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이 담뱃값 인하를 추진한다.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담뱃세 인하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라 한다. 기가 차다. '병주고 약준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한국당의 역주행에 누리꾼들은 뿔이 나도 단단히 났다. 그런데 이상하다. 담뱃값 인하는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경제, 나날이 얇아져가는 지갑 사정을 감안하면 쌍수를 들고 반겨야 할 민생법안이 아닌가. 칭찬받아 마땅할 담뱃세 인하법안은 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 희한한 광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당의 지난 행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은 지난 2014년 9월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올린다, 만다 '설'이 무성했던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위해 내세운 명분은 기특하게도(?) 국민 건강이었다. 담뱃값이 오르면 그에 비례해 흡연율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은 야당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한 꼼수 증세라는 반발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정부는 담뱃값 인상이 국민들의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차원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시간을 조금 더 되돌려 보자.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5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한국당)은 참여정부가 담뱃값을 500원 인상하려고 하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담배가격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 역진성을 심화시키고, 밀수와 사재기 등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며 물가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이 아닌가. 세금을 올리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나라당 역시 "정부의 담뱃값 인상 시도는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담뱃값 인상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주기도 했다.
담뱃값 500원 인상을 기를 쓰고 반대하던 이 정당은 그러나 자신들이 집권하자 태도를 돌변한다. 저소득층의 각계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애용품인 담뱃값을 무려 2000원이나 인상하는 화끈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담뱃값 인상을 둘러싼 각계의 반발과 우려, 서민증세라는 비판은 '국민 건강증진'이라는 시의적절한 명분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과거 자신들이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며 내세웠던 논리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선의로 감쪽 같이 포장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담뱃값은 2015년 새해를 기점으로 2000원이 인상됐다. 꼼꼼히 따져 봐야 할 것은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흡연율이 낮아지고 그로 인해 국민 건강이 증진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짱 도루묵'이다. 담뱃값이 오른 첫 두 달간 담배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정부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담뱃값 인상과 연초 금연효과가 겹치면서 나타난 착시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담뱃값 인상 후 첫 두 달을 제외하면 담배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가 지난 1월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담배판매량은 전년 대비 9.3%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10월 국감에서 공개한 2015년과 2005년의 담배값 인상 효과를 비교분석한 자료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0원 인상된 2016년의 담배 판매량 증가율이 500원 인상된 2006년(7%)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담배 판매량은 흡연률 및 금연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그런데 살펴본 것처럼 담뱃값 인상에도 불구하고 담배 판매량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담뱃값 인상에 따른 소비 위축과 연초 금연효과로 반짝 감소했지만 결국 예년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담뱃값 인상이 흡연 억제 효과로 이어진다는 정부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담뱃값 인상으로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겠다는 정부 계획이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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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1일 한국납세자연맹은 아주 의미심장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2015년과 2016년의 담배 판매량은 정부 예측에 미달한 반면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세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납세자연맹의 발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세수의 증가가 당초 정부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는 사실이다. 당초 정부는 담배값 인상으로 약 2조7천800억 수준의 세수 증가를 예상했다. 그러나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2015년과 2016년 담배 세수는 담뱃값 인상 전인 2014년(약 6조9천905억원)에 비해 각각 3조5천276억원, 5조3천856억원 증가해 10조5천181억원, 12조3천761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결과는 담뱃값 인상으로 증진된 것이 국민 건강이 아니라 세수라는 것을 여실히 입증한다.
기실 담뱃값 인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부가 내세운 근거의 조악함은 이미 인상 계획이 알려질 무렵부터 야당 및 조세전문가, 학자,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신랄하게 비판받는 바 있다. 심지어 새누리당(현 한국당)에서 주최한 담뱃값 인상 찬반토론회에서조차 건강증진을 내세운 정부의 담뱃값 인상의 근거가 논리적으로 말이 맞지 않는다는 쓴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 건강증진을 앞세워 담뱃값 인상을 결국 강행시켰다.
문제는 담뱃값 인상이 서민증세라는 점이다. (이는 과거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담뱃값 인상을 반대하며 내세웠던 논리다.)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흡연율이 높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담뱃값 인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 역진성은 가중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재벌 기득권에게 유리하도록 법인세, 재산세, 소득세 등의 직접세는 놔두고 서민가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담뱃세, 부가가치세 등의 간접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고 있었던 셈이다. 담뱃값 인상을 두고 국민 건강을 앞세운 서민들의 '주머니 털기'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세상은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무려 2000원이나 인상시켰던 한국당이 담뱃값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 고맙고 뻔뻔하게도 한국당은 이번에는 서민경제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내세웠다. 흥미로운 건 한국당의 담뱃값 인하 방침에 대한 대중의 반응들이다. 칭찬보다는 비난 일색이다. 아마 학습효과 때문일 터다. 한국당의 표리부동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탓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선거철이냐 아니냐에 따라 입장이 수시로 바뀌니 불신의 골이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다.
담뱃값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한국당의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어쨌든 확실한 것은 한국당이 야당이 될 때마다 그들 내부에서 모종의 변화가 감지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이 대단히 중요하다.) 담뱃값 인하, 유류세 인하 등 서민의 삶과 직결되는 민생 대책, 공직기준의 강화, 당내 인적 청산 등은 한국당이 여당이었다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다. 악담처럼 들리겠지만 여당일 때의 한국당은 정치정당이라기 보다는 이익집단의 모습을 보여온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니 부디 오래도록 야당으로 남으시라. 어쩌면 이 역설에 한국당의 미래가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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