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뒤면 광복절이다. 숫자에 매몰될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 광복절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70주년이 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일까. 정부가 '광복 70주년 국민사기 진작방안'으로 오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모양이다. 정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인한 극심한 경기침체로 국민사기가 떨어졌다고 보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소비 진작을 장려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임시공휴일을 지정하고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행사들를 계획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줄만 하다. 그러나 정부의 행보와 달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광복 70주년'의 특별함과 역사적 의미의 이면에는 국가로부터 천대받고 홀대받고 있는 선열들의 비참한 삶이 놓여 있다.
3.1절과 광복절. 이 날들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조국의 현실을 비통해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뜨거운 애국심과 불타는 민족혼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날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한때 일제에게 나라를 잃어버린 가슴아픈 시절을 겪어야만 했다. 치욕스런 일제치하 36년, 나라 잃은 설움과 혼란 속에서 모두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주저않아 있을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조차 포기하면서 오로지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독립유공자들이 바로 그 분들이다.
나라의 광복을 위해 싸우다가 순국한 선열들의 유족 및 애국운동가들로 구성된 광복회의 자료를 보면 1910년 한일합방을 전후로 해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약 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 중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약 15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학계에서 추정하고 있는 1910년 무렵의 총인구수가 약 1742만 명 정도라고 하니, 전체인국의 약 1/6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셈이다. 선열들의 애국정신과 민족정신에 고개가 절로 숙여질 수 밖에 없는 숫자다.
그런데 목숨까지 바쳐가며 지키려고 했던 조국으로부터 자신들과 유족들이 받는 처우를 생각하면 이분들은 어쩌면 독립운동을 했던 것을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희생이 밑바탕이 되어 조국이 해방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후손들은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과 대우조차 받지 못하며 가난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정당한 보훈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을 그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지 참으로 난감한 지경이다.
국가보훈처는 일제로부터 자유독립을 위하여 공헌한 사회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응분의 예우를 함으로써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여 민족정기를 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이 법률이 오히려 그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고 참담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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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과 독립유공자 보상을 동시에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독립유공자들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살아가는 참담한 현실 속에 기초생활수급 지원금이 독립유공자 보상금 보다 많은 경우에는 오히려 경제적 손해를 보게 되는 기형적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 또한 이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제공되는 의료급여 및 임대급여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어려움은 배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독립유공자로서 국가의 보훈을 받는 것이 오히려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불합리한 보훈규정은 또 있다. 관련 규정에 의하면 독립유공자 후손의 유족 가운데 오직 1명만 보상금을 지원받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1945년 해방 이후 독립유공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와 아들 딸에게만 보상금이 주어지게 되어 있다. 이럴 경우 유족 1인을 제외하면 나머지 유족들은 아무런 정부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며 지원금은 2대까지만 지급된다. 이 밖에도 정부는 독립유공자 자녀나 손자 손녀들에게 공무원 채용시험에 가산점을 주는 등의 취업지원이나 초.중.고.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하는 교육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손자 손녀들 역시 이미 대부분 고령자여서 교육비 지원 대상이 아니며 취업지원 대상자도 35세 이하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실질적 혜택이 거의 없는 비현실적인 정부지원으로 말미암아 독립유공자들과 그 후손들은 더욱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고 장준하 선생을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그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자신의 젊음 대부분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바쳤고, 해방 이후에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민족투사였다. 그의 장남 호권씨가 몇년 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비극적인 가족사는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평생을 집을 가져본 적도 없고 늙으신 노모와 함께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0만원의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은 국가로부터 받는 월 60만원의 연금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고 장준하 선생의 유족들도 예외없이 국가의 보호로부터 멀찌감치 비켜나 있었다.
3.1절과 광복절이 되면 독립운동의 참뜻을 기리고 순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마음으로 전국각지에서 추모식과 기념행사가 열린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이후 몇 번의 기념행사를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오신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설 수 있었습니다. 순국선열과 독립유공자,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라며 그들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높이 기리고는 했다.
그러나 저들이 처한 현실은 대통령이 직접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상황과는 180도 다르다. 국가가 저들의 삶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입으로는 존경과 감사와 애도를 표하고 있지만, 행동으로는 핍박하고 구박하며 비루한 삶을 살도록 방치하고 있다. 비단 독립유공자들 뿐만이 아니라 6.25참전 유공자들에 대한 처우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생존해 있는 약 17만명의 6.25 참전 유공자 중 49%가 병마와 싸우고 있고 87%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임에도 국가지원은 고작 12만원과 참전 명예수당 10~60%의 의료비 감면이 전부인 실정이다. 어떤 댓가를 바라고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전쟁에 참전한 것도 아니지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결과가 고작 이 모양 이 꼴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던 안중근 의사도 살아계셨으면 아마도 독립유공자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야 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에서 필자는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만약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게 된다면 국가를 위해 나가 싸워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렇게 가르쳐야 할 당위를 도저히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독립유공자 및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처우를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헌신한 이들을 핍박하고 구박하는 나라에게서 무슨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정부가 순국선열과 독립유공자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먼저 이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부터 현실적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하지 않고 말로만 떠들어 대는 존경이니, 감사니, 애도니 따위의 미사여구는 이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가뜩이나 생활고에 힘들어하고 있는 이분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역사는 자기 성찰의 거울이자, 희망의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이는 놀랍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했던 말이다. 일본을 향해 비수처럼 날아드는 저 멋들어진 수사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비루한 삶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지독한 이율배반을 그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굳이 안중근 의사의 명언을 거론치 않더라도 역사를 잊은 민족,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 역사를 부정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은 유구한 역사가 증명하는 명징한 진리다.
일주일 후면 '광복 70주년'이다. 우리는 '자기 성찰의 거울이자 희망의 미래를 여는 열쇠인'인 역사를 소중히 간직하려 노력하고 있을까. 필자는 이 질문을 이 나라 정부와 여러분께 되묻고 싶다. 다시 한번 이땅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희생하신 순국선열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깊은 감사와 애도를 표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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