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추위가 한창이던 지난 2013년 1월 15일 한 사람이 해고를 당했다. 사측은 해고의 이유로 '명예 실추와 품위유지 위반'을 내세웠다. 사측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품위를 지키기 않은 것이 온당한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용노동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해고사유를 두루 살펴보아도 그와 관련된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어쨌든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회사로부터 짤렸다. 보통 이런 경우 의기소침해 하거나 먹고 살 걱정에 불안해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해고 당하던 날 그는 오히려 자신의 트위터에 "해고를 축하해 달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말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해고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필자도 그 중의 하나다. 강직하고 대쪽같은 그가 머물 곳이 도저히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저없이 회사를 나왔고 늘 해오던 대로 꿋꿋하게 가던 길을 갔다. 그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다.
봄 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2013년 3월 27일 한 사람이 사직했다. 전날 소집된 임시이사회에서 그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가결되자 스스로 옷을 벗은 것이다. 사실 그는 꽤 오랫동안 회사 안팍으로 사퇴 압박에 시달려 왔다. 그러던 중 임시이사회의 해임안 가결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사표를 던진 것이다. 보통 이럴 경우 해임당할 바에야 차라리 내 발로 걸어나오겠다는 사나이의 자존심으로 봐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경우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그는 3억여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을 수령하기 위해 자진사퇴의 형식을 취했다. 해임되면 퇴직연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이사에 선임된 이후로 3년여 내내 "물러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이 사람은 결국 버티고 버티다 해임되기 하루 전에 퇴직연금 3억여원을 챙기고 나서야 회사를 나왔다. 사나이라고 보기에는 어째 찌질해 보인다.
눈치챘겠지만 전자는 최근 복직된 MBC의 이상호 기자고, 후자는 공영방송인 MBC를 망가뜨린 주범인 김재철 전 사장이다. 이상호 기자가 해고될 당시의 MBC 사장이 김재철 전 사장이었다. 두 사람의 운명은 참 묘하고 얄궃다. 이상호 기자가 MBC로부터 해고를 당하기 하루 전날, 김재철 전 사장은 영등포경찰서로부터 배임혐의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상호 기자가 대법원으로부터 해고무효 확정 판결을 받은 날, 김재철 전 사장은 항소심 법정에 섰다. 운명의 장난이라도 되는 듯이 두 사람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공영방송사에서 언론인의 사명과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해고를 당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으로 부임한 후 당시 신뢰할 수 있는 방송 1위의 공영방송사를 만신창이로 만들며 정론직필에 힘쓰는 언론인들을 무더기로 해고시켰다. 서로 얽혀 있는 듯 하지만 두 사람은 길은 이렇듯 완전히 다르다.
MBC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품위유지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이상호 기자는 지난 9일 대법원에서 해고무효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이상호 기자가 MBC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소송에서 "해고가 절차상 위법하지는 않지만, 사회통념상 타당성을 잃어 징계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처분이어서 무효라고 본 원심 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면서 "2013년 1월부터 복직때까지 월 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결국 대법원이 이상호 기자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번 판결은 MBC로부터 해고된 강지웅 전 사무처장, 박성제 기자, 박성호 전 기자협회장, 이용마 전 노조 홍보국장,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 ·최승호 PD, 권성민 PD의 향후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해고된 권성민 PD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항소심까지 해고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MBC 측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는 상태다.
MBC를 한없이 추락시킨 장본인인 김재철 전 사장은 현재 업무상 배임혐의로 재판 중이다. 그는 법인카드로 7억여원을 부당하게 사용해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에 따르면 취임 이후 그는 전국의 특급호텔 투숙비로 1억5천만원을 사용했고, 진주목걸이·명품가방·고급화장품 등의 사치품을 구입했으며, 국내외 면세점을 통해 2천5백여만원을 물품구입비로 결재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피부관리에 200만원을 결재하기도 했고, 2011년 1월에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병원비 240만원을 법인카드로 대납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법인카드가 아니라 개인카드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1심 재판부는 이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9일 열린 항소심에서는 20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법원이 밝힌 감형의 이유가 기막히다. 법원은 "MBC가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서면을 제출한 점"이 감형의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현 MBC 사장은 안광한 사장이다. 그는 이상호 기자가 해고될 당시 인사위원장이자 부사장이었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던 기자들을 가차없이 해고시키고 법원의 해고무효 판결에도 항소와 상고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 그가, 정작 공영방송 MBC의 위상과 명예를 실추시킨 주범인 김재철 전 사장의 배임혐의에는 선처를 구하고 있었다. '안광한은 김재철의 아바타'라는 세간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이 입증되는 장면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이상호 기자는 지난 14일 MBC로 복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장미빛 미래가 열린 것은 결코 아니다. MBC는 형식적인 복귀절차 이후 추가징계를 예고한 상황이고 이상호 기자 역시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호 기자가 당면할 상황을 예측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기자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에 전보조치를 하거나 인사조치 발령을 내리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대기발령을 내거나 '브런치 만들기', '요가 배우기' 등의 교양강좌를 듣도록 하는 등의 보복인사를 단행할 것이다. 또한 자괴감을 느껴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도록 MBC 경영진과 보도수뇌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횡포가 극에 달할 것이다. MBC가 파업에 가담했던 노조원들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이상호 기자 역시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호 기자는 꿋꿋하다. 그는 자신에게 닥칠 암울한 상황을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묵묵히 주어진 길을 가겠다고 한다. MBC로 복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21년 전 첫 출근하는 마음으로 왔다. 회사는 중징계를 예고했지만, 그럼에도 두근두근 설레고 행복하다. MBC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MBC를 되살리겠다"는 그의 일성은 그래서 더 빛이 난다. 그의 가슴 속에는 언론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이 오롯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해고를 당하고도 축하해 달라며 걱정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배려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이상호 기자의 길과, 김재철 전 MBC 사장 그리고 안광한 현 MBC 사장의 길은 뚜렷하게 다르다. 한 사람은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중이고, 나머지 둘은 탄탄대로를 걷는 중이다. 저 둘 중 어떤 삶이 더 바람직한가는 온전히 개인의 양심과 소신의 문제이며 동시에 취향의 문제다. 이상호 기자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머지 둘의 삶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사회에 가시밭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개인의 양심과 소신, 취향을 따져 묻기 이전에 그런 사람들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밝아지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는 이상호 기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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