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이완구 청문회와 대한민국의 품격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어제(11) 끝났습니다. 야당은 인준 표결을 위한 본회의 연기를 새누리당에게 제안했습니다. 이에 새누리당은 일단 12일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완구 후보자의 총리인준을 둘러싸고 여야의 '밀당'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야는 청문회 이후 이완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여부를 놓고 정반대의 입장을 보였습니다. 당초 호의적이었던 야당의 입장이 '자판기' 수준으로 계속 터져나오는 이완구 후보자의 각종 의혹들로 인해 방향을 선회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당은 사실상 인준 반대 입장을 굳힌 상태입니다.

야당이 인준 반대로 입장을 선회한 이상 선택지는 반대 투표, 표결 불참, 국회 본회의 연기 제안 등의 세가지 중 하나입니다. 야당은 그 중 가장 온건한 방법인 본회의 연기를 선택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인준 반대라는 강공을 택하기 보다는 전략적인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어차피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여론은 점점 싸늘히 식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발목잡기에 대한 부담에서도 비켜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끌수록 나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반면 여당인 새누리당은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인준 표결을 해야만 하는 입장입니다. 이완구 후보자를 바라보는 민심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데다 새로운 의혹들이 터져 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 새누리당 단독으로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고 12일 본회의 표결을 통해 인준을 강행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는 것을 새누리당이 직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완구 후보자의 총리인준과 관련된 여야의 치열한 눈치싸움과 앞으로 전개될 경우의 수에 대해서 각종 전망들을 쏟아 놓고 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 그 전망들의 유의미를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판기 수준의 각종 의혹들과 석연치 않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총리 인준 직전까지 왔다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과 씁쓸함이 밀려 옵니다.

청문회를 앞두고 이완구 후보자는 자신에게 쏟아진 의혹들을 청문회에서 소상히 밝히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청문회에서 그는 더한 곤경에 빠져야만 했습니다. 그의 해명은 부실하기 그지 없었고, 야당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당황해 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국민들은 속시원한 답변 대신 "송구하다", "죄송하다", "기억이 안난다", "정신이 혼미하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청문회를 통해 의혹들을 낱낱이 해명하겠다고 하더니 해소된 의혹보다 새로운 의혹들만(본인 병역기피, 언론보도 개입, 김영란법 통과 개입, 대학 총장 인사 개입 등) 더욱 부각됐습니다. 위기를 직감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이완구 구하기 대작전'이 아니었다면 국민들은 청문회 내내 그의 일그러진 얼굴만을 봐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자격'이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말합니다. 이완구 후보자에게 과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막중한 소임을 헤쳐나갈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는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의당 그래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민심이 이완구 후보자에게서 점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11일 공개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9일에는 부정적 여론이 52.9%였고, 10일에는 53.8%로 나왔다. 이는 전반적인 녹취록이 다 공개되기 이전의 여론조사였는데,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단 청문회까지는 지켜보자던 국민여론은 이처럼 청문회 이후 더 나빠졌습니다. 청문회를 통해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해소된 의혹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청문회를 통해 그릇된 언론관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고,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위증 논란이 벌어지는 등 그 자질을 더욱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격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 고위공직자들의 인준 과정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범위를 좁혀 박근혜 정부에서 낙마한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우와 이완구 후보자의 경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김용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과 아들의 병역문제, 편법 증여 등이 문제가 되어 자진 사퇴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대개조의 특명을 부여받았던 안대희 후보자는 전관예우 논란에 발목이 잡혀 지명 6일 만에 전격적으로 사퇴했습니다. 안대희 후보자의 사퇴 이후 언론인 출신으로 총리후보로 발탁된 문창극 후보자는 과거 친일논란 등 역사인식 문제와 발언 등으로 국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 끝에 역시 자진 사퇴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에서 낙마한 국무총리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싸늘한 국민여론에 고개를 떨구어야 했습니다. 국민들이 준엄하고 단호하게 그들의 자격을 문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세 사람은 인사청문회의 자리에 앉지조차 못했습니다. 저들에게 최소한 '자격지심'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완구 후보자에게는 '부동산 투기 의혹', '차남과 본인의 병역기피 의혹', '국보위 삼청교육대 파견 근무', '황제 특강', '교수 채용 특혜 의혹', '박사논문 표절 의혹', '언론보도 및 김영란법 개입', '충남지사 시절 부부동반 국외출장 의혹' 등 앞서 낙마한 후보들은 명암도 내밀지 못하는 의혹들이 즐비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당당하게 인사청문회에 나섰고, 국민들로부터 '만신창
'라는 부적격 판정을 받았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물론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야당이 결사적으로 반대한다고 해도 새누리당 단독으로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고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 인준에 이르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필자가 느끼는 자괴감과 씁쓸함은 바로 이 부분에서 주체할 수 없이 커져만 갑니다.





"배부른 돼지 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돼라"는 명언을 남긴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의 시선으로 보자면 박근혜 정부에서 임용된 국무의원들의 대부분이, 그리고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정치인들 태반이 배부른 돼지에 해당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배부른 돼지들이 모여서 배부른 돼지들을 위해 국정을 운영하고, 법을 만들고, 정치를 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만하면 충분할 법도 한데 저들의 탐욕과 욕심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배부른 돼지들이 넘쳐나는 그곳에 누구보다 배부른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이 다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사람이 물러나면 또 다른 배부른 돼지가 그 자리를 냉큼 차지할 겁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배부른 돼지들로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출세와 재물과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인간의 양심과 도덕률 쯤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돼지들이 곳곳에 즐비합니다. 

부도덕한 돼지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라면 오히려 인간들이 점점 구석으로 밀려나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참으로 얄궃습니다. 인간으로 살고 싶은데 세상은 자꾸 돼지가 되라고, 그래야 출세하고 성공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나 조만간에 양자택일을 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으로 살 지, 아니면 돼지로 살 지를 말입니다대한민국의 수준과 품격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바람부는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