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직업은 뭘까. 판사? 검사? 언론인? 경찰? 아니다. 국민들이 신뢰하는 직업 1위는 해마다 소방공무원의 차지다. 화재 현장은 물론이고 각종 재해나 사고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들이기에 이같은 결과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는 소방공무원은 동시에 가장 열악한 근무환경을 지닌 직업이라는 오명도 받고 있다.
실제 소방공무원들의 처우와 실상은 열악하다 못해 참담할 지경이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선을 넘나들며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은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그들은 처참한 사고 현장에 대한 기억, 구해내지 못한 희생자들에 대한 자책, 그리고 사고로 먼저 떠나보낸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인해 매일같이 악몽을 꾼다. 여기에 암담한 근무환경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까지 겹쳐져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공무원은 35명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 순직한 33명보다 많은 숫자다. 그들이
얼마나 심각한 정신적 외상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014년 4월 중앙소방본부가 이화여대 뇌융합과학 연구원에 의뢰해 전국 소방공무원
37,0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 평가 결과는 그 심각성을 더욱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39%인
14,459명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알코올사용 장애, 수면 장애 등 한 가지 이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고,
외상후스트레스 장해나 우울증 등으로 치료가 시급한 소방공무원도 4,710명(12.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들 중 1개월 이내에
치료 경험이 있는 소방공무원의 비율은 3.2%에 불과했고 1년 이내에 치료 경험이 있는 소방공무원의 비율도 6.1%에 그쳤다.
그렇다면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은 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일까. 새정치민주연합의 박남춘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폭로한 자료에서 그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당시 박 의원이 현직 소방공무원 6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방공무원 근무여건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현장 근무 중 한번 이상 부상을 당한 사람은 120명(19%)이었고, 이 중 치료비를 본인 부담으로 처리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99명(8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 중 부상을 당해도 자비로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소방공무원에 대한 복지가 형편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 2014년 여름 소방공무원들의 릴레이 1인 시위가 시민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당시 릴레이 시위는 세월호 참사에 따른
소방방재청의 해체를 결정한 정부에 대한 항의의 의미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제대로 된 처우를 요구하는 소방공무원 절규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이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불볕더위에 진압복까지 갖춰입고 시위에 나선 데에는 그들의 절박함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방공무원의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릴레이 시위에 참가했던 소방공무원들은 지자체로부터 보직해제 등의 압력에 시달려야 했고, 그들은 여전히 노후하고 낙후된 장비, 열악한 처우와 근무 환경, 형편없는 복지
체계에 둘러싸인 채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의 사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되야 한다는 점이다. 어제 서울신문은 국가를 상대로 힘든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한 소방공무원 가족의 애타는 사연을 소개했다. 지난 2014년 6월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사망한
김범석 소방관의 가족이 그들이다. 그의 아내는 현재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기 위해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김 소방관은 2006년 소방공무원에 임용되었고 남부소방서 119구조대, 중앙119구조본부 등에서 근무하며 화재 출동
270회와 구조 활동 751회 등 모두 1021차례에 걸쳐 각종 구조 활동에 나섰던 베테랑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하던 김 소방관의 건강에
이상이 발견된 것은 지난 2013년 8월경이었다. 6개월 전만 해도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안에 완주할 정도로 건강했던 그는 그로부터 7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족들과 '중앙119구조본부'는 김 소방관의 사인인 혈관육종암이 업무상 스트레스와 화재 현장의 유해물질에 의한 것이라 보고 있는 반면 공무원연금공단은 혈관육종암의
발병 원인이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는 이유로 '공무상 사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김 소방관의 경우처럼 공무중 목숨을 잃어도 이를 '공무상 사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와 순직 처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말벌집을 제거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말벌에 쏘여 사망한 이종택
소방관의 순직 신청이 기각되었고, 2013년에는 훈련 중 소방차를 운전하다 사망한 곽기익 소방관 역시 순직이 인정되지 않았다. 화재 진압이나 인명 구조 도중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렇듯 소방공무원들은 살아서도 그리고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그들의 빛나는 수고와 위상에 걸맞는 대우를 받고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방공무원들은 오늘도 현장에서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분투를 하고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투철한 사명감과 소명의식, 그리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국가와 국민의 위해 헌신하고 있는 그들은 찬사와 경외의 대상이지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대의 영웅들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만든 책임은 당연히 국가에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무너지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 역시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도 연계되는 문제다. 소방공무원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국가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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