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다. 지난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에 이루어진 교황의 방한에 시민들은 열광했고, 그가 가는 곳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교황의 시복식에는 무려 10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 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4박 5일의 짧은 방한 기간이었지만 그는 우리사회 곳곳에 경종을 울리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교황은 방한 첫날 고급스러운 대형차가 아닌 국산 경차 'Soul'을 이동차량으로 선택해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언제나 사회적 약자와 소외받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인본주의를 강조하며 낮은 곳으로 향하던 교황다운 선택이었다. 최상의 의전과 최고의 영접을 마다하고 방한기간 내내 소박한 행보를 보였던 교황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방한 당시 소형차를 이동차량으로 선택하던 교황의 모습은 대단히 신선했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랬다. 물론 검소하고 소박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땀흘려 수고하는 국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 남들보다 더 화려하고 더 크고 비싼 것들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는 없다. 교황의 검소함과 소박함은 그래서 물욕주의가 판을 치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분명하게 대비된다.
럭셔리한 고급 슈퍼카 시장이 국내에서 빠른 속도로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국산차 판매량은 점점 감소하고 있는데 대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차량의 판매량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대당 가격이 2억원에서 5억원을 넘는다는 세계 3대 명차 중의 하나인 '벤틀리'의 전세계 매장 200여 개 중에서 판매실적 1위를 서울 강남의 매장이 당당히 차지하고 있고,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고 있는 메시와 고인이 된 파바로티 등 고수익자들이 즐겨탄다는 '마세라티'의 국내 판매 증가율이 무려 468%에 이른다고 하니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는 슈퍼카 시장의 위용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슈퍼카 시장이 이처럼 호황을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견 앞서 언급했던 물욕주의를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비싸야 잘 팔린다'라는 통념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는 럭셔리 마케팅의 천국이나 다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단 슈퍼카 뿐만 아니라 명품 시계와 주얼리, 패션, 가방 등 고가의 제품들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럭셔리 위의 럭셔리'를 강조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물욕주의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슈퍼카 시장의 급속한 팽창을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불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슈퍼카를 소유할 수 있었을까'가 궁금해 진다. 일반인들이 들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를 편법과 꼼수가 바로 여기에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 사업자나 법인이 업무용 차량을 등록했을 때, 차값은 물론이고 유지비까지 손비처리를 해준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었다. 즉 손비처리를 통해 소득세와 법인세 등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업무용인 것처럼 등록하고 실제로는 레져용이나 가족용 등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슈퍼카는 재벌이나 부유층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슈퍼카는 일반인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워낙 고가의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워낙 값이 비싸다 보니 재벌과 부유층이 개인 사업자나 법인의 이름으로 슈퍼카를 구입해서 업무용 차량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슈퍼카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가 따로 있었던 셈이다.
<KBS 시사진단>에 따르면 한 달에 600만원 정도의 슈퍼카를 리스했을 경우 1년 동안 세금이 무려 2600만원이나 절약된다고 한다. 일반인이 2600만원의 세금을 내려면 연봉이 1억 4000만원에 달해야 한다고 하니 슈퍼카 리스를 통해 엄청난 세금을 절감하는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국내 슈퍼카 시장이 급증하는 데에는 세금을 덜 내려거나, 안 내려는 자들의 편법과 꼼수가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한 차량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 세금을 절감했다면 이는 절세가 아닌 탈루나 탈세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사실 슈퍼카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12년 오리온 그룹의 오너일가가 람보르기니와 포르쉐, 벤츠 등 슈퍼카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개인 용도로 사용해 논란을 일으켰고, 실제로 많은 기업의 대표와 가족들이 같은 방법으로 차량을 구입하거나 리스해 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되자 지난 2013년 당시 민주당의 민홍철 의원은 차량의 배기량을 기준으로 손비처리 한도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인세·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은 2000cc 이상일 경우 5000만원 이하의 차량은 취득가액의 50%만 경비에 포함시키고, 5000만원~1억원은 20%, 1억원 이상은 전액 배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현재 계류된 상태다. 당시 국회 기재위에서 EU 및 미국과의 FTA 협정 상의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엄청난 세수가 낭비되고 있는데도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와 국세청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살펴본 대로 관련 문제가 정부와 국세청의 고민거리가 된 지는 꽤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정부와 국세청은 법인 명의의 차량을 사적 용도로 사용했는지 여부를 파악해서 과세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사실상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은 리스비용의 85%까지만 업무용으로 인정하고 있고, 업무용 차량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엄격하게 가려서 세금공제 여부를 따진다. 또한 손비처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운행거리가 정해져 있으며, 차값이 1만8500달러(약 2073만원)를 넘는 경우 세금공제 혜택을 차등 적용한다. 영국은 100% 리스차는 없다는 이유에서 업무용 리스 차량이 친환경차(이산화탄소 배출량 130g/km 이하)가 아니면 리스비의 15%에 대해서는 세금공제를 해주지 않는다. 캐나다도 리스차 전액 손비처리 한도를 매월 800달러(약 72만원)까지로 제한했다. 일본의 경우는 300만엔(약 2740만원)까지만 손비처리를 인정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다른 나라의 경우 탈루와 탈세를 막기 위해 관련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012년 리스 손비처리 비용으로 걷어들이지 못한 세금만 7000억원에 달한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법인 명의 수입차 등록이 10만대를 넘은 올해는 무려 1조3000억원의 세금이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면서도 박근혜 정부는 세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지방교육청에 슬그머니 전가시키고,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등 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부담을 주는 간접세와 지방세를 인상시켰다.
반면 재벌과 부자들에게는 상속세와 증여세 뿐만 아니라 주식배당의 원천징수세율을 낮춰 주고, 법인세율을 현행 유지시켜 주었다. 그리고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봐주고 있는 건지 고가의 외제차량에 대한 리스의 손비처리 문제를 먼 산 바라보듯 하고 있다. 업무용으로 슈퍼카를 리스하는 개인사업자와 법인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관리와 손비처리 규정 탓에 막대한 세금이 증발하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가 슈퍼카의 천국이 되어 가고 있다. 구슬땀을 흘려가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들을 씁쓸하게 만드는 허탈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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