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들이 어제(22일) 시국선언을 했다.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은 이날 서울대 관악캠퍼스 호암교수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상황을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와대 물갈이와 전면 개각을 촉구했다.
총체적 난국.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필자도 그렇고 나라 걱정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요즘 늘 입에 붙들고 사는 말일 거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은 어지간해서는 사용되지 않는 문구다. 그렇지 않은가. 저 표현은 이것 저것 따져 물을 것 없이 모든 부분에서 난관에 빠져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것 자체가 현 시국의 위급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총체적 난국"과 "시국선언"은 묘하게 잘 어울린다. 여기에는 임금이 정사를 멀리하고 간신이 여기저기서 활개치며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난세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저잣거리 한 켠에 '떡'하니 붙어있는 중세시대의 격문같은 느낌이 묻어 난다. 난세에 격문이 있다면 난국에는 시국선언이 있다.
서울대 교수들은 이번 시국선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들은 박 대통령의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 등을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위험한'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대통령을 보좌하는 관료들을 향해선 '허수아비'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 정부 들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각종 사건과 사고들에 대응하는 현 집권층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하는 동시에 그들이 '종북몰이'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만 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사실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들은 이 정부 들어서만도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몇 차례 발표한 바 있다. 비단 서울대 교수들 뿐만이 아니다. 학계, 종교계, 시민단체, 대학교, 심지어 중•고등학생들까지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했었다. 그러고 보니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겨냥한 시국선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아무리 기억을 되뇌여 봐도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이후로 시국선언이 이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한 편의 시대극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주색잡기에 빠져 정사를 멀리하는 임금, 그런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며 국정을 농단하는 환관들, 일신의 안위와 영달만을 생각하며 임금의 눈치만 보는 간신들, 백성의 고혈을 빼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탐관오리들, 그리고 임금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언제든 역적으로 내몰렸던 과거의 난세와 현 상황이 도대체 뭐가 다른건지 나는 모르겠다.
현 정부를 비난하고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회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초등학생들도 안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그럭저럭' 잘 작동한다. 만약 시국선언의 수량과 질량만으로 정권의 유지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무너져도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이는 시국선언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한다 해도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선언적 결의는 별다른 효용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뜻이다.
시국선언이 일상화되면 그에 비례해서 집권층의 현실감각도 점점 무뎌진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한다면 이 정부에게 있어 시국선언은 조금 시끄럽고 신경쓰이는 '소음' 정도의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시국선언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물론 필자는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평가절하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이같은 불의의 시대에 저들의 용기와 결단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시국선언이 단순히 선언적 수준에 머무는 이상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에 대해 진중하게 되묻고자 함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박근혜 대통령과 현 집권층의 무도함은 국민들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사건,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 세월호 참사,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등의 크고 작은 사건에서 민주주의의 회복과 국정의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는 번번히 묵살되었고 무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 비판을 금기하는 신공안통치는 점점 강화되어 가는 반면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은 갈수록 약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보다 못해 서울대 교수들이 나선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무너진 벽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그들은 이번에도 다시 펜을 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용기와 결단이 유의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중요한 무엇인가가 반드시 뒤따라야만 한다. 나는 오늘 이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시민권이 어떻게 자리잡고 발전되어 왔는지 기억해 낼 필요가 있다. 시국선언이 집권세력의 광폭질주에 대한 경고의 의미이자 시민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는 의미가 있다면, 집권세력의 무도함을 종식시키고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강화시켜온 승리의 역사는 언제나 광장에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987년의 민주화투쟁이 결국 광장에서 열매를 맺은 것처럼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그 결의와 각오를 광장으로 연결시키는 숭고한 노력들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결여되어 있는 시국선언은, 현 집권층에게는 그저 조금 성가신 '소음'에 불과할 뿐이다. 분하게도 지금은 그런 시대다.
시국선언이 작금이 불의의 시대임을 정의하고 확인시켜 주었다면, 그 다음은 불의를 바로 잡고 의를 다시 세우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달라진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변치않는 진리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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