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하나 살짝 뽑는
것"
박근혜 정부가 지난 2013년 8월 세법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이를 주도했던 정부 측 인사인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내뱉은 발언이다. 당시 이 발언으로 그는 야당과
시민사회로부터 뭇매를 맞아야만 했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바뀐 세법개정안에 의해 서민과 중산층의 세부담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시민사회는 거세게 저항했다. 그러자 시민들의 조세저항정서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정부는 애초에 설계된 중산층의 기준을 3450만원에서 닷새 만에
5500만원으로 서둘러 수정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세법개정안이
얼마나 졸속으로 추진되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바뀐
세법개정안으로 단지 시민들의 깃털이 하나 뽑혔을 뿐인데, 시민사회는 연말정산을 앞두고 왜 손톱이 뽑힌 것 같은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정부는 왜 황급히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 성난 민심을 수습하려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 직장인들에게 '13월의 보너스'였던 연말결산이 졸지에
'13월의 공포'로 둔갑하는 이 웃지 못할 촌극이야말로 우리사회의 미성숙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의
핵심은 기존의 소득공제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세액공제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기존의 소득공제가 많이 내고 많이 돌려받는 데 반해, 세액공제는 적게
내고 적게 받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2013년 말 박근혜 정부가 시민들의
조세저항에도 불구하고 세법개정안을 밀어붙인 것은 '증세'가 목적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시민사회의 조세저항을 의식해 직접 증세의 방식 대신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부담을 지우게 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세액공제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이 모든 논란의 발단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내세운 '증세없는 복지론'에 있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
"증세는 절대로 없다", "증세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나왔으니 정부의 입장에서는 증세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부족한 세수는 확보할 수 있는 신통방통한 방법들이 필요했다.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세액공제와 무려 2000원이나 한꺼번에 오른 담뱃세,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 등이 모두 이를 위해 탄생한 묘책이었다. 정부가 직접증세가 아닌 간접증세의
우회로를 택했으니 증세가 아니라 우길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이 마련된 셈이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직접증세의 방식을 피하고 간접증세의 방식으로 잔머리를 쓰는 것은 결국 증세에 대한 시민사회의 화학적 거부반응을 의식한 결과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이를 증세가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국민은 없다. 정부가 시민사회의 거센 비난과 저항에 직면해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거짓말과 말바꾸기에서 기인한다. 없는 사실도 있는 것처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꾸며서라도 어떻게든 집권만 하면 된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그릇된 야욕이 시민사회의 격렬한 저항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두쪽이 나도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부족한 세수를 위해서
증세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증세의 불가피성에 대해, 그리고 증세의 대상과 폭에 대해 이제라도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부자감세, 서민증세의 방식을 고수하는 한 시민사회의 조세저항은
점점 더 강렬해지고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런가 하면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세액공제의 입법취지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추진한 것은 주지한 바와 같이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그 목적이다. 정부의 급조된 세법개정안으로 정부가 기준으로 삼은 5500만원 이하의 근로소득자에게도 세부담의 피해가 돌아갔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세액공제만 놓고 본다면 그 자체는 정부의 주장대로 고액연봉자가 더 많은 세부담을 안고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 것은 맞다.
기존의 소득공제가 정부의
세수를 줄이고 고액연봉자에게 훨씬 유리하게 작용해왔기 때문에 조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악화시키는 측면이 강했다면, 바뀐 세액공제는 (제대로만 시행되면)
고액연봉자에게 보다 많은 세부담을 안겨줌으로써 소득 재분배 기능을 바로 잡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시민사회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증세의 불가피성이다.
지난 대선에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는 증세의 당위를,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증세의 불가피성을 국민들에게 각각 호소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증세는 필요 없다"는 감언이설로 국민들을 미혹했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같은 결과는 선거 때마다 거짓말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정치인들이 들끓는 본질적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거짓말로 국민을 호도하는
정부의 행태는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정치인의
자질과 능력을 분별해 내는 것은 결국 시민사회의 몫이다. 정치인과 정치정당은 시민들의 정치행위인 선거를 통해
번성하고 쇠락해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민사회가 깨어 있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촌극은 언제고 되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난 시민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13월의 공포'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시민들은 '13월의 공포'를 말하기 이전에 그 공포가 만들어진 배경과 이면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빠져 있는 외침은 아주 공허하고 허전하게만 느껴진다. 진짜 공포는 망각이다. 망각에 빠지는 순간 '13월의 공포'는 일상이 된다. 그것이 진짜 공포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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