 부추겨 집단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김제동씨의 성주 연설은 일체의 거짓과 왜곡이 없는 팩트에 근거한 발언이었다. 김제동씨의 발언에서 헌법과 법률에 저촉되거나 위배되는 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사실의 왜곡과 조작 역시 전혀 없었다. 선동이라 함은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종편이 날조한 'NLL 논란'처럼 사실관계를 악의적으로 조작해 국민을 호도하는 저열한 행태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김제동씨의 연설이 절대로 선동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김제동씨는 사드 배치의 문제점과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외부세력'이라 매도하는 정부의 행태를 논리적으로 비판했을 뿐 아니라, 대안을 달라는 대통령의 주문에 해법까지 제시하는 기지를 선보였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에 의거해 개인의 소신을 표현한 김제동씨는 새누리당과 종편에 의해 선동꾼으로 매도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송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강한 압력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 미디어투데이
맷 데이먼과 김제동.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과 가치, 철학에 따라 정치적 소신을 밝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직면한 상황은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린다. 이 장면 앞에 '맷 데이먼이 대한민국 영화배우였다면' 이라는 가정은 지극히 초라하고 무의미해 진다.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이 고작 이 모양 이 정도 밖에는 안 된다.
김제동씨의 성주 연설은 대중들로부터 근래에 보기 드문 명연설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대 현안을 꽤뚫는 안목,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판의식, 강약을 조절하며 대중과 호흡하는 소통의식, 자신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전달하는 능력, 여기에 더해 원고도 없이 헌법조항을 세세히 나열해 가며 국민의 권리와 정치인의 의무를 설파하는 깊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설은 대중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김제동씨는 바로 그 때문에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중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의미다. 2016년의 대한민국은 이처럼 개인의 소신을 문제 삼고, 신념과 철학에 불온 딱지를 붙인다. 정부정책에 반대하고 대통령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주저없이 '종북, 빨갱이'란 낙인을 찍으며,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보다 우위에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국정을 운영해 나간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다.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느냐 아니냐는 한 나라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이자 기준이다. 그런 면에서 김제동씨가 직면해 있는 상황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이 얼마나 저급한지, 이 나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겪고 있는 (혹은 앞으로 겪게 될) 수난은 한 개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 김제동씨의 위기는 곧 이 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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