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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모녀 사건 이후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난 2월 26일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며 세상을 등진 '세 모녀 사건'은 우리사회에 큰 반향과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의 안타까운 실상을 더 이상 사회가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분출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복지3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와 맞춤형 복지를 통해서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약속을 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세 모녀 3법'을 창당 1호 법안으로 발의하며 민생을 돌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세 모녀의 비극적인 죽음이 우리사회에 던진 파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송파 세 모녀 보호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세모녀법)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고,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고, 뜨겁게 닳아 올랐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우리사회 특유의 습성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되풀이 됐다. 그러는 사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세모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던 빈곤층이 처지를 비관해 삶을 포기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했던 것이다.


지난 3월 2일 경기 동두천에서는 "미안하다"는 글씨가 적혀있는 세금고지서와 함께 엄마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날 서울 화곡동에서도 한 부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다음날인 3일에도 경기 광주에서 아버지와 자녀 두사람이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며칠 전 10월 31일에는 세 들어 살던 60대 독거노인이 살던 집이 팔려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게 되자 전기·수도 요금 등을 낼 수 있는 돈과 장례비가 담긴 봉투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봉투에는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제(3일)는 인천에서 일가족 세명이 연탄을 피워놓고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경찰은 엄마와 딸이 먼저 자살하고 이를 뒤늦게 발견한 아빠마저 함께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12살 밖에 안된 딸은 "그동안 아빠 말을 안 들어 죄송하다. 밥 잘 챙기고 건강 유의해라. 나는 엄마하고 있는 게 더 좋다.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라는 유서를 남기며 애처러움을 더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생활수급자는 모두 135만 명이다. 그런데 최저생계비(2014년 기준 163만820원) 이하 빈곤층이면서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약 400만 명에 이른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현행법과 정부정책에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살펴보겠다. 현생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양의무자 제도다. 현행법은 본인의 소득이 없어도 부모와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중 한 사람이라도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를 넘으면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는 전통적 가치관에 입각한,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규정으로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세모녀 사건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가장 먼저 이 부분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추정소득의 문제 또한 논란이 많다. 현행법은 실제 소득이 없어도 만 18세 이상, 64세 이하의 나이로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한 사람당 약 60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본인과 가족이 모두 돈을 벌지 못해도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송파 세모녀들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세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일부 언론은 세모녀가 기초수급신청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신청을 했더라면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 보도했다. 그러나 신청을 했더라도 실질적으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세모녀가 소득부분에서는 기초수급의 대상이 되지만, 근로능력에 있어서 180만원의 추정소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첫째 딸이 앓고 있는 당뇨나 고혈압을 근로 무능력자로 인정해줄 만큼 자비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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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시 본질을 도외시한 실효성 없는 대책으로 빈축을 샀다. 세모녀의 충격적인 죽음 이후 정부는 부랴부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3월 한달 동안 일제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자체의 사회복지사 2명이 무려 3만 명에 달하는 빈곤층의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사회복지사 한명이 휴일없이 하루에 500명의 빈곤계층의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사회복지사의 초인적인 힘으로 실태조사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기초생활수급이 절실한 500만 명에 달하는 빈곤층이 현행법 기준으로 복지혜택을 받으려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야 할만큼 어렵고 까다롭다. 결국 관련 법규는 법규대로 정부 정책은 정책대로 엇박자와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집권이후 보편적 복지와 복지 확대에 화학적 거부반응을 보이며 복지를 국가의 의무가 아닌 국가의 시혜로 오도해온 새누리당과 이에 동조한 보수세력의 '공짜 프레임'도 국민의 권리인 복지의 개념을 한없이 추락시킨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이 줄기차게 전파시킨 '복지 무임승차론'은 국민들에게 '복지=공짜'라는 인식을 널리 퍼트렸고, 복지에 대한 중산층과 서민들의 가치판단에 혼란을 야기시키게 만들었다. '복지=공짜', '공짜=나쁜 것'이라는 간단한 등식은 보편적 복지라는 시대적 당위마저 뒤흔들었고 당연히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권리인 복지를 저급한 '무상'논쟁으로 격하시켰다. 





보수정부와 새누리당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선별적 복지는 복지가 꼭 필요한 사람들 위주로 국가가 복지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별적 복지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에서 그 효용가치를 상실하며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의 두배를 넘는 최고의 자살률, 600만이 넘는 비정규직,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실업률,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자영업자 몰락, 사상 최악의 가계부채, 경제력이 없는 노인인구의 급증 등 시한폭탄이 곳곳에 매복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예산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양산시킬 최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다시 말해 지금 이 시간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란 뜻이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언제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무섭고 끔찍하다. 


국가의 재분배 정책만으로 복지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조세정책에서부터 노동정책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만 한다. 세 모녀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과연 우리사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그들의 죽음조차 우리사회를 바꾸지는 못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인가. 복지는 계층의 문제도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미래에 대한 문제다.  복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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