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일당 5억원의 '황제 노역'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수백만원의
벌금을 감당할 돈이 없어 일당 5만원의 노역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공과금 납부할 돈이 없어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최저임금을 받으며
'개·돼지'처럼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판결에 분노했고 절망했다. 이 사건은 법은 결코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사건이
공론화 되면서 판사의 재량권에 달려있던 노역 기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황제 노역'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국회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국회는 벌금
액수가 1~5억원 사이일 때는 300일 이상, 5~50억원 사이일 때는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일 때는
1000일을 넘기도록 환형유치기간을 강제했다.
그러나
새롭게 개정된 법률에도 불구하고 '황제 노역'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권층을 위한 '황제 노역'이 여전한 것이다.
전두환씨의 차남 재용씨도 '황제 노역'의 특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당사자 중의 하나다.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해 27억7000여만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던 재용씨는 지난 7월 1일 벌금 미납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대법원의 형이 확정된 이후 1억4000만원의 벌금을 내는데 그쳤던 재용씨가 965일의 노역형에 처해지게 된 것이다.
ⓒ 오마이뉴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일당이었다. 대법원은 1심에서 400만원으로 책정한 그의 일당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이 액수는 일당 5억원에 비하면 매우 엄격(?)하게 적용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억'소리 나는 액수이기는 매한가지다. 일당
5만원의 일반인이 재용씨의 남아있는 벌금 38억6000만원을 갚으려면 무려 7만7200일(211년 5개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노역해야 한다. (물론 노역 기간은 최대 3년을 넘지
못하도록 명문화되어 있다)
사람들이 재용씨의
노역을 '황제 노역'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재용씨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특혜를 받고 있는 정황이 하나 또 있다. 그는 최근 서울구치소에서 원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 곳은 다른 교도소에 비해 흉악범이 적고 외적 환경이 수려해 수감자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10일 만에 재용씨가 이 곳으로 전격 이감된 것이다.
법무부는 "미결수를 수용하는 서울구치소는 장기간 노역형을
집행할 작업장이 없다"며 "통상 노역 유치 기간이
1개월 이상인 모든 노역 수형자들은 장기 노역 작업장이 있는 교정시설에 분산 수용된다"고 이감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재용씨가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원주교도소로 이감된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최근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모 수석의 아들이 의경 복무 중 어느날 갑자기 '꽃보직'으로 자리를 옮긴 것과
같은 이치다.
그보다는 그가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점, 그리고 이 나라가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는 국가라는 점을 상기하는 편이 훨씬 이해가 빠를지도 모른다. 일당 5억원이 400만원으로 줄어들었을 뿐 특권은 특혜로 이어지고 대를 이어 대물림된다. 범죄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전두환씨
일가의 자산이 수백억원대 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두환씨의 3남 1녀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 손자와 손녀까지도 거액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추징금과 벌금을 낼 돈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대체 무슨 돈으로 대형 출판사와 대규모 휴양 빌리지를 소유하고,
고급 저택과 빌딩을 보유할 수 있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국가 내란을 일으킨 중대 범죄인을 전직 대통령이란 이유로 특별 예우해 주고 있는 나라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린 탈세범에게
하루 400만원의 일당을 인정해 주는 나라이며, 그 탈세범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좋은 환경의 교도소로 이감시켜 주는 나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달리
특권 공화국, 특혜 공화국이라 불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 구구단처럼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이 구절은 법의 형평성과 공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헌법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이 구절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 법은 '결코'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법은 권력 앞에 비굴하고
특권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과 특권, 특혜를 누리고 있는 전두환씨 일가가 이를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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