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도 군대 내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한 한 해였다. 그 중 선임병들의 상습적 구타와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과 상관과 동료병사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임 병장 사건'은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많은 국민들을 충격 속으로 밀어넣었다. 두 사건은 근절되지 않는 군대 내의 구타와 가혹행위 및 집단 따돌림이 원인이 되어 발생했다. 이같은 사실은 그 동안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군과 정치권이 공언해왔던 군 개혁과 병영문화 개선이 공염불에 불과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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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의 대부분은 군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잘못된 병영문화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군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해도 관련사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군 보안을 이유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통제하고 있다. 다른 어떤 곳보다 사건과 사고, 부정과 비리가 많이 발생하면서도 통제받지 않고 감시받지 않는 유일한 조직이 바로 군이다.
어제(11일)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뿌리깊은 군의 폐쇄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연이 소개됐다. 군은 선임병의 각목 구타로 인해 식물인간이 된 군부대 내 폭력사건을 처리하면서 사건 경위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구타 의혹을 제기하는 부모의 입장은 완전히 무시됐다.
지난 2012년 육군 제 15사단에 배치된 구상훈 이등병은 19일 만에 뇌출혈로 쓰러져 무려 1년 7개월 동안을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당시 군은 이 사건을 '뇌동정맥 기형에 의한 뇌출혈'로 처리했다. 머리 뒤쪽에 나 있던 외상을 의심하던 부모에게는 '욕창'일 뿐이라며 자신들은 정확하게 수사를 했고 부대원의 가혹행위와 폭행은 없었다며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이렇게 묻혀버렸던 사건은 무려 1년 7개월 만에 의식을 찾은 구 이병의 진술을 통해 그 충격적 전말이 공개되었다. 방송에 공개된 내용은 경악 그 자체였다. 구 이병은 자신이 선임병의 각목에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었다고 진술하며 구체적인 장소와 정황 및 자신을 구타한 선임병의 이름까지 기억해 냈다. 취재 결과 사건 당일 구 이병은 2012년 2월 식당작업을 마친 후 선임병 7명이 가담한 기합에서 3명이 휘두른 각목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는 군의 입장과는 달리 당시 군은 가해자로 지목받은 선임병에게 집단 설문을 한 것을 제외하고 어떠한 직접 조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사건은 일단 덮고 보자는 군의 고질적 습성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반복된 것이다.
물론 군 지휘부가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들에 마냥 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휘관을 문책하기도 하고 병영문화개선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고, 군 내부의 가혹행위와 폭행을 내부고발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근본적인 대책이라기 보다는 사후약방문식의 뒷북대책에 그치고 말았다. 군은 그동안 폭력으로 일그러진 잘못된 병영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환골탈태하겠다고 늘 말해왔지만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군의 입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군대 내의 폭력사건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군의 변화와 각성은 도대체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필자는 대표적인 몇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 군의 본질적인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우리나라의 국가안보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국가안보실장이다. 현재 국가안보실장은 김관진 전 국장부장관이 맡고 있다. 그런데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이력(?)은 굉장히 화려하다. 그가 국장부장관 재임시절 벌어진 사건 사고들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다.
그는 2010년 10월부터 2014년 8월까지 국방부장관으로 재임했다. 그의 재임시절에 벌어진 군 사건 사고는 2011년 7월 강화도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2012년 2월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2012년 군 사이버사령부 대선 개입, 2014년 3월 북한 무인기 사건, 2014년 4월 윤일병 사건, 2014년 6월 임병장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 ('구 이병 사건'도 포함된다) 일색이다. 지난 2005년 6월 당시 국방부장관이던 윤광웅 장관이 연천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던 사례와 비교하면 그 끈질긴 생명력은 경이 그 자체다.
역대 국방부장관 중 이처럼 많은 군부대 사건 사고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보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국방부장관을 거쳐 현재 국가안보실장으로 영전하는 특급대우를 받고 있다. 억세게 운이 좋으면서 동시에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군 내부의 문제가 붉어져도 이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사실상 군 조직을 정치군인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총체적 난국에 찌들어 있는 군 문화를 개혁하려 하기보다는 자리보전과 일신의 영달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사건이 발생해도 쉬쉬하며 숨기기에 급급하고 관련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윤일병 사건'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애초 사건이 발생한지 수개월이 지난 뒤였고, '구 이병 사건' 역시 그가 깨어나지 못했더라면 진실은 영원히 묻힐 수 밖에 없었다. 사건 사고가 터져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군인들이 활개치는 한 엉망진창인 군 지휘체제와 시스템이 개선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군 부대 내 사건 사고를 조사하고 심판하는 권한이 군 내부에 있는 것 또한 군 문화가 개선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다. 군은 사건 사고의 실체 및 진상규명의 과정을 절대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이같은 관행이 군 조직 특유의 폐쇄성과 결탁하면서 공정성과 투명성 대신 진실이 은폐되고 조작되는 거악으로 변질되어 왔다.
'윤 일병 사건'만 보더라도 군 검찰은 윤 일병의 사인을 '기도폐색에 따른 질식사'로 단정하고 가해자들에게 상해치사혐의를 적용하려 했다. 이는 최초의 수사 상황과는 다르게 내용이 발표되고 기소된 것이다. 이같은 일은 사건 수사와 기소, 재판을 담당하는 헌병, 군 검찰, 군 판사 등이 군 법무조직 체계상 사단장 및 군단장의 통제 아래 있는 부하장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사건 수사와 재판이 폐쇄된 군 내부에서 비공개로 진행되면 군 내부의 이해관계와 정치논리에 의해 사건의 진상은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해 진다. 이것이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반 국민들까지 나서서 군의 사법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군은 여전히 사법개혁에 대해서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폭행과 가혹행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군 내의 구타 및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받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서영교 의원은 지난달 10월 10일 군사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지난 5년 동안의 군 내 가혹행위자의 처벌 사례를 공개했다. 내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군 내의 폭행 및 가혹행위 적발은 모두 3327건으로 조사됐지만 이 중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50건으로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그조차도 사단장과 군단장 등 지휘권자에 대한 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그동안 군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내놓은 대책과 대응들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이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군 조직의 참을 수 없는 폐쇄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군 부대 내에서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발생해도 이를 책임져야 할 자들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해당사자인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수사와 재판을 주관한다. 또한 폭행과 가혹행위 등의 범죄사실이 적발되어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 군의 냉정하고 참혹한 현실이다.
이미 군이 치유불능의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은 여실히 드러난 상태다. 필자가 기술한 내용 말고도 방산비리, 군납비리, 각종 성추문과 추행 등으로 국민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그럼에도 군은 도무지 변화할 기미도,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과거 군부독재의 우산 아래에서 썩을대로 썩어있던 권위주의적 군 문화의 적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제 KBS 1TV '시사기획 창'은 군이 숨겨왔던 또 하나의 치부를 폭로하며 이 땅의 부모들을 다시 한번 분노케 만들었다. 기적적으로 구 일병은 부모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우리 군을 이대로 존치시킬 경우 수많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제2, 제3의 윤 일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군 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도, 방치할 수도 없는 시대적 당위다. 국민이 나서야 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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