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가 경북 성주군으로 확정된 가운데 이 지역의 반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김향곤 성주군수와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 도의원 등 12명이 정부의 결정에 반발해 단식 농성에 들어갔고, 30여 개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사드 배치
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와 학부모들이 촛불시위에 들어가는 등 성주군 일대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사드 배치의 후폭풍은 비단 성주군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휘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이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점점 거세게 분출되고
있다. 또 다시 사회가 양분되고 국론이 분열되는 대립과 갈등, 반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역시 대통령의 존재와 역할이다. 사회가
갈등과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이를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사람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역할을 완전히 반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어디에도 소통과 화합,
협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결정하면 군소리 없이 '따르라'는 권위와 독선,
아집만 도드라진다. 그가 갈등과 대립의 중재자가 아닌 유발자로 비춰지는 이유다.
ⓒ 뉴시스
대통령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사드 배치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분열, 정치적 혼란을
불필요한 논쟁이자 정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열리는 몽골 출국에 앞서 지난 14일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의 발언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이날 "지금은 사드 배치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며 사드 배치에 따른 갈등과 혼란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이 걸린 중차대한 의제를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결정한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이 문제와 관련해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단 한차례도 열지 않았다. 이는 사드 배치에 앞서 여러차례에 걸쳐 공청회와 주민 간담회를 개최했던 일본의 경우와 대비된다.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와 과정도 없이 밀실에서 결정된 사드 배치에 국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의 아전인수식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안보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해당사자 간에 충돌과 반목으로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주장은 사드 배치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사드 배치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그로 인해 동북아의 안보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주장과는 달리 국가 안보가 더 위중해졌다는 뜻이다. 당장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배치를 심각한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드 배치로 그동안
쌓아왔던 주변국들과의 상호 신뢰가 한순간에 와해될 위기에 처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사드 배치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사라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위협을 느낀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대중·대러 의존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며, 한·미·일의 삼각동맹에 맞서 북·중·러의 혈맹관계가 고착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사드 배치는 제2의 냉전시대를 여는 촉매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여기에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마찰로 인한 경제적 피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 문제, 검증되지 않은 사드의 성능 문제, 향후 야기될 수 있는 방위비 분담 문제 등 국익적
차원에서 검토하고 논의해야 할 부분들이 즐비하다. 이를 종합해 보면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도입한
사드가 오히려 국가와 국민을 위협하는 존재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다각도의 면밀한 검토와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드 배치 결정은 이 과정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정부가 결정했으니
국민과 야당은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적 국정운영이
다시 한번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 오마이뉴스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과 야당의 목소리를 '불필요한 논쟁'이자 '소모적인 정쟁'이라고 한방에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해외로 출국했다. 국정원 사건, 세월호 참사, 비선실세논란, 성완종 게이트, 메르스 사태, 국정교과서 논란, 위안부 문제 협상 등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손을 거치면 이처럼 일거에 일단락 된다.
국가와 국민의 존망이 걸려있는 중차대한 사안을 단순·표피화시키며 해외로 떠나는 대통령과 사드 배치에 반대하며 혈서를 쓰고, 단식투쟁을 하고, 촛불시위에 나서는 국민들의 모습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난맥의 본질이 이 극명한 대비 속에 녹아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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